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남자'와 '유로스포츠'가 협업한 평창 특집 시리즈를 마치며
국내의 가장 큰 콘텐츠 회사에 입사했을 때, 120여 명의 동기 중 거의 유일하게 누구도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았던 '디지털' 본부(온라인 사업본부)로 배치가 된가장 불운한(?) 사람이었던 나는 그렇게 처음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방송과 영화, 음악과 공연사업은 회사의 핵심 부문이었고 온라인 사업은 아직 채 '부문'이라는 타이틀 조차 갖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디지털 조직에 소속된 우리는 신생 산업의 태동에 기여하는 과정에서의 많은 배움과 더불어, 소속 덕분에 서러운 상황들을 많이 겪어야했다. 함께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하기 어려웠음은 물론, 넘을 수 없는 두터운 벽 앞에 독립적인 자생에 대한 도전이 계속되는 날들이었다. 불과 몇년 전의 이야기다.
시간이 흘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한다. 나 또한 디지털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겪으며,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옮기며, 독립 스튜디오를 만들며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영국남자의 특집 시리즈는 '올림픽'이라는 빅 이벤트를 맞아 거대 미디어그룹인 '유로스포츠'와의 협업을 통해 이뤄졌다. 글로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올림픽 중계 방송국과의 동침은 6개월 여 준비 끝에 지난 1개월 간 진행됐고 바로 어제 업로드 된 영상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과연 우리는 거대 미디어그룹과 어떻게 일 했을까?
특집 시리즈는 개막식이 열린 2월 9일부터 약 한 달 간 '평창 애프터 파티'라는 부제로 경기 외에 올림픽 계기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와 경험을 소개하는 컨셉으로 기획되었다. 격일의 라이브 방송과 사전 제작 영상, 라이브 방송 하이라이트로 구성됐다.
라이브 방송에서는 다음날 업로드될 사전 제작 영상이 먼저 공개되고, 강릉에 세팅한 스튜디오에서 각 나라의 선수들과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약 1시간 분량의 라이브 방송이 진행됐다. 라이브 방송이 끝난 후 전체 다시보기를 제공하지 않는 대신, 라이브 방송의 하이라이트 또는 꿀잼 부분은 다시 10분 이내 1편의 영상으로 편집되어 채널에서 공개됐다.
작은 디지털 스튜디오와 거대 미디어 그룹은 어떻게 일했을까?
이번 시리즈는 유로스포츠 미디어그룹의 디지털 콘텐츠 부문과 협업하였고 콘텐츠 기획은 전적으로 우리 쪽에서, 라이브의 다채널 송출 및 스포츠 스타들의 섭외는 유로스포츠에서 맡았다. 이번 협업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콘텐츠 기획에 대한 오너십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디지털 오디언스를 사로잡는 문맥을 가장 잘 아는 기획자이자 미디어, 진행자로서의 역할을 맡고, 유로 스포츠에서는 다중 송출 관련 모든 인프라와 기존에 디지털 콘텐츠에서 만나기 힘든 스포스 스타들의 어레인지를 맡았다.
각자의 전문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
아마 우리에게도 이 번 협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공을 들여야했던 부분이자, 대부분이 협업 케이스에서 넘지 못 하는 산이기도 할 것이다. 대부분의 파트너가 디지털 오디언스가 어떤 영상에 환호하는지에 대한 경험이 디지털 기반으로 성장해 온 우리들에게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 주도권을 내어주는 것은 정말 쉬운 결정이 아니다. 다만, 다시 없을 평창 올림픽 시리즈를 준비함에 있어 양 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콘텐츠'로 많은 '시청자'에게 선보이는 것이었기에 최선의 방안을 도출할 수 있었다.
라이브는 영국남자 채널과 유로스포츠 디지털 채널에 동시 송출하며, 약 1시간 동안 격일로 진행되는 생방송이라는 형태와 스튜디오에 팬들을 방청객을 초청하는 새로운 포멧을 시도하였다. 사전제작 영상의 경우 전적으로 기존 영국남자 콘텐츠의 포멧을 그대로 살리되 먹거리 뿐 아니라 '겨울스포츠'와 '평창'에 걸맞는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다.
금일 기준으로 평창 시리즈는 영국남자 유튜브 채널에서 올림픽을 진행한 1개월 간 약 1,500만 조회수와 약 6,000만 분의 시청시간을 기록하였다. 이 중 구독자의 비중은 38%로, 전체 조회수의 62%는 구독하지 않은 시청자로부터 조회되었다. 최근 1개월 간 발생한 총 조회수는 약 2,800만 조회수로, 평균적으로 1개월에 발생하는 조회수의 약 2배 가까이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실제로 개막식에서 화제가 되었던 통가 선수와의 라이브도 긴밀히 기획됐다. 이슈의 발생과 소진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고 예측하기 어려운 디지털 제너레이션의 특성 상, 사전에 섭외된 게스트는 아니었다. 기획부터 섭외, 실제 라이브까지 채 3일이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영국남자 콘텐츠는 사전에 충분한 기획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기는 하지만, 당일에 기획하여 촬영부터 편집까지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작은 팀이 움직이는 재빠른 속도가 때로 그때 그때 보고싶은 콘텐츠를 보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미 모호한 경계를 더이상 경계하지 말라
이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일 해온 팀이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되며 일하는 방식의 경계도 모호해졌을 뿐 아니라, 시청자 입장에서도 더 이상 특정 스크린에서만 볼 수 있는 대상의 경계 또한 모호해지고 있다. 경계를 넘나들고자 하는 자와 경계를 긋고자 하는 자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누구의 노력이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었을까?
산업의 경계보다 eyeball이 어디로 향하는지가 더 중요하며, eyeball을 잡기 위해서 경계를 허물고 협업하는 것도 노력해야 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해외에서 방한하는 헐리웃 스타들을 연애가중계가 아닌 영국남자 채널에서 만나는 것이 당연해질지도 모른다.
작년과 올해 '레거시 미디어'라고 불리는 국내외 방송 그리고 영화사와의 협업 과정에서(특히, 최근 2~3년) 그러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들을 꾸준히 시도해보려고 한다. 이미 많은 곳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콘텐츠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기쁜 일이고, 더욱더 폭넓은 기회가 열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곧 '콘텐츠'로 대동단결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혹시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강릉에서 만난 외국인들의 생각을 담은 영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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