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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bi는 야생이다

제 2화 Gobi 가는 길

by 그루

고비 Gobi 가는 날


어제 늦은 오후부터 비가 뿌리기 시작하더니 밤새 스콜처럼 비가 내렸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곳이어서 비가 오면 빗물은 땅 위에 웅덩이처럼 고여 있거나 작은 도랑처럼 흐르다가 건조한 고원의 공기에 그냥 말라버리거나 아침 햇살이라도 올라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UB(울란바타르)는 아침 세수를 한 것처럼 말끔하다. 호텔 맞은편에 ‘동대문 사우나 24’라고 큼직하게 한국식으로 붙인 간판이 보인다. 사우나뿐이겠는가. 조그만 가게에도 한국 물건들이 태반이고 호텔 옆에는 물론 거리를 조금만 배회해도 한국음식점이 성업 중이다. 한국에 한 번이라도 일을 하고 온 이들이 한국문화를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며 한국음식을 좋아하니 우후죽순처럼 한국 레스토랑이 생겨나는 것 같다. 호텔 옆 한국관 레스토랑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래도 한국음식점을 하면 먹고살 수는 있다고 한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한국에 다녀온 사람들이 말을 곧잘 붙여온다. 자신의 나라에 온 대한민국 사람을 호의적으로 대해주니 오히려 참 고맙다. UB를 떠나기 전날, 고비를 다녀온 후 몽골리안 익스프레스를 타고 러시아로 가기 위해 기차에서 먹을 것을 구입하러 나간 시내에서 놀다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오셨다는 분의 친절로 호텔까지 그분의 차를 타고 온 적도 있었다.


백인에게는 대부분 호의적이지만 그 밖의 외국인과 특히 아시아인에게는 호의적이지 못한 우리의 태도가 요즘은 좀 개선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중앙아시아나 동남아시아 등 다른 나라를 다니면서 한국에서 일을 하고 왔다는 이들을 만나면 그들이 웃어주기 전에는 아직도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오늘은 ‘고비사막’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말이 사막이지 Gobi는 진정한 사막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밟아도 밟히지 않는 강한 생명력의 관목들이 자라나는 건조한 잿빛의 갈색 땅이 있는가 하면, 간혹 끊이지 않는 녹색의 융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많은 식물들이 생동하는 땅도 있으며 강하고 깊은 에너지를 품고 있는 계곡까지, 내가 아는 고비는 풀이 많든 적든 대부분 스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친 작은 돌이나 모래로만 이루어진 사막은 매우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

강한 바람과 극도로 건조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 급변하는 견디기 힘든 기후 때문에 땅에 바짝 붙어사는 키가 작은 관목들이 그 곳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그 거친 초원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수많은 동물들이, 사람들이 사막이라 부르는 초원의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그 곳에서 일생을 마치는 곳이다. 게다가 고비는 아주 오래전부터 적은 숫자지만 유목을 업으로 하던 사람들이 거주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땅이었다.

Gobi에 다녀온 뒤로 난 ‘고비’라고만 말하고 사막이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떼어 버렸다.

6월 8일 비 개인 쨍하게 맑은 아침시간을 여유 있게 보내고 고비로 들어가는 길, UB의 외곽에 있는 홈플러스 같은 한국형 대형 마켓에서 6박 7일 동안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구입했다. 마켓은 비싼 과일과 채소류를 제외한 모든 한국 제품들이 다 들어와 있었다. 레스토랑의 음식은 가격도 한국만큼, 맛도 한국에서 먹은 맛과 똑 같다. 짬짜면도 있고, 점심으로 피시커틀릿을 먹었는데 한국에서보다 맛이 좋다(아마도 그렇게 느낀 것일 것이다^^). 고비에 있을 동안 과일은 구경도 못할 것 같아 귤 몇 개를 봉지에 넣었는데 비싸긴 비싸다.

