과잉보호가 만든 결핍

2부 나는 왜 이 모양일까?

by 마침내


할머니가 사라진 세상에서 나는 길을 잃은 아이가 되었다. 의지하던 유일한 대상이 사라진 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무엇을 판단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부모님 집에서의 생활은 마치 낯선 나라에 떨어진 것 같았다. 할머니 집과는 다른 관계 방식에 적응해야 했지만, 나는 그런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을 몰랐다. 할머니 외에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려짐의 두려움은 컸다. 성인이 되어서도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 버려진다는 것이었다. 사회성 결핍으로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어려운 만큼 만나는 사람과의 이별이 어려웠기에, 간신히 맺은 몰았다 나는 무엇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은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지하고 매달리는 일만 할 수 있었다.


내 집착은 이별을 앞당기는 기폭제였고 내가 가진 결핍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했다. 그 모습을 알아챈 사람들은 여지없이 그런 마음을 이용하고 떠났다. 부초같은 방황은 길어졌고 자존감은 도로의 껌딱지처럼 매일매일 납작해졌다.

“너, 너무 부담스러워."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할머니에게서 분리되었던 그 순간의 버려짐이 다시 되살아났다. 그리고 나는 더욱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결국 더 빨리 관계는 끝났다. 끝없는 악순환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이방인 같았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칼라 영화에 흑백으로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간혹 파스텔 빛의 사람들이 곁에 있었지만 결핍을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눈치만 보게 되었고, 그런 생각은 더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판단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 거울 속 얼굴은 웃는 법도, 우는 법도 잊어버린 얼굴이었다.


숨을 쉬는 것은 나였지만 삶을 내가 살고 있지 않았다. 타인에 의지한 채 끌려 다니느라 다칠 대로 다쳤고, 지칠 대로 지쳤다. 나는 그저 타인의 기대와 필요에 반응하는 배경일 뿐이었다.


그리고 서른이 되던 해, 다시는 걸어 나올 수 없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동굴에 갇혔다.


더이상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가장 근복적인 문제와 마주하게 되었다.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나를 끊임없이 타인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모순된 기대인지 그때서야 깨달았다.


가장 어두운 시간이 오히려 빛을 찾아 나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살 것 같은 불안이,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절박함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내가 이 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야만 했다.


분명히 원인이 있을 것이다. 머릿속이 꽃밭이 아닌 이상 멀쩡하게 생겨서 왜 이렇게 사는지 알아야 했다. 천천히 과거로 이동하며 어린 시절까지 돌아가 거기서 시작했다. 할머니의 치맛자락, '지지'라는 말, 버려짐의 기억들. 한 조각씩 퍼즐을 맞추듯 내 삶을 재구성했다.


원인을 찾고자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 '결핍'이었다. 그것도 사랑을 받지 못해서 생긴 결핍이 아니라 과잉보호가 만든 결핍이었다. 이제 와서 할머니의 애정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다.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애정했고 아꼈고 사랑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 난 분명히 사랑받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당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고, 우리는 서로 틀린 애착을 가졌을 뿐이다. 이런 생각이 들고서야 나의 모든 행동, 두려움, 집착이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원론적인 문제의 실마리를 발견했고, 이제야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서른에 시작된 이 여정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때로는 '이미 반 백 년을 살았는데, 이제 와서 뭐하러.'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마다 내 안의 꼬마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 이제라도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보자.”


이 여정이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삶은 계속되고 있다. 과거의 나를 이해하는 것은 미래의 나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이다.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놓지 못했던 그 작은 손이 주름지는 할머니의 손이 되어가지만 그 손으로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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