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벽 4시 반, 심장마비 걸릴 뻔 한 신랑.....
2018년, 그러니까 벌써 작년이네. 연말을 맞이하여 아버지가 3개월 관광비자로 프랑스에 오셨다. 그 후 한 달 뒤인 2019년 1월에는 동생이 일년 학생비자를 받아서 여기에 왔고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에는 신랑이랑 둘만 살던 집에 사람 둘이, 그것도 우리 가족 둘 씩이나 더해지니 복작복작하고 음식할 맛도 나고, 한국말로 실컷 떠든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재밌고 즐거웠는데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신랑이랑 아버지는 우선 말이 통하지 않아, 무조건 나를 거쳐서 말을 하게 되었고 중간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해석해줘야하는 나는...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자꾸만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말을 듣게되면 '화'가 나기 시작했고 굳이 이런것까지, 통역을 해줘야하나 싶은 상황도 생겼고...시댁모임에 우리 가족 전체가 참석했을때는 그야말로 초긴장상태에 아버지의 돌발행동과 돌발발언으로 난감한 순간이 꽤 있었다...
처음 프랑스에 와서는 신랑이랑 같이 사는게 은근히 불편했는데, 이십년 넘게 살아온 가족이 신랑보다 더 불편해지다니....
신랑은 내가 한국말로 떠들고 웃는 모습에 자기가 더 행복해하면서 '너가 좋으니까 나도 좋아' 라고 늘 말해줬었는데 이상하게 나 스스로 눈치를 보게 되었다.
신랑은 작년 9월부터 지방출장이 잦아져서 한 달에 두 번, 주말에만 집에 올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좀 편하게 늘어져있고 쉬고싶을텐데(실제로 눈치보지 않고 잘 쉬는거 같긴했음) 나는 괜히 우리 식구들이 신랑 쉬는거에 방해하지 않을까, 우리끼리 너무 떠들면 신랑은 소외감 받지않을까 걱정하곤 했다. 그리고 우리 둘만의 시간을 좀 보내고싶은데 데이트라도 나갈까 싶으면 집에 달랑 둘이 남아있을 식구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조금 찝찝하기도했고...이래저래 이쪽저쪽 눈치보느라 바빳던것 같다.
그래도 음식가지고 스트레스 받지는 않았다. 워낙 한식을 좋아하고 또 식구들도 나름 여기 음식을 좋아해줘서 내가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식사를 만들어내면 다들 맛있게 먹어주니 이런 점은 또 엄청 고마웠다.
이렇게 양쪽에서 혼자 스트레스 받느라고 지쳐가고있는데...주변 지인들의 임신 소식과 출산 소식 또 난임소식에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이전까지는 피임만을 고민해봤는데 어느샌가 신랑과 아이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신랑의 근무스케줄 때문에 영....날짜 맞추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뭐...기회 닿는대로 노력을 했고 그 결과 한 달만에 우리에게 '똑똑이'가 찾아와주었다.
2019년 4월 14일 일요일 새벽 4시 반 좀 넘어서, 궁금함을 참지못한 나는....이 새벽에 일어나서 임신테스트기를 해봤고 짜잔!!! 파란 십자가 모양 positive 선을 보았다. 그리고는 잠자고 있는 신랑을 꺠웠다.
"여보 준비됐어?"
"응? 준비? 뭘 준비? 지금 몇 시인데?"
"아빠 될 준비"
.....................................5초 정적 후
"진짜야?!!!!!!!!!!!!!"
눈이 빨개지더니 얼굴까지 빨개지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며 진짜냐고 연신 물었다.
"진짜야. 두줄이야. 아빠가 된 걸 축하해"
사실 저 5초간의 정적동안 나는 신랑이 얼마나 기쁘면 말을 못할까 생각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물어보니
본인은 아빠가 된다는 기쁨보다도 아빠가 되어 생각해야할 많은 것들이 더 크게 다가와서 약간 흥분적 쇼크상태랄까? 온갖 감정이 다 휘몰아치고 머릿속에 계산이 서질 않아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이때 신랑이 약간 어른스럽다고 느꼈다)
우리 둘이서는 '한방요법'이라고 하여 배란기때 주구장창 시도하여 한방에 아기를 갖자는 계획이었는데 그게 정말 현실로 이뤄지니 지금 생각해도 약간 얼떨떨하다. 이렇게 한번에 찾아와준 아기가 많이 대견스럽고 마냥 신기하고 또 매일매일이 걱정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한방요법' 을 진행하고 있을때 보러갔던 집이 지금 우리가 산 집이네?)
2019년 상반기는 일도 쉬고, 학교도 다녀보고, 가족들이랑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면서 투닥거리고 또 웃고 뭐 그런 소소한 생활이었다. 아기를 품고 나서부터는 폭풍입덧에 제대로 먹질 못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뱃속에서 쑥쑥크는 아가가 있어서 덜 외로웠고 밖에서 열심히 일해주는 신랑 덕분에 집에서 실컷 놀고먹고 할 수 있었고 이런 모든 것에 감사한 일상들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매우 불안하고 무섭기도 했다. 덜컥 임신이, 기대하던 임신이 됐지만...과연 내가 준비가 된걸까?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아직 어린 것 같은 우리가....아직까지 '내'가 먼저인 우리가 '아기'가 먼저인 삶을 쉬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좋은 부모는 과연 뭘까? 내가 닮지 말아야할, 닮으면 좋겠다는 우리 부모의 모습은 무엇일까? 준비된 부모란 언제 가능한걸까?
이런 끈임없는 질문들을 내 머릿속에서만 되내이다가 신랑한테 툭 던졌다. 신랑은 의외로 담담했다.
"걱정 말어, 아기는 늘 선물로 찾아오는거라잖아. 다 괜찮을거고 너는 분명 좋은 엄마가 될거야. 너의 그 생각들이 증명해주고있잖아."
얘기를 듣고나니 의외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러다가 또 드는 생각...
'그럼 본인은요? 저는 좋은 엄마 될건데 본인은 좋은 아빠 될거라고 확신하시나요?'
나는 안다. 신랑은 좋은 아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 말로 "Papa poule, 파파뿔"이 될 거라는 것을....
아기 주변에 있으면서 늘 노심초사하고 옆에서 지키려고하고 암탉이 병아리들 챙기듯이 아빠가 아이를 주의깊게(?) 챙기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석하면 되려나? 헬리콥터 맘까지는 아니더라고 엄청 자기 아기를 챙길 사람이라는 걸 안다. 왜냐면 임신기간 내내 나를 그렇게 챙겼으니까.....
조만간 임신일기를 써봐야겠다.
더하기_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면(가끔이라도) 나중에 한번씩 읽으면서 이때의 나를 상기시키고 또 한 단계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