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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낯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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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Jun 08. 2017

언제부터인지 예술가들의 이름값이 무의미하고 심드렁하다.

청두成都 - 샤오츠小吃와 춘시루


광한의 삼성퇴 박물관에서 돌아오자마자, 오후 5시경 찾은 곳은 춘시루春熙路의 인파 속이다. 춘시루는 청두成都의 중심인 티엔푸天府광장과 가깝고 지하철 2,3호선이 관통하는 곳으로, 2017년 현재 인구 약 1,570만 명의 청두成都시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 중의 하나이다. 세련된 도시의 분주함과 떠들썩함에는 달콤한 유혹들이 도사리지만 여유 있는 보이지 않는 가능성은 여행자를 더욱 달뜨게 만드는 법이다. 언제 피곤했냐는 듯 제 고향을 찾아온 것처럼 발걸음은 잘 정비된 도심의 인파 속으로 가볍게 헤엄쳐 들어간다.   

  

춘시루


롱챠오쇼우龙抄手와 단단미엔担担面


거리에는 규모가 큰 레스토랑도 있지만 샤오츠小吃가게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샤오츠小吃는 중국 사람들이 즐겨먹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분식에 가까운 길거리 음식이다. 꼬치, 아니면 찹쌀경단이라도 먹을까 말까, 작은 번민 속에서 거리를 기웃거리며 걷다 보니 거짓말처럼 롱차오쇼우龙钞手 간판이 눈앞에 서 있다. 부러 찾아온 것처럼 “여기군”, 하면서 들어가니 넓은 가게 안의 계산대 앞에도 역시 줄이 다. 중국에서는 일단 계산부터 하고 자리에 앉으면 음식을 갖다 준다.   


롱챠오쇼우龙抄手와 수이지아오水饺, 딴딴미엔担担面을 시켰다. 롱챠오쇼우龙抄手는 고기 뼈를 우려낸 국물인 듯한 뽀얀 국물 안에 넓적한 보자기 같은 피로 싼 만두가 들어가 있다. 우리의 만둣국과 비슷해 보이지만, 피는 우리 것에 비해 두껍고 부드러워 식감은 더 풍부하며, 소는 전부 고기로 고소하다. 쓰촨에 한 달 이상을 머물면서 깔끔한 맛부터 육수 위에 고추기름을 끼얹은 것까지, 여러 번 롱챠오쇼우를 먹어봤지만 대체로 기대 이상이었다.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쓰촨 음식 중의 하나다.      


단단미엔担担面은 시장이나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재료를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팔았던 전형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일반적인 면 위에 고기와 야채 등으로 만들어진 고명을 올린 뒤 탕을 붓는 것으로, 간혹 국물이 적거나 없는 것도 볼 수 있다. 땅콩가루 고명이 듬뿍 얹어있는 건식 단단엔은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정말 맛있다.     

롱챠오쇼우龙抄手와 단단미엔担担面


페(푸)치페피엔夫妻肺片fu qi fei pian

 

신난먼 터미널에서 진쟝錦江을 건너 오른쪽으로 춘시루쪽으로 가는 길에는 우육면이나 소고기 요리를 전문적으로 파는 거리가 있다. 중국에서 소고기를 다루는 식당은 대부분 후이족回이 운영한다. 페(푸)치페피엔夫妻肺片으로 유명한 골목 식당을 찾았다.


(푸)치페피엔夫妻肺片은 1930년대 어려운 시절, 한 부부가 소고기를 정리하고 버리는 내장 부위를 가져다가 길에서 같은 처지의 서민들에게 팔기 시작한 요리다.


간판은 붙어있지만 어느 집이 맛 집인지 모를 만큼 마주 보는 식당도 한집처럼 막다른 골목길에 나무 테이블을 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펑퍼짐한 배를 내놓고 앉아있는 동네 아저씨들은 아직은 벌건 대낮에 벌써 길어진 술자리를 하고 있고, 퇴근을 했는지 한 무리의 청년들자리를 잡고 앉아 꿀맛 같은 저녁을 먹고 있다.  


쭈뼛거리며  둘이서 페치페피엔夫妻肺片 한 개를 시켰다. 눈으로 먹는 것이 음식인데 대접 가득 내온 뻘건 국물에 손이 선뜻 안 간다. 처음 음식이 생길 때도 이 모습이었을 것이다. 듬뿍 내온 흰밥에 국물을 퍼서 먹어보니 우리에게 친근한 소고기 육개장 맛인데, 각기 모양이 다른 건더기 고기의 식감이 부드러운 육질이 아니라 나머지 고기답게 졸깃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유명한 시내의 음식점에서 파는 페치페피엔의 사진을 보니 먹음직스러운 부위가 수북하게 올라가 있더라.


夫妻肺片, 보기에는 별로였다. 뻘건 국물 안에는 생소한 소고기 부위들이 가득 들어있다.


마포도우푸麻婆豆腐


청나라 시절, 청두 북쪽에 진마파陈麻婆(곰보자국이 있는 진 씨 아줌마)라고 부르는 주인이 운영하는 길거리 식당이 있었다. 하루는 지나던 장사꾼 손님이 가지고 있던 유채기름과 두부, 소고기를 주면서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손님이 아주 배고픈 처지로 보였는지, 진씨 아주머니는 얼큰한 두부요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녀가 만든 진마파두부는 노동자들 사이에 대박을 친 것이다.


쓰촨에서 보낸 한 달가량, 집집마다 다른 맛인 마포도우푸를 맛있게 자주 먹었다. 고작 두부 맛이 그렇지 얼마나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집마다 陈麻婆豆腐의 맛은 많이 다르다.


