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합니다만 ,괜찮습니다 .
나는 내가 예민한지 몰랐다. 그러나 한 살 두 살 살아가면서 삶의 관계 속에서 문제가 발견되면서 내가 예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예민하다 "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뭔가 수치스럽고 불쾌함이 컸다.
"내가? " 나 쿨하고 섬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똥 같은 말인가 싶었다.
그러나 요즘은 내입으로 "나는 예민해 "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그 사이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정확히 나의 예민함을 아는 게 중요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던 어떤 성향이던 재료를 가지고 있다면 그 재료를 분석하고 공부해야 했다.
나는 예민함이라는 단어가 예민하게 들리기 시작하면서 관련된 책을 찾아 읽었고, 유튜브 영상을 많이 찾아보며 예민함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나의 예민함은 금쪽이에 나오는 예민한 아이들처럼 불편함이 몸에 닿아 자지러지거나 표현을 조절하지 못하는 예민함까지는 아니지만(어릴 적 이랬는지 갑자기 궁금했다 ) 나는 외부의 자극의 반응을 잘 느끼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외부의 자극을 뇌로 느끼고 그 뇌에서 그 자극을 분석하고 신경을 통해 몸에 전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외부의 모든 자극을 뇌가 느끼면 과부하가 오기 때문에 어느 자극은 의미를 두지 않고 흘려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예민한 사람은 보통(?)의 사람보다 외부의 자극을 잘 느끼고 그 자극의 쓸데없는 (?)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람의 표정의 변화, 행동의 변화 말투등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마음의 상태가 잘 보이는 특별한 (?)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재능은 공감력이 좋다는 표현으로 표현되지만, 반대로 내 몸엔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인 것이다. 차 한잔 하러 나간 가벼운 만남에도 모든 자극을 다 읽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이 글을 쓰는데 옆사람의 행동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
예전엔 이런 내가 조금은 피곤하기도 하고, 의미를 왜곡하는 일도 많았다.
상대의 표정변화에 "내가 말 실수 했나? "라는 오해, 내 쪽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 나한테 뭐가 묻었나? " 등등..
나의 예민함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수록 이런 오해와 억측은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예민함 덕분에 상대의 마음을 잘 알아차릴 수 있었고 , (=공감능력)
예민함 덕분에 트렌드의 변화를 잘 읽을 수 있었고 , (=센스 )
예민함 덕분에 감각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 (=예술성 )
나는 예민함이라는 재료로 공감능력과 센스 그리고 예술성이라는 재료를 더 찾을 수 있었다.
우리 각자는 각자의 분량대로 선물을 받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 선물은 '나' 속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을 찾아내는 건 우리의 몫이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잘 발견해서 오래 묵혀있던 흙도 털털 털어내고 빛을 내고 광을 내어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 내가 원하는 위치에 두며 나 삶을 꾸밀 수 있다.
나의 삶을 돌아보며 나에게 어떤 재료들이 있을지 한번 나열해 보자.
(키워드로 나열하다 보면 조금 쉬울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