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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bi는 고비

제4화 길이 아니어도 좋다~

by 그루


6월 10일, 비 개인 아침, 어젯밤의 총천연색 버라이어티 한 자연의 모습은 어디 가고 4층 호텔방에서 바라본 달랑자드가드는 말끔하게 씻은 모습으로 고비의 어느 마을보다도 안정되고 규모가 있어 보인다. 다른 마을에서는 보기 힘든 가로수도 제법 자라고 있고 호텔의 로비에 앉아있으면 담백해 보이는 여느 몽골인들과는 다른 제법 기름기가 흐르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아침을 먹고, 어제의 고생은 이미 지나가버렸고 가까운 욜링암으로 산뜻하게 출발을 하였다. 달랑자드가드 특유의 광석을 품은 검은 빛깔의 땅을 벗어나니 연한 녹색으로 변해가는, 금방 물을 머금은 빛나는 연둣빛의 초원이 펼쳐진다.


욜링암 입구에 도착하니 점퍼를 꺼내 입어야 할 만큼 으스스 추워진다. 이곳을‘얼음골’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유를 알겠다. 욜링암 입구까지 들어가는데 어제 내린 비와 눈, 진눈깨비 덕분에 눈이 적당히 쌓인 빙판길에 되어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다가 그만 멈춰 서 버렸다. 아싸!~ 그 누구도 6월에 쌓인 흰색의 눈앞에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강아지도 눈을 보면 흥분하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어젯밤 눈과 비에 빙판으로 변한 6월의 욜링암 입구의 빙판길



들어갈 수 없는 욜링암을 뒤로 하고 욜링암 입구 왼쪽에 있는 작은 박물관을 들어갔다. 박물관에는 고비에 서식하는 동식물과 광물들이 아기자기하게 이해하기 좋게 진열되어 있다. 다른 사막과는 달리 섭생이 가능한 풀이 많아 고비에는 몸집이 작은 동물부터 큰 동물까지 많은 동물들이 서식을 하는 것 같았다. 새삼스럽게 고비가 정글처럼 달리 보인다.



낙타 이야기

산악인들이 겨울 산을 오를 때 가장 좋아한다는 낙타양말을 입구에서 팔고 있다. 눈앞에 있을 때 기념품은 사야 하는 법, 두 켤레를 구입했다. 돈을 지불하면서 알래스카를 떠 올렸다. 하필 왜 알래스카였을까.^^

한국을 떠나오기 전 낙타는 한국인에게는 절대 가까이 해서는 안 될 동물이었다. 말만 해도 메르스균이 전파되는 것처럼 소스라치며 고개를 집단적으로 흔들었다. 고비에 들어온 나의 시야에는 신비롭고 고고해 보이는 낙타의 무리들이 한국에서 온 나를 비웃듯이 긴 다리로 우아하게 지나간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다닐 때도 멋지지만, 한두 마리가 해를 등지고 관조하듯 걸어가는 모습은 카리스마까지 느껴질 정도로 정말 아름답다.

2015년 6월의 고비



예전 둔황 월아천에서 낙타를 탔을 때의 일이다. 제법 등치가 있는 낙타 위에 몸무게가 꽤 나가 보이는 남자가 올라탔다. 그런데 자신의 등에 무거운 남자가 올라가니 그 낙타는 화를 내며 그냥 떨어뜨려 버리더라. 대동댕이 쳐져 얼굴이 벌게 진 남자를 보고 뒤를 돌아 배꼽을 잡고 웃었지만 남아있는 야생성으로 솔직하게 의사표시를 한 그 낙타에게 박수를 보냈었다. 마음속으로만....ㅎ

낙타뿐이겠는가. 숫자로만 보면 고비는 사람이 사는 땅이 아니고 동물들의 땅이다. 고비를 지나다 보면 사람은 하루에 한 명 만나기 힘들지만 동물들은 몇 백 마리가 아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물들을 지나친다. 엉덩이 실룩거리며 무리를 따라가다가도 처음 보거나 친구들과 다른 것들이 있으면 다가와서 눈을 마주치며 꼭 확인하는 놈들은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귀엽다.

짧고 굵게, 어쩌면 제일 행복하게 살아가는 고비의 가축들과 동물들에게는 이곳이 천국일 수 있겠다 싶었다. 다른 계절은 아무 생명도 살 수 없을 만큼 혹독하겠지만 지금은 고비가 생동하는 6월이기에, 세상의 모든 가축들은 고비에서 나서 고비에서 죽기를.......


6월의 고비는 한국의 4.5월처럼 생동감으로 충만하다. 연둣빛의 초원은 눈부시고 밤새 내린 눈으로 설산은 히말라야를 방불케 한다.


길이 아니어도 좋다~?


차를 돌려 홍고린엘스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가는 길은 드라이버의 몫, 우리가 탄 차량은 오프로드에 가능한 4륜 구동이어서 계곡을 넘고 거친 들판을 아무리 달려도 문제가 별로 없는 웬만한 험한 길도 쉽게 갈 수 있는 차량이다.


