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테를지에서는 우아하게...
6월 13일, 고비에서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오늘은 UB(울란바트르)와 가까운 테를지로 간다. 테를지는 UB시민들이 사랑하는 휴양지라고 한다.
돌아가는 길, 웅덩이마다 머리를 쳐 박고 옹기종기 모여 물을 마시는 망아지들과 말, 염소와 양떼들, 덩치가 큰 야크와 소떼들은 먹느라고 바쁜데 긴 꼬리 우아하게 곡선을 그리더니 철썩 제 엉덩이를 내리친다. 아쉬워하는 내 마음을 알아챈 것처럼
여전히 위엄을 보이는 우아한 걸움 걸이의 낙타 떼들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6월의 고비에 흠뻑 빠져 있었던 시간들을 생각한다.
역시 해발고도가 높은 고비에서 내려오니 더위가 느껴진다. 오는 길 준모드라는 솜에서 점심을 먹었다. 볶음국수와 치킨 등을 시켰는데 양이 무척 많아 한 개를 두 명이 먹어도 배부르겠다. 백 그루의 나무라는 뜻을 가진 마을은 제법 예쁜 마을이다.
이 곳에서 테를지는 약 70Km, 테를지 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차들이 많아진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말이다. 몽골사람들이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지 테를지에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테를지로 들어가기 전 거대한 칭기즈 칸의 동상이 있는 '촌징 불독'에 들렀다. 이 곳은 칭기즈칸이 황금 채찍을 발견한 언덕이라고 한다. 동상은 엄청난 크기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듯이 멀리서부터 초원의 한 가운데 보이기 시작한다.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소욤보 문자가 들어있는 몽골의 국기까지....
동상이 있는 로비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데 6월 13일 현재 7,000 투그릭이다. 고비에서의 힘든 여정은 끝나가는 이쯤에서 긴장을 놓기 마련, 돈주머니를 차에 놓고 기지개 피듯 가볍게 나오면 다시 가자니 차 문은 잠겨있고, 꼭 봐야 할 것을 못 볼 수도 있다.
올라가 보니 칭기즈 칸의 얼굴이 바로 마주한다. 칭기즈 칸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마주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고려한 시스템이다. 보는 사람의 마음대로 해석되는 법, 퍽 차가운 느낌의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져 있으나 가만히 보고 있으면 따뜻한 얼굴이다.
초원을 평정하기 전, 사랑하는 친구이자 적이었던, 초원에 숨어있는'자무카'를 '자무카'의 부하들이 잡아왔을 때 '자무카' 앞에서 화를 내며 그의 부하들을 처형했던 칭기즈 칸의 일렁이는 분노가 오버랩된다.
몽골이 나를 이끌었던 이유가 있다면 몽골인들의 유전자가 한민족과 같아서가 아니라 칭기즈 칸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지도자에게는 언제나 명암이 있기 마련이지만 근래 500년 동안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던 서양은 과학적이며 지적이고 동양은 신비롭고 야만적이라 생각하고 싶었던 서구의 영향으로 칭기즈 칸은 위대한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세계인들에게 야만적인 제국주의자로 어두운 면만 부각되었다.
그나마 양심 있는 학자들의 노력으로 워싱턴 포스트지와 뉴욕타임스지가 21세기를 앞두고 뽑은 지난 천 년간 가장 위대한 사람을 뽑았는데 두 매체가 각각 뽑은 밀레니엄 영웅은 칭기즈 칸이었다. 그는 세계를 하나로 연결시켜놓은 네트워크 즉 당시의 인터넷 역할을 했던 것이다.
칭기즈 칸에게 씌워졌던 오명이 하나씩 벗겨지고 연구가 활발해지는 것은 실로 다행한 일이다.
화강암의 큰 바위들이 병풍처럼 쳐진 테를지는 동남쪽의 적들을 못 들어오게 만드는 최후의 방어선이었다니 과연 요새다웠다. 테를지에는 주말을 맞아 휴식을 취하러 온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제법 많다. 들어오는 길에서도 차들이 붐비는 것을 봤던지라 테를지가 떠들썩할 거라 기대했는데 웬걸, 숲과 초원과 강과 함께 넓게 펼쳐진 테를지에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온들 차겠는가. 몽골의 인구가 적다는 것이 실감 난다.
주말을 즐기러 온 사람들도, 말들도, 소들도 멋진 바위들과 잘생긴 나무들이 어우러진 주변의 풍광과 어울려 그야말로 평화로운 한 폭의 그림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땅을 보고 걸어야만 한다. 무심한 발길에 야생화가 다치지 않도록.
작고 의미 있는 공연을 보고 저녁 게르 캠프에서 먹은 푸짐한 하르헉은 솜씨가 들어간 장인이 만든 맛이다. 고비에서 Dull의 할머니 댁에서도 먹었던 하르헉을 전통적으로 만드는 방법인 달군 돌을 넣어 만든 하르헉이라고 했다.
칭기즈칸이 부하 19명과 의부였던 옹칸에게 속아 쫓김을 당할 무렵 굶주림에 시달려 거의 아사상태였을 때 발주나 호숫가에 소리 없이 나타난 말을 잡아 가죽을 벗겨 큰 가죽 주머니를 만들어 그 주머니에 고기와 물, 빨갛게 달군 여러 개의 돌을 넣고 요리를 해 먹고 살아났다고 한다.
과연 하르헉은 몽골 고래로부터 온 요리방법인지, 칭기즈칸의 발주나 맹약에서 온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양도 무척 많아 고기 요리를 좋아한다면 강추다.
다음 날 아침에는 잠깐 말을 타고 울란바타르까지 흐르는 톨강 래프팅을 하러 나섰다. 날씨도 쾌청하여 강물은 반짝이며 흐르고.
유유자적 래프팅을 시작하며 코너를 돌자마자 아직 긴장을 풀 때가 아니라는 신호였을까. 아뿔싸, 앞에 먼저 가던 아이가 탄 보트가 물살에 순간 휩쓸려 들어간다. 우리 배가 바로 뒤에 있었던지라 뛰어내려 구해줘서 망정이지 정말 순간이었다.
톨강은 물의 양도 풍부하며 길목마다 넘어져 있는 고사목도 많고 지류도 많아서 래프팅 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하루라도 그대로 지나가면 몽골이 아니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