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합니다만 괜찮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동기가 생긴다.
조리원 동기,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낳으면 또 조리원 동기로 (동기의 끝은 어디일까?)
그렇게 만난 동기들이 하나둘 모이면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된다. 그 공동체는 학교가 되고 , 직장이 되고 , 사회가 되는 것이다. 우린 이 동기들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세상 속에서 소속감과 연대감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어떤 '나'의 모습이냐에 따라 우리의 동기의 모습도 바뀐다는 것이다.
내가 성동구에 조리원을 간다면 성동구 조리원 동기가 생길 것이고, 어느 대학, 어느 직장,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동기들은 변화된다. 이는 '나'라는 사람에 따라 동기는 변화된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늘 좋은 사수, 좋은 동기들을 찾는다. 그러나 좋은 '나'를 찾는다는 이야기는 잘 못 들어보았다.
'좋은 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이 입버릇처럼 보고 배울 사수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이 힘든 진짜 이유는 사수의 부재가 아니라 사수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마음에 있다. 스스로 가르치고 배우는 법을 아는 사람은 이끌어 줄 사수가 없어도 괜찮다. 가르치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 알아서 성장한다. 자기를 돌보고 길러 낼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성장할 수 없다 멘토는 배울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법이다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
좋은 사수를 찾으면 좋지만 내가 먼저 좋은 동기가 되어야 한다. 내가 좋은 동기가 되기 위해서 나를 알아야 하고, 나를 돌볼 줄 알아야 한다. 더불어 나를 잘 앎으로 맺어지는 건강한 관계들은 건강한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자기를 아는 것은 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이기적인 태도와는 다르다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나에게 시선이 집중하는 것이 아닌, 나를 더 잘 알아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나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우린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영어, 요가, 여행 등 배움의 시간을 통해 체화된다.
나를 알아가는 것도 그 시간의 채움이 필요하다. 무언가에 시간을 쏟듯 나를 알아가는 시간에 시간을 쏟아야 한다. 나와의 대화가 많을수록 '나'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퇴사를 하고 1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을 보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다쳐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었다. 나를 다시 찾는 시간. 그 시간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미술을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거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창의적인 활동을 좋아했다. 아침의 눈을 뜨면 늘 손으로 무언가를 사부작 사부작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작고 소소한 성취들이 하나씩 쌓이며 내 마음과 몸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었다. 나를 회복시키는 건 무언가를 창작하는 행위였다. 그렇게 나는 나를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었다.
책을 읽고, 매일매일 글을 쓰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렇게 얻게 되는 인사이트를 곱씹고 곱씹으며 나에게 적용해 가며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성을 찾아갔다. 길을 잃을 땐 다시 서점으로 향했다.
시간이 겹겹이 쌓이자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며 성장해 갔다. 나는 이 과정에서 찾은 하나하나가 나의 재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재료들이 앞으로 어떻게 요리가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과정을 통해 찾은 재료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빛을 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발견한 재료들로 나에게 맞는 요리법을 찾다 보면 우린 조금씩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내가 찾은 요리법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삶. 그러기에 다양한 '나'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서로의 재료를 인정하고 , 각자 가진 재료들로 각자의 다양한 요리법을 서로 공유하는 삶. 이것이 우리가 함께 동기가 되어 연대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