마켓에서 오후 1시 반쯤 출발해서 약 한 시간 정도 달렸나 보다, 오메~ 눈 앞에 나타난 초원에 보라색 키 작은 아이리스? 꽃들이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달려간다. 귀여운 모습의 아기 같은 양과 염소들, 웅덩이에 모여 물을 마시는 의젓하고 멋진 말과 소떼들도 그림처럼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보라색 꽃이 내 달린 초원을 보기 위해 차에서 내리니 동물들의 똥도 딱 그만큼, 동물들이 많이 다니는 곳은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곳이며 그 곳은 그 무엇이라도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동물들의 똥이 천지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 5시간 정도 달려왔는데도 해는 아직도 중천이다. 끝이 없이 펼쳐진 진한 연둣빛의 초원이 지루할 법도 하건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이어서 졸 틈도 없다. 몽골에 오길 참~잘했다.


고비는 야생이다.



지나는 길에 화장실이 보고 싶을 때 차가 정지하면 눈치껏 재주껏 재빠르게 어디론가 뛰어가서 볼일을 봐야 한다. 남의 눈치를 보다가는 일 나기 십상이다. 정말로 고비는 야생이다.


하지만 땅을 뒤엎어 놓은 흙더미라도 있다면, 덩치가 제법 큰 삭사울 관목이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이도 저도 아니면 100m 이상은 족히 뛰어가야만 할 수도 있겠다. 여행인원이 좀 많다면 글쎄, 옷 벗고 같은 탕 안에 앉아있는 기분일 수도....


유목과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몽골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두 배 이상 시력(5.0)과 청력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몽골에서는 안경을 쓴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고비 안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목부들이나 드라이버들, 아무리 그래도 드넓은 초원에 엉덩이를 까고 볼일을 보는 처지를 보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가끔은 지나가는 양과 염소들에게 들키는 일도 생긴다. 가던 길 멈추고 빤히 쳐다보는 바람에 얼마나 민망했던지....., 몇 밤 고비에서 지내고 나니 푸세식이 나타나도 지나치고 오히려 자연식 화장실을 택하게 되더라.

Baga Gazryn Chuluu


5시간 정도 달렸나 보다, 드그덜솜(솜은 마을이나 작은 도시)을 오른쪽으로 꺾어 달리니 사람이 바위를 책처럼 또는 돌을 밀가루로 빚어서 쌓아놓은 듯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성채처럼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랄까, 적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요새처럼 신비로웠다. Gobi의 초입에 있는 바가가즈링촐로(루)에 도착한 모양이다.


Baga Gazryn Chuluu는 할흐족과 오이라트족이 싸울 때 자나바자르가 숨어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하긴 그 누구라도 위험에 처한 몸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지형이 기묘하고 예사롭지 않다. 규모가 그리 큰 게르 호텔은 아니지만 든든하게 생긴 바위 옆에 위치해 있어 기분 상 편안하다. 늦은 시간이어서 바쁘게 게르에 짐을 풀었다. 생각보다 화장실(수세식)도 깨끗하다. 비록 샤워를 하긴 불편하지만.


Baga Gazryn Chuluu의 기묘한 바위와 야생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을 기대했지만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다. 9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 고비! 밤새 놀기는 좋겠다.^^ 하지만 시시각각 기온은 내려간다. 두꺼운 셔츠를 입고, 점퍼를 입고, 패딩점퍼를 입고 이걸 과연 입을까, 생각하며 예비로 가져온 패딩 바지까지 입었다. 침낭이 없었다면 고비의 첫날부터 낭패를 맛보았을 것이다. 지금은 6월이니 침낭이 필요하지만 10년 전 8월에 왔을 때는 침낭이 필요하지 않았었다.


고비에서의 첫날을 축하하며, 고비에서 삼겹살과 맥주로 캠핑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해가 지지 않는 고비에서 바위틈에 피어 있는 작은 꽃들을 보았다.

밤 10시, 해가 지는 먼 서쪽 하늘에서 바람이 분다. 구름들은 지는 햇살과 엉켜 거친 실루엣을 만들어냈다.

오늘 밤 나는 고비의 바가 가즈링 촐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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