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울란바타르에서는 일요일이 좋다~
몽골을 가기로 마음먹은 후, 나는 거의 매일 밤 고원의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었던 고비의 하늘을 거닐던 구름의 그림자가 초원에 드리운 채 날 쫒아오던 10여 년 전의 8월, 그날들을 기억하며 잠을 이루었다. 꿈속에서는 나를 향해 손짓하던 사막의 신기루가 만들어낸 아득히 보이던 여객선의 환영이 뒤 따라 왔으며 손바닥으로 쏟아지던 별빛을 떠올리며 잠을 설치곤 했다.
찰나의 속도가 지배하는 최첨단의 한국에 도착한 메르스는 어느 곳 보다도 강한 전파력을 떨치며 대한민국 국민들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던 2015년 6월 6일, 공항에서는 티켓을 담당하는 직원까지 얼굴을 가리고 말을 아낀다. 공항은 아무도 말이 없는 흰색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흡사 영화 속 미래의 도시처럼 을씨년스럽고 공허하다.
바람이 부는 현지 기상 때문에 2시 20 분발 비행기는 두 시간 연착, 4시 20분에 출발했다. 3시간 30분을 비행, 해발고도 1,350m에 위치한, 아직은 공기가 서늘한 울란바트르 칭기즈칸공항에 도착하니 한국발 비행기여서인지 열감지기도 있는 것 같고 메르스 문진을 받는다.
여름이어서인지 한국과의 시차는 없지만 오후 9시가 되어가는 울란바트르는 아직도 햇살이 등등하다.
10여 년 전 대한항공이 몽골에 취항하면서 몽골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었으나 호텔로 가는 길에 예전에 내가 지나다녔던 길을 기억하려 해도 그냥 모든 게 낯설다.
차 안에서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던, 이 번 몽골리아 여행을 같이 하게 될 드라이버인 몽골청년 Dul과 내몽골에 살아서 국적은 중국이지만 몽골리안인 하이펑과 팅기스가 ‘울란바토르’,‘울란바타르’라고 하는 지명은 잘못된 발음이라며 고쳐준다. 울란바트르~라고......ㅎ
저녁을 먹어야 해서 호텔로 가는 길에 들른 레스토랑들은 저만치 해가 떠 있는데도 문을 닫고 술집만 장사를 하고 있었다. 어렵게 들어간 레스토랑에서도 주문을 받고 퇴근할 준비를 하면서 요리를 내 온다. 떠밀리듯이 밥을 먹고 나왔지만 울란바트르의 한 모퉁이에서 몽골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푸하핫~
안녕! 울란바타르~~~~
다음 날 아침,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 한 쪽에서 공사도 하는 것 같은 어딘지 모르게 차분하지 않은 분위기의 그랜드 힐 호텔의 아침밥이 깔끔하다. 언제나 아침을 거르지 않는 습관으로 인해 내게 호텔의 조식은 그 호텔의 인상을 좌우한다.
울란바타르의 볼 것들은 대부분 Sukhbaatar 광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10여 년 전 울란바타르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 중의 하나가 자연사박물관의 어마어마한 자료들이었다. 게다가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하면서도 온전한 공룡의 몸체를 그 곳에서 볼 수 있었다.
광장까지 걷기에는 조금 먼 거리인 것 같아 호텔 앞에 서 있으니 바로 차 한 대가 다가온다. 광장까지 얼마냐고 물으니 4000 투그릭 달랜다. 3000 투그릭에 가자고 하니 고개를 끄덕끄덕, 울란바트르에 머물면서 택시를 여러 번 이용했지만 택시요금을 턱없이 받으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차만 가지고 있으면 일반인도 택시 운영을 할 수 있는 몽골에서는 택시표시가 있든지 없든지 대부분 택시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내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해 굳이 택시 가격을 이야기하긴 하지만 물가가 비싸지 않은 여행지에서 지나친 흥정은 그리 권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귀하디 귀한 진짜택시를 두 번 탔었는데 미터기가 있어 흥정을 안 해도 되니 맘은 편하더라. ^^
울란바타르는 매연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6월 7일 광장의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다. 구름까지 죽이는데, 고원의 하늘 그 자체다.
광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내셔널 뮤지엄(8,000 투그릭, 카메라 10,000 투그릭)을 보고 나서 가장 기대했던 자연사박물관으로 향했다. 허름했던 옛 모습은 그대로인데 어째 이상하다. 책을 보니 시간상으로는 열려 있어야 맞는데 사람들의 왕래가 없을뿐더러 문이란 문은 다 닫혀있다. 리노베이션 중 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광장에는 칭기즈 칸(?1162~1227, 재위 1206~1227)의 모습이 광장을 굽어본다. 광장 뿐 이겠는가. 그에게는 중국에서 아드리아해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민이었거늘.
