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선
혜진의 시선
혜진은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알고리즘이 띄운 낯선 계정 하나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영'
그의 프로필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특정한 브랜딩의 선호도가 뚜렷한 그만의 취향이 로고의 다채로움으로 현란하게 그녀의 눈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도톰한 청의 질감, 진하게 물들여진 모카 빛 로고로 재킷의 오돌토돌함이 느껴지며, 질적 취향의 마감이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듯했다.
명품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시크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진, 고가 예술품이 가득한 갤러리에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모습, 땀에 젖은 채 농구 코트 위에서 웃고 있는 사진. 희미하게 웃고 있는 미소 속의 얼굴에서 아련한 미련과 기대감이 스쳐갔다.
뇌과학 전문가라는 소개글이 아니었다면, 혜진은 그를 그저 관종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 사람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혜진은 호기심에 그의 피드를 더 깊게 파고들었다. 다양한 분야의 재능을 뽐내는 사진들 속에서, 혜진은 묘한 공허함을 발견했다. 완벽하게 보정된 브랜딩과 얼음처럼 완벽한 외모 뒤에 숨겨진 그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그는 마치 자신을 투명한 막으로 철저히 포장하며 외로움을 숨기려는 듯했다.
혜진은 문득 자신의 지난 관계를 떠올렸다. '결국 모든 관계는 유통기한이 있는 법이니까'. 어쩌면 저 완벽한 사람마저도, 그 기한 앞에서 무너졌을지 모른다는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혜진은 홀린 듯 그의 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의 피드는 길고 어쩌면 AI가 쓴 것 같은 모호한 문장들, 지극히 전문적이지만 감정이라곤 찾을 수 없는 차가운 문장들이었다. 그는 뇌과학 논문을 인용하거나, 인간의 감정회로를 설명하며 무미건조한 문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혜진은 그 냉담함 속에서 묘한 모순을 발견했다. 모든 것이 계산된 듯 완벽해 보이는 그의 글과 사진은 오히려 깊은 공허감을 가장 뜨겁게 드러내고 있었다.
"슬픔이란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는 현상에 불과하다."
마치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만 모르는 세계의 언어로 말하는 듯했다.
혜진은 그의 글에서 사랑에 깊게 상처받아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려는 사람의 흔적을 읽어냈다.
'이 사람도 나처럼 관계의 불안정성에 아픈 사람인가?' 왠지 모를 동질감이 밀려왔다.
그는 슬픔을 감정적 고통이 아닌, 단순한 과학적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고 통제하려는 강박처럼 보였다.
혜진은 무심코 그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았다.
"슬픔을 과학적 현상으로 정의해도, 그 슬픔을 안아줄 수 있는 건 결국 인간의 마음뿐이죠. 부디 그 마음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올리는 순간에도 혜진은 망설였다. 자신의 아픔을 훑고 지나가는 손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고, 정확히는 부끄럽게도 자신의 애잔한 마음을 옮겨 적는 듯한 보상 심리의 감정이 손끝에서 미세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댓글은 그저 지나가는 수많은 응원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혜진은 알 수 없는 기대감에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의 피드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이영이라는 차가운 미스터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영의 시선
이영은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들었다. 알림 창에 뜬 댓글 하나가 그의 시선을 붙들었다. 수많은 찬양과 메시지들 사이에서, 혜진이라는 이름의 댓글은 낯선 아날로그적 질감을 지니고 있었다.
"슬픔을 과학적 현상으로 정의해, 그 슬픔을 안아줄 수 있는 건 결국 인간의 마음뿐이죠. 부디 그 마음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이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글은 계산된 것이었다. 텅 비어버린 자신의 감정 회로를 과학적 언어로 포장하여, 무의미한 관계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치밀한 시도였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의 완벽한 논리의 방어막을 한순간에 뚫고 들어왔다. '마음?' 이영에게 마음은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물처럼, 그저 불필요한 감정의 찌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댓글은 그의 견고한 시스템을 흔들었다. 마치 수많은 공식과 데이터 속에 숨겨놓은, 자신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아팠던 기억을 들킨 기분이었다.
이영은 혜진의 프로필을 클릭했다. 그의 피드와는 전혀 다른 따스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사진들. 꽃, 책, 그리고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 억지스러운 화려함이나 계산된 냉정함은 없었다. 그녀의 글들은 마치 잃어버린 감정들을 찾아주는 다정한 길잡이 같았다.
말로는 다 채워지지 않을 감정선이 그녀의 글들에 녹아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배열이 인간으로부터의 자연적 치유를 보듬어 주는 듯한 따스함을 머금고 있었다.
이영은 자신의 엄지 손가락으로 액정 속 그녀의 글을 문지르는 사이, 겨울 아침 공기마저 싱그럽게 만드는 날카로운 냉기 위를 타고 흐르는 부드러운 헤이즐넛 커피 향과 같은 서정적인 햇살이 느껴졌다.
'사랑은 유통기한보다 짜릿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맛.'
이영은 그 문장을 읽으며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는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잊고 살았던 오래된 감정들이 차가운 데이터베이스 깊은 곳에서 움찔거리는 듯했다. '이것은 데이터 오류다. 감정은 화학반응일 뿐이며, 이런 낭만적인 문장은 비논리적이고 위험하다. 다시는 기한이 정해진 관계의 고통에 노출될 수 없다.' 차갑게 닫아 두었던 마음의 문틈 사이로, 따뜻하지만 위험한 바람이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결코 나 자신을 속이려 들어도 부정할 수 없는 얄팍한 진심의 온기가 손등을 타고 그의 볼의 잔털마저 거꾸로 솟게 하는, 어쩌면 바라고 있었을지 모를 진심을 흔들었다.
그는 망설였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 비논리적인 감정에 대해 무언가 답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영은 텅 빈 메시지 창을 한참 동안 노려보다, 마침내 그의 과학자로서의 통제를 포기하는 듯한 짧은 문장 하나를 남겼다.
"이젠 마음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가장 미스터리한 영역이더군요." 손가락 마디의 힘에 부딪혀 플라스틱의 키보드판에 내는 딱딱한 소리에 마지막 정점을 찍으며 그는 글을 응시했다. 마지막 점을 찍는 순간의 딸깍거리는 소리는 마치 저항할 수 없는 바람의 역풍과도 같았다.
혜진은 그날 밤, 이영에게서 온 답장을 보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의 댓글을 읽은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의 짧은 한 문장에서 혜진은 희미하지만 진실된 그의 외로움과 갈망을 가슴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온라인이라는 낯선 미술관의 복도에서 어쩌면 현실의 출구를 찾아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