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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 칸이 그리워한 하늘

제 5화 홍고린 엘스와 황사오름

by 그루


6월 11일 새벽녘, 문을 꼭 잠근 여인숙의 방,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술잔과 음식들이 널 부러져 있고 온갖 잡동사니가 뒤섞인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화장실 갈 때 마음과 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지난밤엔 고비의 계곡에서 날을 지새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했었다. 이렇게 냄새나는 곳에서 잤다니, 생각만으로도 갑자기 목이 캑캑거리고 눈이 뻑뻑해진다.


혹시라도 지나가던 개가 기웃거릴까 봐 조심해서 나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아직도 한밤중인 사람들이 깰까 봐 살금살금 밖으로 나갔다. 시간은 아직도 새벽인데 햇살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


불시착해 하루를 묵었던 마을


잠은 참 좋은 거여서 어제 그토록 고생을 했던, 느지막하게 잠에서 깬 드라이버와 팅기스도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상쾌해 보였다. 사실 고비의 아침은 늘 산뜻하다. 건조하니 산뜻할 수밖에 없지만 공기는 너무나 맑아서 먼지가 조금 있어도 알러지로 재채기가 나오는 나는 만사 오케이다.


어제의 고생으로 흐트러졌던 모든 것은 다시 제 자리로, 하룻밤 의탁했던 영원히 다시는 만나지 못할 남 고비의 동화 같은 마을 반달레이?를 떠나 오늘은 고비의 깊은 계곡을 지나서 아름다운 사구 홍고린 엘스로 갈 것이다.


고비사막에도 크고 작은 산들이 많다. 고비의 계곡


야~ 달 위를 달리듯 기묘한 지형을 찾아다니는데 위기는 도약의 발판이라고, 남 고비가 고향인 Dull의 실력이 오늘은 제대로 나온다. 오직 작렬하는 태양빛만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는 물론 동물의 그림자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철 덩어리 같기도 한 광물질들이 표면에 튀어 올라와 있는 듯한 원시적인 고비의 속살 같은 깊은 미지의 계곡을 지나다 보니 군데군데 파헤쳐져 뭔가를 채취하는 곳이 가끔 눈에 보인다.


드라이버는 사륜구동의 바퀴를 시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동차의 바퀴와 휠이 좀 걱정이 될 법도 하건만 거친 계곡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간다. 쉬어 가기 위해 잠시 멈춘 곳에서 언덕을 바라보니 딱 인디고 블루의 하늘을 한 뙤약볕 아래 중무장하고 얼굴을 가린 아주머니가 손을 흔든다. 올라가 보니 손바닥에 있는 뭔가를 보여주는데 완전 가루는 아닌 제법 굵은 금가루다.



Dull과 아주머니의 손에 있는 작은 금가루



알타이산맥이 고비사막에서 서시베리아까지 남동에서 북서쪽으로 뻗어있다고 되어있는데 이 계곡도 알타이 산맥의 일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몽골은 원래부터 몽골 초원과 고비사막의 주인이 아니었다. 고구려와 사이가 좋았던 투르크족은 위구르족의 수준 높은 문자와 행정조직을 배워 비교적 수준 높은 문화를 이루고 살았고 타타르는 동쪽 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제일 힘이 약했던 몽골은 시베리아와 초원을 아우르는 경계지대인 동북방 변두리에 살고 있었다.


7세기에는 당나라에 조공까지 받고 큰소리를 치면서 지금의 몽골 땅에서 승승장구하던 위구르가 9세기에 분열이 일어나 산산이 흩어지면서 약화되어 지금의 중국 신장지역 등으로 일부 세력이 이동하자 북쪽의 몽골족은 타타르와 세력다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몽골 땅과 고비로 내려오게 된다. 초원의 족속들이 이동을 하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더욱 추워진 기후의 변화였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위구르의 세력이 둑처럼 무너지면서 초원의 강력한 세력이 되기 위한 싸움은 자연스럽게 무기의 변화를 가져온다. 동물의 뼈에서 얻은 무기인 골촉을 주로 사용했던 유목민들은 9세기 이후 조금씩 사용했던 철촉의 사용이 12세기에는 골촉과 철촉의 사용량이 1:4의 비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철촉의 폭과 길이도 달라져 철촉의 길이는 5. 42센티미터까지 길어져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고 한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의 재료였던 철을 둘러싼 싸움이 중요한 관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량의 철광석을 매장하고 있는 알타이산맥을 비롯한 고비는 신무기를 둘러싼 각축장이 되지 않았을까.


