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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ga Gazryn Chuluu

제3화 달랑자드가드로 가는 길

by 그루


새벽까지 게르를 두드리는 빗소리, 춥긴 하지만 운치는 있다.

게르 문을 열고나오니 여전히 하늘은 잿빛이지만 서늘한 고원의 공기가 상큼하다.

8시쯤 라면으로 해장을 하고 바가가즈링촐로 계곡을 돌아보았다. 고비라는 이름에 묻혀서 그렇지 이름 그대로(Chuluu는 바위라는 뜻) 대단한 화강암 협곡이다.



스탈린 시절 파괴되었다고 하는 델게링 초이링 사원 Delgeriin Choiriin Khiid은 이 곳이 사원이었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거의 파괴되어 사원을 향해 닦여진 길과 누군가 심었던 흔적이 보이는 나무들, 그리고 무너진 건물터 사이사이에 찬바람에도 피어난 야생화들은 지난 했던 이 땅의 역사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름난 승려가 최근까지도 수행을 했다는 깊은 동굴과 제법 높은 바위를 오르면 정말 신기한 바위샘이 나타난다.







초이링사원에 있던 오보에 놓고 온 투그릭



건조한 대륙성 기후인 몽골에서 여행 초반에는 심하게 눈이 건조해지고 피부가 땅겨지는 현상이 생겼었다. 눈이 맑아진다는 천수(안경수)라고 하는데 바르니 시원하다. 물이 차가우니 당연히 시원한 거겠지만 기분 상 하루 종일 눈이 피곤하지 않은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


천수(안경수)



가까운 바가 가즈링 산(1768m)은 정상까지 오르는 데는 약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는데 일반인들이 막상 오르면 시간이 더 걸리지 않을까 싶다. 초행길에다가 바다에서 융기한 바위 지형이니까.


달랑자드가드로


으믄고비(남고비)의 주도인 달랑자드가드Dalanzadgad쪽으로 가는 길, 바가가즈링촐로에서 나와 남쪽으로 가다가 제법 큰 솜인 만달고비에서 점심을 먹고 쉬어가기로 했다. 마을은 꽤 오래전에 조성된 것처럼 규모가 제법 있어 보인다. 눈에 띄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숫자가 많은 식당 안을 둘러보기가 무섭게 훅~ 들어오는 양고기 냄새, 레스토랑 건물 전체가 진득한 향이 배어있다. 나갈 수는 없는 일, 먹어야 하니까.



낯선 메뉴판을 러시아음가로 더듬더듬 읽어봐도 도통 모르겠다. ‘만두’라고 발음되는 것을 시키니 우리가 중국집에서 먹는 꽃빵이다. ‘보츠’를 시켜야 만두소가 들어간 만두가 나온다. 어렵게 그림을 보고 주문한 점심은 그럭저럭 성공이다. ‘내리막’과 ‘굴라쉬’ 등의 음식 맛은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나온 요리를 앞에 두고 요리탐색을 시작할 무렵, 일군의 무리가 우르르 들어와 레스토랑의 테이블에 빈자리 하나 없이 늘 하던 것처럼 빼곡하게 앉는다. 이들은 만달고비 주변에서 일을 하는 근로자들로 점심 때가 되어 버스를 타고 인근 마을인 만달고비로 점심을 먹으러 온 것이었다.


고비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10년 전 만 해도 몽골 정부는 가지고 있는 광산자원의 개발을 천천히 시간을 갖고 계획적으로 개발할 것이며 아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여유를 부러워했었는데, 이제 캐나다를 비롯한 외국기업들이 진출하여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파이프가 꽂혀있거나 개발을 시작하기 위해 파헤쳐진 흔적들이 보인다.


어릴 적, ‘우랄알타이 산맥의 동쪽은 아시아’라는 말을 얼마나 수없이 들었던가, 몽골과 서쪽 시베리아로 뻗어있는 알타이산맥의 알트 Alt는 금을 뜻하며 Altan에서 유래한 산맥의 이름 알타이 Altai는 황금으로 이루어진 산맥인 것이다. 고비에는 석유나 텅스텐, 망간, 수은, 철, 금, 구리 등 상업적 가치가 높은 광물질이 많이 저장되어 있지만 알타이산맥의 일부인 고비에서 ‘금’이 있다는 것에는 저절로 의미가 부여된다.



만달고비에서 가까운 곳에 드라이버인 Dul의 할머니께서 살고 계신다고 해서 갑자기 들른 할머니 댁, 미리 언질을 주었는지 손님이라고 갓 요리한 푸짐한 하르헉을 대접받았다. 삼촌이 만드셨다는데 아침부터 힘드셨겠다.



