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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May 31. 2017

낯선 문명의 길목에서

청두成都 - 싼싱두이三星堆博物館


청두成都에 지난 새벽에 도착해서 서너 시간 정도 잤나 보다. 거두절미하고 내가 향한 곳은, 너무나 궁금했던 중국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삼성퇴박물관三星堆博物館


四川省 광한广汉에 있는 산싱뚜이(三星堆삼성퇴) 박물관은 청두 신난 먼(新南門) 터미널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 어제는 밤 12시가 훨씬 넘은 새벽에 체크인을 하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던지라, 새벽잠을 털고 아직은 컴컴한 춘시루(春熙路) 부근에 위치한 숙소의 로비를 나와 걸어서 6시 30분경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지런을 떨었건만, 8시 30분 표는 다 팔리고 남아있는 표는 겨우 9시 30분 출발 버스표다. 중국은 예약문화가 발달되어 당일 일찍 출발하는 버스표는 보통 하루 전에는 끊어야 한다.  


그래도 내일 아침 8시에 출발하는 구채구행 왕복 버스표를 구입했으니 절반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버스는 청두 도심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려 박물관 주차장에 내려준다. 버스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으로 보이는 우리에게 버스기사는 친절하게도 오후 3시에 이곳에서 돌아가는 버스를 타라고 거듭 일러준다. 관광객을 위해 마련한 왕복 버스노선이지만 박물관에서 3시간 이상을 보내기는 무리가 있지 않나, 다소 비싸게 느껴졌던 버스비 50원은 왕복 버스비였다.



박물관 입장료는 80元, 매표시간은 08시 30분에서 17시, 개방시간은 18시(청동관은 18시 30분)이다. 정원이 넓게 조성이 되어있는 박물관은 제1전시관(종합관)과 제2전시관(청동관)으로 연결되어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경험하기 힘든,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가 있다는 반가운 정보를 들었는데, 이리저리 살펴봐도 information에서는 안내가 없다.

사드 배치 문제로 두 나라의 심기가 경색되어있는지라 긁어 부스럼이 될까 봐 데스크에 묻지도 못했다. 어젯밤 타고 온 텅 비었던 아시아나 비행기는 물론이고, 이후 청두에서 보냈던 9일 동안 한국인은 한 명(구채구에서 청두로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밖에 만나지 못했던 것을 보면, 2017년 4월 8일 현재, 두 나라의 감정이 정말 살얼음판인 것이 맞다.     

  



싼싱두이三星堆유적지가 발굴된 곳은 (청두成都에서 약 40Km에 있는 지금의 四川성 광한 시에 위치) 삼국시대의 촉나라가 있던 지역으로 이 유적을 고대 촉나라 문화(古蜀文化)라고 일컫는다.    

1929년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유적은 1980년대에 본격적인 발굴을 하면서 중국 문명의 기원인 황허문명의 유물과는 전혀 다른, 놀라운 유물들이 대량으로 출토된다. 


거대한 청동 마스크, 매부리코에 눈이 튀어나온 것도 있다.


고촉古蜀국과 상商나라


중국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나라는 갑골문자로 유명한 상商왕조(기원전 1600년 경~기원전 1046년 경, 은殷이라고도 부름)이다. 삼성퇴 유적은 지금부터 약 5000년~3000년 전의 고촉문화 유적으로 상나라의 서쪽에 위치하며 시기는 적어도 상나라와 같았거나 또는 그 이상으로 올라간다.


상商(은) 나라는 신정일치의 사회였지만 왕은 청동기를 기반으로 강력한 왕권을 지녔다. 수도인 은허(현재 허난 성 안양 시 샤오툰춘河南省安陽市小屯村)에서는 청동기와 전차는 물론 수많은 갑골문 등이 출토되었으며 천명에 달하는 대규모의 사람들이 순장한 왕족의 공동 무덤도 발견되었다.

장은 주로  스키타이나 흉노 또는 중국의 동북지역에 살던 동이족에게 나타나는 제도로 고조선과 부여, 가야에서 행해졌으며 신라시대에는 지증왕 때 폐지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11세기경 상나라 사람들이 주나라에게 멸망한 후,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아 생업을 이어갔기 때문에 상인商人이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한다. 

혹자는 상(은) 나라가 동이족이거나 그 일부라고도 하지만, 문명의 충돌과 공유는 언제나 일반적인 상상을 넘어선다. 낯선 문명의 길목에서 나와 닮은, 혹은 다른 얼굴을 인식하는 즐거움은 내가 즐기는 여행의 또 하나의 목적이기도 하다.


섬세하면서도 수준이 높은 고촉문명의 청동기를 보면서 비슷한 청동기시대를 구가했던 상나라의 청동기 유물들이 궁금해졌다. 