이처럼 다양한 모습의 고비를 사람들은 짐작이라도 할까, 거친 계곡을 빠져나오니 원래 고비의 모습인 지평선이 펼쳐지며 저 멀리에는 신기루가 보이는, 연두에서 녹색으로 진행하는 초원과 세상의 구름들. 초자연적인 아름다움이다.


멀리 보이는 홍고린 엘스


칭기즈 칸이 그리워한 하늘도 손에 잡힐 듯 구름이 덩실 떠 있는 푸른 하늘이다.


멀리 눈앞에 보이는 화폭에는 오직 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하늘과 신기루처럼 보이는 빛나는 베이지색의 홍고린 엘스만이 보일 뿐이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신비로운 모습이다. 사구가 모습을 나타난 지 한 시간 이상을 홍고린 엘스만을 보고 달린 것 같은데 좀처럼 도통 홍고린 엘스는 가까워지지 않는다.


홍고린 엘스 주변에 오니 대규모의 게르 캠프들이 보인다. 디스커버리 캠프에서 가벼운 점심을 먹고 시설도 괜찮아 보이는 캠프에서 묵어갈까 하다가 일단 바얀작까지, 해가 길으니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기로 하였다. 가까이 사구 옆을 지나치니 거대한 모래언덕이 압도한다. 오래전 이 곳에서 뜨거운 모래를 맨발로 밟고 힘들게 올라가서 내려오기를 반복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모래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황사오름


바얀작쪽으로 가는 길, 고비에 들어와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과 구름을 보고 달리는 길이다. 하늘의 구름들이 드리운 그림자그늘을 천천히 달리다가 빠져나오면 재빨리 구름 그림자 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달리는, 천상의 구름들과 주거니 받거니 구름숨바꼭질을 하면서 고원의 드라이브를 즐기는데 먼 하늘의 변화와 색깔이 심상치가 않다.



심상치 않은 구름이 밀려온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생전 처음 보는 풍경에 압도되어 살짝 겁이 난다. 조수석에 있는 팅기스에게 물으니 황사가 기류를 타고 오르는 현상으로 상승기류를 타고 몇 천 킬로미터 수직으로 올라 한국까지 도달하는데 이틀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황사오름'이란 내가 무심코 붙인 말이다. 더 정확한 이름이 있다면 알려주시길....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문제가 생겼다. 경쾌하게 달리고 있는 우리 차가 황사오름현상이 있는 쪽으로 돌진하고 있는 격이다. 드라이버에게 “우리 지금 저 안으로 가고 있는 거냐?”고 놀라서 물으니 놀란 기색도 없이 그렇단다. 동물들도 여기 사람들도 그저 시큰둥한데 한국사람만 놀라 허둥댄다.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저 짙은 회색의 황사 기둥 안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니. 긴장하면서 차 안에서 주섬주섬 황사마스크를 찾아 쓰면서도 초원의 풀들이 나 있는 6월에도 황사가 엄청난 기세로 오르는데 3월이나 4월,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오르는 황사는 가히 세상을 다 뒤엎을 만한 힘으로 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들은 미동도 안한다.


쨍하게 내리쬐는 이 쪽의 햇빛과 황사오름으로 인해 생겨난 대비가 된 저쪽의 어둠과 그 아래 태연하게 먹이활동을 즐기는 동물들까지,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경이, 두려움이 교차한다.


황사오름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직전


천재지변을 하루라도 안 만나면 고비가 아니지, 드디어 어둠 속을 뚫고 숨을 죽인 채 얼마나 지났을까, 황사기둥을 통과한 것처럼 뿌연 빛이 보인다.




드라이버가 작은 솜(마을)에 들러 가까운 곳에 묵을 게르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바얀작과 가깝다. 바얀작 가까이에 있는 캠프에서 오늘 밤 묵어 갈 것이다.


따뜻한 물로 샤워도 가능하고 화장실도 깨끗하고 많아 성수기에는 손님들이 많겠다. 하지만 저녁을 먹고 나서 여유 있게 손님도 한적한 샤워장에서 신나게 비누칠을 하자마자 소등을 해 버린다. 랜턴을 항상 휴대하고 다니니 망정이지 칠흑 같은 곳에서 랜턴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동안 묵었던 게르 캠프마다 제각각이지만 화장실에 밤새 불이 켜져 있었던 테를지 외에는 밤 10시나 11시경에 공공시설물의 불은 소등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참 성수기인 손님이 많은 7월과 8월에는 소등을 안 하거나 시간을 늘리지 않을까.


게르 식으로 꾸며진 레스토랑에서 미트볼 같은 저녁 메뉴를 시켰는데 맛도 훌륭하다.

밤하늘을 바라보니 멀리 황사의 그늘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 사이로 밝은 별 하나가 툭 하고 건드리면 떨어질 것처럼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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