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와서 살이 쪘다. 빵이 맛있고, 치즈가 싸고, 식사 때마다 가벼운 와인을 반주로 마셨다. 한국에서 입던 바지가 안 잠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결심했다. 운동을 해야겠다.
집 근처에 필라테스 수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파리 15구의 'Le Patronage Laïque Jules Vallès'라는 문화센터였다. 이름은 길고 어려웠지만, 집에서 걸어서 10분이라는 게 결정적이었다. 등록비도 놀라울 만큼 저렴했다. 한국에서 필라테스 한 달 다니는 돈이면 여기선 1년을 다닐 수 있었다.
레깅스를 사고, 요가 매트를 챙겼다. 첫 수업 날, 나는 살짝 긴장하면서 문을 열었다. 거울 앞에 늘어선 날씬한 파리지엔들을 상상했다. 내가 제일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했다.
문을 열자마자, 나는 멈췄다.
스튜디오 안에는 8명 정도가 있었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건, 흰 머리카락이었다. 한 명, 두 명이 아니었다. 거의 전부였다. 나는 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평균 연령 75세. 아무리 낮게 잡아도 70세는 넘어 보였다.
내가 막내였다. 압도적으로.
수업이 시작됐다. 강사가 첫 번째 동작을 알려줬다. 매트 위에 서서 한 발로 균형을 잡는 것. 나는 별생각 없이 한 발을 들었다. 10초, 20초. 버틸 만했다.
옆을 봤다. 흰 머리의 여성 한 분이 두 손으로 벽을 짚고 있었다. 한 발을 들려고 하는데, 몸 전체가 흔들렸다. 5초를 채 버티지 못하고 발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들었다. 또 내렸다. 표정은 담담했다.
그 옆에는 한쪽 팔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남성이 있었다. 뇌졸중 후유증처럼 보였다. 그는 움직이는 한쪽 손으로만 매트를 짚고 상체를 일으키려 애썼다. 강사는 그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등을 받쳐줬다.
맞은편에는 손이 계속 떨리는 여성이 있었다. 그 떨리는 손으로 그녀는 고무 밴드를 잡고 당겼다. 밴드가 흔들렸다. 그래도 그녀는 놓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살 빼려고 온 거 맞나. 갑자기 내 레깅스가 부끄러워졌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한동안 그 장면을 잊지 못했다. 한국에서 필라테스는 '몸매 관리'의 영역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거울 속 내 모습, 레깅스 핏. 그런 이미지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여기서 본 건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이 사람들에게 필라테스는 '예뻐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를 내 발로 서는 것'이었다.
마비된 다리를 끌고 매트 위에 선다. 떨리는 손으로 밴드를 잡는다. 5초밖에 못 버텨도 다시 한 발을 든다. 이건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끝까지 내 몸을 내가 움직이겠다는, 어떤 의지 같은 것.
나는 살을 빼러 왔는데, 그들은 삶을 붙잡으러 와 있었다.
그제야 수업의 분위기가 이해됐다. 강사가 왜 그렇게 천천히 설명하는지, 왜 동작 하나하나에 "Doucement, doucement(천천히, 천천히)"를 붙이는지. 여기는 성과를 내는 곳이 아니었다. 유지하는 곳이었다. 오늘의 몸을, 내일도 쓸 수 있게 준비하는 곳.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이 정도 몸 상태의 노인들은 대부분 집에 있거나, 병원에 있거나, 요양시설에 있다.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문화센터에 와서 운동을 한다?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파리에서는 왜 이게 가능할까. 나는 조금씩 이 동네의 구조를 알게 됐다.
내가 다니는 이 센터는 파리시에서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시립 시설이다. 수업료는 가구 소득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프랑스에서는 이걸 'Quotient Familial'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하면 소득이 낮으면 거의 무료에 가깝게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내가 놀랐던 그 저렴한 등록비도, 이 시스템 덕분이었다.
파리시에는 'Paris Sport Seniors'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55세 이상이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운동 프로그램이다. 노인들이 돈 때문에, 거리 때문에, 정보 부족 때문에 운동을 못 하는 일이 없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75세 할머니, 80세 할아버지들이 여기 나올 수 있는 건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올 수 있게 만들어진 구조가 있었다. 돈이 없어도 되고, 멀리 안 가도 되고, 특별히 건강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나오면 되는 구조.
한국에도 노인복지관이 있고, 경로당이 있고, 보건소 프로그램이 있다.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숫자를 보면 풍경이 달라진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돌봄은 81.4%가 가족이 담당한다. 장기요양보험을 통한 공적 돌봄은 30.7%에 불과하다. 돌봄의 무게가 여전히 가족의 어깨에 실려 있다는 뜻이다.
독거노인 비율은 32.8%로, 3년 전보다 13%포인트나 급증했다. 혼자 사는 고령자 중 18.7%는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한국 노인의 40.4%는 OECD 기준 빈곤층이다. OECD 37개국 중 1위다.
더 충격적인 건 이거다.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36.2%로, 이것도 OECD 1위다. OECD 평균 15%의 두 배가 넘는다. 한국의 노인들은 쉬지 못한다. 쉴 수가 없다.
운동은 그다음 문제다. 생계가 먼저고, 병원비가 먼저고, 자식 걱정이 먼저다. "혼자 버스 타고 문화센터에 가서 필라테스를 한다"는 문장이 한국에서는 왜 낯설게 느껴지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나는 아버지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28년째 오랜 투병 중이다. 작년부터는 알츠하이머 진단까지 받았다. 엄마는 그 긴 세월 동안 아버지 곁을 지키며 돌봄에 전념해왔다.
아버지가 아직 더 걸을 수 있었을 때, 운동을 시켜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어디로 모시고 가야 하는지, 비용은 얼마인지, 누가 데려다드릴 수 있는지. 엄마는 이미 돌봄으로 지쳐 있었고, 나는 일을 해야 했다.
파리의 그 체육관에서 떨리는 손으로 밴드를 잡던 할머니를 떠올린다. 그분은 누군가 데려다준 게 아니라, 스스로 왔다. 혼자 올 수 있게 만들어진 도시에서.
나는 몸짱이 되려고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다른 걸 배웠다. 늙고 아픈 몸을 어디에 둘 것인가. 그건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도시의 설계일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아픈 몸을 어디에 두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