고촉인


당시(혹은 그보다 훨씬 앞선) 이웃 왕조였던 상나라처럼 내세를 믿었던 사람들은 거대한 마스크와 청동상, 그들과 신을 이어주던 통천신수 등, 상징적인 기물들을 땅 속에 들여놓았다. 청동마스크와 다양한 얼굴 모양을 한 수많은 청동 두상들은 당시 촉(쓰촨)에 살던 사람들의 모습으로, 당시에는 청동이 권력의 상징이었던 만큼 이들은 당시 왕권과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모습은 때로는 중앙아메리카의 고대문명인 마야 문명에 나타난 마스크와 비슷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단순한 아프리카의 마스크를 연상시키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동글동글한 한인의 얼굴이 아니라 이목구비가 크고 선명한 현재의 이란이나 파키스탄에서 만날 수 있는 얼굴을 닮았다. 이들과 지역이 가까운 투르크 몽골계인 흉노와 더 멀리는 이란계인 스키타이까지 떠오른다.


청동 두상을 감싸는 황금마스크는 두상에 맞춤으로 금박으로 두드려 만들었다. 금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던 스키타이와 그리스 그리고 고대 신라까지 황금을 숭배했던 문화가 고촉 땅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황금마스크는 이집트의 투탕카멘Tutankhamen(BC 1333년∼BC 1323년)의 황금 가면과 그리스에서 출토된 장례 시 얼굴을 덮었던 마스크가 유명하다. 


청동 두상들, 얼굴이 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두상을 감쌌던 마스크와 부서진 금박마스크


특별히 눈을 끄는 것은 태양과 새를 조합시켜 놓은 문양과, 세발 달린 그릇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제기였을 것이다. 그릇에 달린 세 개의 다리는 세 개의 퇴적층(삼성퇴)과 맞물린다. 오래전 멕시코의 인류학박물관에서 본 마야 문명의 세발 달린 그릇 또한 시공간을 연결시켜주는 문화의 공통분모이다.


앞의 두 개는 싼싱두이의 것이고 세번째 도기는 멕시코의 인류학박물관에서 봤던 세발 달린 그릇이다.


통천신수通天神樹에는 9마리의 새들이 앉아있으며 나뭇가지는 용트림을 하듯 하늘을 향해 자라는 것 같은 동감이 놀랍다. 나무를 숭배하는 사상은 고대 북방 유목민족의 대표적인 특징이며 고대문화 조류 숭배에서 많이 나타나는 는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처럼 하늘과 현세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고대 신라 초기 김알지의 탄생설화에도 “... 자색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뻗쳤는데, 구름 가운데 황금 궤가 나무 끝에 걸려 있고.... 흰 닭 나무 밑에서 울어....” 신라의 상징인 황금과 나무, 김알지를 상징하는 새(흰 닭)가 등장한다.


신라는 박씨와 석씨왕의 등장 이후, 김 씨 왕이 등장한다. 신라의 초기 역사 유물인 무게가 약 1Kg에 달하는 금관(나무 모양을 하고 있으며 발굴 당시에도 시신의 머리 위 부분이 아니라 턱 부근에서 발굴이 된 것으로 보아, 평소에 착용했다기보다는 장례 때 부장 용품으로 시신의 얼굴을 덮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은 김씨 왕조의 권력이 안정권에 접어든 6세기 이후에 서서히 사라진 걸 보면, 그것은 왕권 통치에 필요한 상징이며 도구였을 것이다.  


박물관에는 신수 두 그루가 복원되어 있다.
그들의 뛰어난 문명을 증명해주는 휠과 멕시코의 마야문명에서 봤던 문양과 너무나 비슷한 마스크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신선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물들로 가득한 곳이지만, 박물관을 좋아하는 나도 2시간 이상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공원처럼 꾸며진 박물관의 부지는 한두 시간을 보내기에는 충분할 만큼, 공원이나 식물원처럼 조성되어 있어 가벼운 산책이나 소풍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시내버스를 타고 광한 터미널로 가서 청두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오늘은 여행의 첫날, 새벽에 도착하여 잠도 못 자고 이곳까지 왔으니 이것으로 오늘 장사는 끝이다. 느긋하게 3시에 박물관에서 출발하는 청두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래도 둘러업고 온 배낭 안에는 점심이 될 만한 요깃거리가 들어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여기저기 나들이를 온 이들처럼 자리를 잡고 주저앉았다.


가을을 닮은 싼싱두이의 정원


돌아오는 길은 더욱 빠르다. 교통체증이 덜한 시간이어서인지 청두에 1시간 만에 도착한다. 모자란 잠으로 더욱 나른한 4월 청두에서의 오후, 숙소에 배낭을 던져 놓고 춘시루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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