징기즈 칸 주위에서 서성이다가 지하에 있는 국회 뮤지엄을 보고 나오니 11시 30분경 빨강과 파랑의 대비가 돋보이는 클래식한 제복을 입은 많은 숫자의 군인들이 북소리 같은 리듬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여느 나라의 왕궁 앞에서 치르는 교대식이 아닌 꽤나 비장하고 진지한 의식이다. 진지한 중에도 옆에서 사진을 찍도록 흔쾌히 응해주는 미소를 머금은 청년의 시선은 고원의 청명한 공기처럼 신선하기까지 했다.
별다른 이벤트를 기대하지 않은 몽골에서 본 인상적이고 신선한 볼거리여서 나중에 내몽골청년 팅기스에게 물어보았더니 본인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아마도 징기즈 칸과 수흐바타르, 그리고 몽골과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린 이들을 기리는 의식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일요일이다.
광장의 징기즈 칸 상 앞에서 바라보면 광장 중앙에 몽골을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독립시킨 수흐바타르장군의 동상이 보이며 왼쪽에는 현대미술관과 발레 오페라극장이 있으며 맞은편에는 몽골 증권거래소 건물과 은행들, 내셔널 뮤지엄 등이 위치한다.
너무나 푸른 하늘 아래 광장을 둘러 싼 멋진 건물들, 하지만 무엇보다도 빙과를 파는 알록달록 양산을 쓴 손수레가 더 없이 정겹다.
오후에는 울란바트르에 가면 꼭 한 번 봐야지 하고 그동안 생각했던 자나바자르 Zanabazar(1635~1723) 미술관으로 향했다. 1906년에 만들어진 근대건축으로 전에는 백화점 건물로도 사용되었다는 미술관은 보기에 아담하다.
자나바자르는 투세트 칸 아이막의 칸이었던 곰브덜쥐의 아들로 징기즈 칸의 직계 후손으로 몽골 불교의 제 1대 법왕이다. 소욤보 문자를 만들었을 뿐 만 아니라 몽골의 학문, 언어, 과학, 의료, 문학, 예술과 종교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으로 어느 날 지면을 통해 한 번 보았던 ‘녹색타라’라는 그의 작품은 생생하여 잊혀지지가 않았었다.
미술관의 카메라 촬영비가 입장료와 비교해 턱없이 비싸다. 보고 나와서 책을 구입하는 것이 나을 수 있겠다 싶어 아쉽지만 그냥 들어갔다. 웬걸, 꼼짝도 못하도록 눈에 쌍심지를 켜고 감시를 한다. 대부분 그냥 구경만 해서일 수 있지만, 이들의 모습에서 몽골인들이 얼마나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조소 작품들 뿐 아니라 탱화도 너무 우아하고 기품이 넘친다. 보이는 그의 업적만으로도 그는 미켈란젤로와 다빈치가 몽골에서 환생한 것처럼 놀라우리만치 많은 것들을 남긴 것 같다.
타라는 관세음보살의 아내로 관세음보살의 눈물에서 피어난 연꽃에서 나왔다고 한다. 손바닥과 발바닥 그리고 이마에도 눈이 있어 중생을 굽어 살펴 티베트불교에서 널리 모신다는, 왼손에 연꽃을 쥐고 있는 둥근 얼굴의 타라 여신의 관능미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보는 내내 혼미할 정도로 아름다운 타라를 본 것만으로도 나는 울란바트르에 다시 온 것에 감사한다. 2층의 전시장에 있는 타라 앞에서 한동안 떠나질 않으니 미술관 직원은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무리 쳐다봐라~, 그런다고 내가 사진을 찍나~^^
내려와 미술관 샵에서 책들을 둘러보는데 아무리 골라도 프린트가 맘에 드는 것이 없다. 이것도 욕심이겠거니 하고 그냥 아름다운 타라를 마음속에 영원히 꼭꼭 담아 두기로 했다.
그리고 들른 초록색 지붕의 간당사원은 지나다니면서 몇 번 봤던지라 눈에 익다. 자나바자르 미술관 앞에서 택시로 2000 투그릭에 도착했다. 걸어 올라가 입구에 도착하니 4,500 투그릭이라고 입장료가 적혀있는데 요금을 받지 않는다.
몽골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엿 볼 수 있는 곳으로 소박하고 개방적인 사원의 모습에 호감이 간다. 무릇 사원은 이래야 하거늘.
비싼 티켓 비용은 아니지만 그냥 기분이 좋다. 오늘은 일요일이어서.....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