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1
지원했던 회사에서 결과가 좋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기업에서 인턴을 하기 위해서 준비를 많이 했었고, 또 인턴을 하는 동안에도 열심히 했을 텐데 실망감이 클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저도 최근에 싱가포르에 있는 글로벌 기업에 면접을 봤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와서 크게 낙담했습니다. 오랫동안 일하고 싶었던 기업이고, 또 싱가포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컸던 탓이었는지 면접을 보는 내내 너무 긴장을 많이 했고, 면접이 끝나자마자 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면 후회라도 덜 할 텐데, 너무 원했던 나머지 진실된 나를 보여주기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했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자꾸 집중력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창피한 얘기지만, 인터뷰가 끝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다시 그 면접을 보는 꿈을 꿉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하지만 곱씹어 다시 생각해 보니, 저의 실패가 단순히 면접 준비를 잘하지 못해서, 혹은 멘탈 관리가 부족해서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원했던 포지션은 호주, 뉴질랜드, 및 동남아 국가들의 브랜드 디자인을 책임지고, 경력이 풍부한 세 명의 디자인 및 아트워크 매니저들을 이끌어야 하는 역할이었는데, 사실 저는 팀장 경력이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특히 면접을 보는 동안에 팀 리더십에 관해 질문이 주어질 때마다, 진정성이 담긴 답변을 하기 어려웠고 자꾸 저의 답변이 빙빙 도는 듯했습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나의 팀 리더십은 이러이러하다고 설명하기에는 저의 경험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또 제가 저의 현재 회사에서 디자인 팀장로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깊게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이 가슴 아픈 이유는, 이런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이 포지션의 구직 공고가 마치 제 이력서에 있는 내용을 복사해서 붙여 놓은 것처럼 비슷해서, 이건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라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면접 일정이 확정되고 면접을 기다리던 일주일동안, 매일매일 심장이 두근두근할 정도로 긴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길지도 짧지도 않은 경험을 돌이켜보면,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아픈 실패가 또 다른 기회를 열어주기도 합니다. 제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지원했던 대기업에서, 최종면접을 보고 떨어졌던 당시에는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일이 전부 잘 풀려서 그 기업의 디자이너가 되었다면, 지금처럼 싱가포르나 영국에서 일해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또 그 회사에서 인턴을 함께 했던 동기들을 생각해 보면, 내 삶이 그렇게 행복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기회는 또 올 거라고 믿고,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는 좋은 팀장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에서 디자인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제 팀은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을 위한 제품 패키지를 비롯해 브랜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희 팀은 디자인 매니저 한 명, 아트워크 매니저 한 명, 그리고 저까지 세명으로 구성된 작은 팀인데, 저희 팀원들은 저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풍부합니다. 저희 팀원들이 회사 안에서 인정받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돕고 싶습니다.
둘째로는 영어를 더 잘하고 싶습니다. 저는 글로벌 기업에서 11년 반 정도를 일했고, 싱가포르에서 2년 반, 영국에서 2년을 보냈는데도 아직도 자신 있게 저의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저의 팀원들은 모두 영국인인데, 제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국내에서 자라서, 노력을 많이 해도 영국인처럼 유창하게 말하는 건 어렵겠지만, 저의 팀원들이 또 저의 직장 동료들이 제 생각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또 제가 회의를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지 않고 항상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것 같습니다.
셋째로는 저희 회사가 잘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작년에 발발한 러시아 전쟁으로 인해서, 저희 제품의 부자재 비용이 크게 올랐습니다. 또 저희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사의 가장 큰 공장이 러시아에 있는데, 그 러시아 공장에 수입 및 수출 길이 막히면서, 저희 지역 비즈니스 전체에 매우 좋지 못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저희 팀원들과 또 저희 에이전시 파트너들과 함께 좋은 디자인 결과물을 많이 만들어내서, 저희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더 많은 소비자들을 즐겁게 만들고, 또 우리 지역, 많은 나라들에 있는 저의 직장 동료들에게 좋은 디자인과 더 나은 비즈니스 결과로 자신감을 북돋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국에서 1년 동안 어학연수를 하기로 결정했다던데,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는 발걸음이 꼭 가볍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마음이 조금 무겁더라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영국에 있는 동안 친구도 사귀고, 여행도 다니고, 또 항상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