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를 보고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소공녀를 봤다. 주인공 미소는 담뱃값과 월세가 오르자 금연대신 집을 나왔다. 매일 돈에 허덕이지만 좋아하는 것 만큼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미소의 남자친구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발령이 났다. 갑자기 멀리 떠나게 된 그에게 미소는 말했다. “나는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한솔이 너. 그게 내 유일한 안식처야. 너도 알잖아. 근데 니가 없으면 어떡하라구!”
미소의 대사를 듣고 내 머릿속은 “내게 유일한 안식처라고 부를만한 게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담배도 안피고, 술도 그리 즐기진 않고. 뭐든 깊이 마음을 주지 않는 내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게 있을까 싶었다. 취향이 확고한 척 하지만 대부분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더 크게 좋아하는 척 하는 것들이 떠올랐다. 그러다 5만원 밖에 남지 않은 잔고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랬다.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 2주나 남았는데, 딱 5만원이 남았는데, 난 어제 6만원을 썼기 때문이다. 인왕산이 훤히 보이는 카페, 제일 좋아하는 ‘I fall in love too easily’가 흘러 나왔던 망원동의 작은 레스토랑, 덥지도 춥지도 않아 앉아서 술 한 잔 기울이기 좋았던 한강에서 어떻게 돈을 쓰지 않을 수 있었을까. 주말을 보내기 위해 쓴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내가 보내는 평일은 앞으로 보낼 주말을 상상하며 보내는 시간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카페, 잡지에서 본 레스토랑은 모두 네이버 지도에 저장해두고 계획을 세운다. 집에 조용히 있는 시간도 좋지만 하루는 꼭 밖에 나가야한다. 서울의 저녁 냄새를 맡지 않고 지나가는 주말은 퍽 허전하기 때문이다. 약속이 있건 없건 토요일은 주로 밖에 나간다. 누구와 함께 하지 않을 땐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일이라도 해야 후회없이 보낸 느낌이다. 일요일에는 늦게 일어나 밀린 빨래를 돌리며 침대에 앉아 책을 읽는다. 그때그때 다르지만 책을 읽을 땐 주로 재즈를 튼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쳇 베이커의 나른한 목소리가 섞이면 일요일 아침의 말랑한 기분이 든다.
주말이 내게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내 유일한 안식처라는 의미를 부여하니 새롭게 느껴진다. 중요하다는 말과 안식처라는 말이 이렇게 다를 일인가? 갑자기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서 더 알차게 보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유일한 안식처를 진정한 안식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평일에 부지런히 계획을 세워야겠다. 다음주 주말엔 뭘 하지?
2019.07.14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