우리는 기분 좋은 오프로드를 만끽하면서 화기애애하게 출발했다. 얼마쯤이나 갔을까, 고비는 모든 것이 다 길이다. 고비의 즐거움에 빠져들 즈음 좀 질척거리긴 하지만 거친 길을 조심스럽게 웨이브를 그리며 넓게 펼쳐진 계곡으로 들어가던 중에 보니 차량 한 대가 웅덩이에 빠져 있다.

자세히 보니 두 명의 남자가 낑낑거리며 삽으로 바퀴 아래의 흙을 파내고 있다. 어제부터 날을 지샜다고 한다. 어젯밤의 짙은 회색 빛 하늘과 천둥번개를 생각하니 아찔하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기도 하고...

신기해서 구경난 것처럼 바라보고 있으니 드라이버 Dull이 가지고 있는 로프를 이용해서 멋지게 차량을 구해준다. 에고 멋져라~ㅎ 좋은 일을 하니 덩달아 기분도 더 좋아진다. 의기양양하게 다시 출발했지만 우리도 모르게 고비는 우리에게 줄 선물을 따로 준비하고 있었다.

밤을 새웠다는 두 남자, 우리차에 로프를 연결하고 있다.



오 마이 갓~ 5분도 못 가 우리 지프가 빠져 버렸다. 남자들이 있어도 별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목부아저씨들이 지나가다가 우리를 발견한 것, 하지만 오토바이와 러시아산 푸르공을 타고 모여든 목부아저씨들까지 합세해도 차는 꼼짝을 안 한다. 구해주러 온 차마저 다시 빠져 버린다.


이렇게 밀면 될 줄 알았다.



동네 아저씨들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너무나 부러웠던 양떼들



어젯밤에 엄청나게 내린 비와 눈이 영하로 내려갔다가 기온이 오르면서 땅들이 서서히 녹으면서 고비의 땅들은 마치 슬러시처럼 변해 살짝 누르기만 해도 웅덩이로 변하는 것이다.

진퇴양난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 시간은 지나가는데 빗발은 간간이 쉬어갈 뿐 계속 뿌려대고, 추우니 화장실(노상)을 자주도 다닌다. 더군다나 나는 화장실을 가려면 200m 이상 언덕 위로 올라간 다음 살짝 내려가야만 볼일을 볼 수 있다.


시간은 지나가고..... 밀고 삽질하느라 땀으로 범벅된 사람들. 어두워질 시간이 되어가도 웅덩이의 지름만 길어질 뿐, 최악이다. 다큐에서도 이렇게 심한 리얼은 처음이다. 멀리 보이는 설산은 불쌍하게 바라보아도 묵묵부답, 히말라야를 연상할 만큼 장관이다.




그 아래를 지나가는 세월 좋은 양과 염소 떼들은 얼마나 부럽던지.


푸르공(2차 세계대전 때 사용했던 소련산 수송용 차량)을 타고 왔던 아저씨와 Dull이 이야기를 나누더니 일단은 우리 세 명을 가장 가까운 솜에 데려다 준다고 한다. 무작정 땅만 파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부담이 되었을 것 같다.

TV를 통해서만 봤던 투박한 푸르공 트럭을 타니 신기하다. 동글동글한 얼굴을 한 연신 미소가 가시지 않는 얼굴을 한 목부아저씨는 트럭이 자기차라며 자랑을 하신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말했던 솜은 아무리 가도 나오지 않는다. 이 곳을 찾아올 수나 있으려나, 남겨두고 온 드라이버와 팅기스가 걱정이다.


오후 9시가 되어서야 어릴 적 내가 마분지로 만들어 색을 칠한 마을처럼 생긴 솜에 도착했다. 하늘은 얼마나 청명하고 마을 지붕의 색깔은 어찌나 고운지. 불시착한 마을의 위치는 몰라도 좋았다. 만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마을에 반해 사진을 찍고 다니니 엄청나게 큰 몽골 개들이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에구머니나~! 난 개가 무섭다. 특히 몸집이 크고 털이 길고 탐스러우며 잘 생겼으면서도 무척 사나운 몽골개는......



동화 속 마을 같았던 곳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여인숙에는 방도 하나밖에 없다. 그나마 침상은 여러 개여서 다행이다. 사실 이것만으로

도 고비의 계곡에 빠져 한 밤을 지내는 상상이 현실이 아니어서 감사했다.

내가 불시착한 마을의 이름은 반달레이, 이름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오후 8시,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그냥 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Wifi를 마을사무소에 가서 신청하니 2500 투그릭이란다. 아~! 어느 행성인지는 모르지만 인터넷이 잘도 터진다. 신기하다.ㅎ

10시가 넘어서야 Dull과 팅기스가 돌아왔다. 진흙으로 범벅된 차량을 모시고. 오전 11시에 시작된 삽질은 우리를 마을에 보내고 난 오후 8시경 웅덩이를 더 널찍하게 파고 나서야 끝이 났다고 한다.

오늘은 리얼다큐를 진하게도, 징하게도 본 것이다.

보츠(만두)를 여인숙 아주머니께 주문하고 우리의 비상식량과 함께 달디 단 맥주를 들이킨다. 살아 돌아온 행복에 넘치는 도란도란 소리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불시착한 행성에서의 하루가 지나간다. 푸르공으로 우리를 구해 준 몽골 아저씨들께 감사하며 ~~~ 음야 음야~~~~ 콜~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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