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의 연탄 사진
서울과 강원도에서 연탄과 마주쳤다. 어릴 적엔 매일 보던 것이었지만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라 신기하게 바라봤다. 하얗게 타버린 연탄은 버려지지 않고 골목과 카페의 장식품이 되어 있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안도현 시인의 시구를 중얼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연탄 사진 두 장이 생겼다.
두 사진에서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장난 삼아 질문을 던진다. 예쁜 카페에 장식품으로 쓰인 사진과 까만 벽 앞에 거칠게 놓인 연탄 사진을 보여준다.
“어느 사진이 어디일까?”
거친 사진은 여량. 예쁜 사진은 연남동. 꾸밈없이 당연한 답이다. 정선의 여량은 강원도 오지이며 바로 옆 마을이 폐광된 탄광촌이다. 반대로 연남동은 아기자기하고 이색적인 분위기로 서울에서도 유명한 동네다. 연탄이 주는 느낌이나 낙서의 모양으로 장소는 짐작된다.
답을 말하면 검은 벽에 거친 연탄이 연남동 어느 골목의 담벼락이고, 예쁜 카페가 여량역 앞의 작은 카페다. 장소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 나는 연탄 사진이다. 답을 대부분 틀리지만, 가끔 맞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면 '거꾸로 답했다'는 말에 함께 웃곤 한다.
연탄에 대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대 중반 에도 아주 중요한 물건이었다.
탄광이 사라지고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몇몇 남아 있던 마을에 작은 집 한 채를 빌렸다. 그 산골에서 연탄과 겨울 내내 씨름을 했다. 연탄을 꺼뜨리지 않기 위하여 열심히 시간을 계산했다. 잘못 갈면 잠자다 일어나 새벽에 연탄을 갈기도 했다. 새벽잠을 설치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언제나 내 계산과 다르게 연탄은 타들어갔다. 매번 아침마다 냉방에서 눈을 떴다.
연탄방은 온수가 콸콸 나오는 구조가 아니다. 온수를 쓰기 위해 난로를 사다 놓고 뚜껑에서 이어진 고무호스로 열을 전달해 물을 데워주는 통을 샀다. 처음 따뜻한 물을 썼던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행복한 웃음이 난다.
연탄은 어릴 때는 내가 손댈 수 없는 물건이었지만 성인이 되어서 직접 경험했던 기억 때문에 내겐 특별한 물건이 되었다. 긴 세월 동안 연탄은 난방과 취사를 해결해 주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보일러가 일반화되면서 서서히 사용자가 줄었고, 연탄은 자연스럽게 지워져 가는 추억이 되었다.
그렇게 잊혀가는 연탄, 그 연탄을 담은 두 장의 사진이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다. 언젠가 사진을 보던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니, 내가 혹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짐작했던 것들의 오류가 얼마나 많을까?”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당연하다고 짐작했던 오류 때문에 나도 아팠고 너도 아팠던 시간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건망증 환자처럼 자꾸 잊는다. 그래서 요즘 '당연히'라는 말을 자주 생각한다. ‘당연히 그럴 거야, 당연히 그렇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두 장의 연탄 사진처럼 우리 예상과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러니 모든 순간, 모든 시간 아무것도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고 우리의 대화는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