청두에서 마지막 날, 체크아웃한 가방을 호텔에 맡기고 루오마시骡马市역 근처의 陈麻婆豆腐 骡马市점으로 향했다. 이곳은 하루에 두 번, 점심과 저녁 장사를 한다. 점심은 12시 즈음에 시작하는데 문을 열자마자 넓은 홀이 사람들로 차 버린다. 저렴하고 맛있는 마포도우麻婆豆腐를 맛보려고 대기 줄에 서는 것은 예사다. 입구에는 진마파두부의 유래가 쓰여 있다. 지금은 거대한 레스토랑이지만, 내부에 걸린 사진을 보니 원래는 주막 같은 작은 집이었다. 맛은 그대로인 듯, 맛을 보자마자 “역시 다르다!” 둘이서 마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는 쓰촨 요리는 평범한 재료를 사용하며 서민들이 먹던 그대로 발전한 것이다.


작은 것 한 개만 시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밥(미판)을 많이 주기 때문


춘시루春熙路의 판다


가는 길목이니 배를 먼저 채우긴 했지만 춘시루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은 국제금융센터인 IFS(Chengdu International Finance Square) 몰 건물에 걸려있는 거대한 판다를 보고 싶어서였다. 판다를 만나는 것은 내가 청두를 방문한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 어리석거나 우스꽝스럽거나, 내 안에는 아직도 피터팬이 살아있는가.


대형 쇼핑몰과 호텔 오피스텔 등이 입주해 있는 IFS 몰에는 한국 브랜드와 레스토랑 등 심심찮게 한국 간판들이 눈에 띈다. 7층에 있는 스카이 가든으로 올라가면 건물에 가볍게 매달린 판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매달린 판다도 작가의 작품이듯이 이곳에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조각 작품들도 있고 한국 작가의 작품도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예술가들의 이름값이 무의미하고 심드렁하다. 눈을 끄는 작품이 있으면 습관처럼 사진 한 번 찍어주는 것이 전부, 어쩌면 예술의 덕목이 사람들 틈에서 찰나를 살아가는 흔적으로 남는 것이 가장 큰 가치가 아니겠는가.


판다 엉덩이가 걸려있는 왼쪽 건물이 IFS 몰이다.
7층에서 만난 판다


청두成都는 이름부터 오래전부터 수도였거나 도읍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청두에서도 정말 오래되었다는 마을 타이구리太古里, IFS몰 바로 옆에는 타이구리거리가 있다. 늦은 오후, 지하철 타이구리역 입구 주변에는 끓어서 넘치는 냄비처럼, 청두의 젊은이들이 끝없이 넘치고 넘친다. 가장 오래된 마을이었던 타이구리는 현대적인 거리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소비가 덕목이라는 자본주의 옷으로 간결하고 세련되게 치장한 중국의 현주소이다.    


청두 여행의 전진기지 춘시루와 신난먼新南门


청두에 들어온 날부터 서울로 돌아온 날까지 쓰촨 여행의 전진기지는 춘시루와 신난먼 터미널新南门客运站 부근이었다.

청두에 도착한 날과 그다음 날은 춘시루 플립플랍filpflop 게스트하우스에서, 3박 4일 구채구와 황룽을 다녀와서는 신난먼 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The hotel zen urban resort朴院禅文化精品酒店에서, 티베트 동부를 23일 돌고 와서는 역시 신난먼 터미널 부근에 있는 oak 호텔에서 묵었다.


내가 묵었던 플립플랍의 방문 317호


플립플랍 게스트하우스는 춘시루와 가깝다. 늦은 밤 도착하고 새벽에 나와야 하는 일정으로, 호텔에서 지내는 시간이 적어 선택한 저렴한 숙소였지만, 다음에 혼자 여행을 한다면 선택하고 싶은 만큼 위치와 시스템, 가격 대비 룸의 청결함이 홀로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정답인 곳이다. 신난먼 터미널 맞은편 쪽에 위치한 박원 호텔은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대부분 조용한(호텔이 이상하게 조용하다) 외국인들이 드나들며 체크인할 때를 제외하고는 로비의 스탭을 만날 일이 없을 만큼 호텔 구조가 자유롭다. 먹는 것에 목숨을 거는 편이어서, 정성이 들어간 조식이 너무 좋아서 묵는 동안 행복했던 호텔이다. oak 호텔은 서울로 오기 전날 하루 묵었는데 의외로 가성비가 좋다. 다만, 하루 묵고 떠날 곳이어서 그냥 보냈지만, 7층 내방은 화장실 냄새가 많이 났다.




거대도시 청두에서 춘시루와 신난먼은 청두 어디든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지하철 3호선과 2호선이 관통하며 시내버스는 물론 시외버스까지 이용이 편리하다.


러산다푸乐山大佛와 싼싱두이三星堆를 갈 때는 신난먼 터미널에서, 판다 기지大熊猫繁育研究基地와 천부 광장 콴자이샹즈宽窄巷子, 진마파두부집을 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했으며 두보초당杜甫朝堂과 청양궁青羊宫, 왕장루望江楼 등은 터미널 근처 숙소 부근에서 35번 버스를, 무후사武侯祠를 갈 때는 신난먼터미널에서 진장錦江 다리를 건너 맞은편에서 82번 버스를 타고 다녔다. 게다가 주변에는 수정방水井坊박물관과 란콰이펑蘭桂坊 거리, 허장팅合江亭, 왕장루望江楼, 구안교九眼桥, 고안순교古安顺桥, 쓰촨대학四川大学 등 핫한 지역이 가깝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강을 따라 산책을 하기에도 좋은, 여행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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