Dul의 할머니댁에서 대접받은 '하르헉'


할머니는 이 곳 마을의 면이나 읍 사무소 같은 곳에서 살고 계셨다. 아마도 은퇴하시기 전까지 이곳의 장으로 근무하신 것 같은데 사택처럼 그 자리에서 계속 살고 계신 것은 공무원에 대한 처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고향집 할머니 같은 할머니와 손자인 Dul의 따뜻한 교감은 나에게까지 전이되어 푸근하면서도 행복한 기분을 맛보았다. 여행을 하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 한 나라의 여행을 준비할 때 그 나라의 언어를 기본적인 소통이 될 정도는 공부해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그리 쉽겠는가.^^ 작은 할머니의


할머니 댁을 나오기가 무섭게 먼 하늘은 진한 회색빛을 보이더니 날씨는 급변하여 바람은 급기야 나를 들어 올릴 태세다. Dul의 할머니가 한 보따리 싸주신 하르헉을 가지고 밤에 벌어질 하르헉과 맥주의 만남을 상상하며 남쪽 달랑자드가드로 향했다.



어떤 일에는 늘 예고가 있는 법, 먹구름이 온다.



달랑자드가드에 가까워졌나 보다, 잡목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 검은 땅이 나타났다.

10년 전 내가 고비에 첫발을 디딘 곳이 바로 이곳이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들어와 이 곳을 통해 울란바타르로 나갔었다. 그때는 이곳이 그냥 고비로 들어가는 관문 정도로 생각했지 고비의 남쪽, 으믄고비의 주도라는 것도 몰랐었다. 그저 활주로가 녹색의 관목들도 듬성듬성 돋아있는 그저 단순한 땅이었다는 것, 놀라서 묻는 내게 땅이 단단하여 대부분 활주로역할을 한다고 들었었다.


화장실을 보려고 내렸더니 오 마이 갓~, 처음 듣는 야생 회오리 소리를 내며 바람이 부는데 80kg 정도의 한 남자는 바람에 밀려 달려간다. ㅋ 한치 앞으로 운전하기도 힘들 정도로 비바람은 몰아칠수록 우리들은 길 없는 길을 찾아 오늘 묵을 숙소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다급하면 돌아가라고, 우리는 회색빛의 고비를 넘고 넘어 눈과 비, 진눈깨비바람을 가르며 정말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얼마인지도 모를 정도로 많이ㅠㅠ


고비의 비는 6, 7, 8월에 다 내린다고 한다. 예전 8월에는 욜링암에서 비가 억수같이 스콜처럼 왔었던 비를 흠뻑 맞아 추위에 떨자마자 바로 햇빛이 내리쪼여 더위에 힘들어했었다. 이번 6월 여행에서는 연강수량이 하루에 다 온 것처럼 눈, 비, 진눈깨비, 우박, 폭풍 등이 종합세트처럼 내려주는데 고비의 당근인지, 채찍인지 여행이 끝나 봐야 알 것 같다.


현지인들도 고비에 들어가려면 차 두 대가 같이 출발한다고 한다. 현지인이며 만달고비가 고향인 Dul이 있었지만 우리는 차가 한 대, 길을 잃기 시작하면 분간할 수 없는 짙은 회색빛 속에서 이 밤에 고립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히치콕의 흑백영화 속 한 장면처럼 진눈깨비와 비바람, 올라오는 수증기....를 뚫고 발견한 게르 호텔, 제법 큰 숙소여서 시설이 좋은 편인데도 손님을 받지 않으며 게르를 덮은 펠트가 날라 갈까 봐 묵는 사람들도 대피한다고 했다. 세상은 혼통 회색빛에 휩싸였는데 불빛이 있어 주황빛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레스토랑의 풍경은 한 장의 그림 같다. 현관 한쪽의 천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까지.......

시내의 네모난 호텔에 묵기로 결정하고 늦은 밤, 힘들게 달랑자드가드호텔에 도착했다. 달랑자드가드Dalanzadgad는 론리플래닛에 의하면 원래 관광업이 주를 이루었지만 중국과의 국경지역인데다가 요즘은 광산업이 호황이어서 이 곳 통치자의 명함의 글씨가 금가루로 새겨져 있다는 소문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광산업이 호황을 누리는지 단적으로 표현한 말일 수 있겠다.

하루 동안 고비가 보여준 버라이어티 한 어둠의 다양한 표정들도 달랑자드가드에서의 맥주 한 잔에 기포처럼 올라간다.

다음날 아침에 만난 달랑자드가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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