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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ropsia Aug 05. 2024

번외_자기 말만 하는 남편

감각성 실어증

대화를 한다는 것은 꽤 복잡한 일이다.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들은 소리 중에 언어를 구분하고, 구분한 언어를 이해해서, 언어라는 형태로 적절한 크기와 빠르기의 소리를 내어야 하는 일이다. 인간이 지구상에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화로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서로 연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포함될 것이다. 인간에게 언어능력은 최상위 포식자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은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중요한 기능을 한쪽 뇌에서만 조절하지 않고 양쪽 뇌에서 조절하는 경우가 많다. 심장 뛰는 것, 숨 쉬는 것, 대소변 보는 것, 자세를 유지하는 코어 근육들 조절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중요한 기능들을 양쪽에서 같이 담당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만약 한쪽 뇌에서만 담당했다가 그쪽 뇌가 손상받으면 생존에 바로 문제가 생기니까 양쪽에서 같이 담당하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언어는 진화 과정 중에 인간에게만 나타난 고위 기능으로 생존에 아주 기본적인 기능이라고 하긴 어렵다(물론 의사소통을 위한 몸짓, 소리까지 언어에 포함시킨다면 동물들도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진화의 역사상 최근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언어를 알아듣고 말하는 기능은 대부분 편측, 그것도 좌측 뇌에 있다. 그래서 좌측 뇌 손상을 입게 되면 안타깝게도 말을 못 알아듣거나, 알아듣더라도 말을 못 하거나, 알아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좌측 측두-두정엽 부위에 뇌경색이 발생해서 입원한 46세 남성이 있었다. 해당 부위는 말을 알아듣는 기능을 하는 곳(베르니케 영역)이라서 환자는 말귀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었다. 입원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지만 환자는 알아듣지 못했다. 환자는 퇴원하고 싶다는 말만 아내에게 계속 반복했다. 결국 환자의 아내가 내일 일찍 퇴원하겠다고 나에게 전달한다. 아내의 얼굴에는 자신도 남편의 의지를 어찌할 수 없다는 포기의 감정이 드러난다. 나는 며칠 더 입원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자고 이야기하고 대신에 퇴원 후 주의해야 할 점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 한파로 너무 추우니까 내일 오전 일찍 보다는 오후에 퇴원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아내는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어떻게 이해시킬까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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