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들은 휴가를 낸다더라
얼마 전 국가암검진을 위해 동네 의원들을 좀 두루 다녔습니다. 내과, 유외과와 산부인과지요. 아시다시피 산부인과는 산과와 부인과를 합한 의미입니다. 젊었던 시절에는 한동안 산과 진료를 숱하게 받았지만, 이제는 부인과 진료만 가끔 받습니다.
여하튼 산부인과는 젊은 아기엄마들과 다 키운 늙은 엄마들이 함께 모이는 곳입니다. 1년 만에 찾은 그곳에는, 나를 제외한 모든 대기환자가 임신부였습니다.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젊고 해맑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그녀들을 향해 혼자서 속엣말을 건넵니다.
생명을 잉태한 위대한 존재여!
남편의 받듦을 즐기시라!
하지만 곧,
아직 배 속에 있으니 좋~을 때다!
나와 봐라, 환장하지.
고단한 일들을 다 치러낸 사람의 여유이기도 하고, 공감을 약올림으로 표현하는 심술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왠지 모를 박탈감이 밀려옵니다. 이미 오래전의 일이지만, 나는 세 번의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병원에 남편과 함께 간 일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내 배에 생겼기 때문인지, 남편은 나 혹은 가정을 위해 직장을 희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숱한 산전 검진 때마다 남편이 휴가를 내고 동행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일말의 미안함이나 안타까움조차 없이, 배부른 아내가 스스로 운전해 늘 혼자 병원에 다니는 것을 당연시하는 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모르시는 분이 아직 계시겠습니다만, 임신과 출산, 육아에 관한 한, 아내들의 설움과 섭섭함은 무덤까지 갑니다. 아, 시집살이도 포함입니다.
며칠 전 남편이 격세지감이라며 말합니다. 요즘에는 회사에 배우자의 임신과 출산을 돕는 휴가도 있더랍니다. 남편들의 육아휴직은 많이 알려졌지만, ‘산전/후 검진 동행 휴가’라고 들어보셨나요? 그 말을 듣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직원이 휴가 결재를 요청했는데 사유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는 겁니다. 나는 이제 얼굴까지 벌게집니다.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습니다.‘아, 그래서 산부인과의 임산부들이 모두 남편과 함께였던 건가.’
예정에 없이 속사포처럼 말이 쏟아집니다. 나는 아이를 셋이나 낳고 키웠어도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에 간 일은 손가락에 꼽는다, 그 옛날엔 그런 휴가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너무나 뻔뻔스러웠다, 그 휴가가 있었더라도 당신은 쓰지 않았을 사람이다! 라고 말입니다.
남편은 자신의 개인적 의지보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거라고 합니다. 그때는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죠.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모든 걸 내가 고스란히 감당하는 것이 당신에겐 너무나 당연하지 않았는가, 일말의 미안함이나 안타까움도 없이! 라는 것이 내 주장입니다.
남편은 그제야 ‘괜히 이 말을 꺼냈다’며 머쓱해합니다. 미안해하는 기색은 아닙니다. 함께 식사하던 고3 딸내미가 괜스레 말합니다.
“내일부턴 그냥 밖에서 밥 먹을게요.”
돌이켜 보면 결혼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습니다. (물론 시어머니의 비인격적인 핍박은 차치하고 말입니다.) 아직 아이가 배 속에 있으니 그저 희망과 설렘뿐이었습니다. 임신한 몸이 힘들기는 하나, 돌볼 아이가 있는 만큼의 고단함은 아닙니다. 아기가 태어난 뒤의 엄마의 고난은 임신 중의 어떤 고통보다도 더 힘겨운 것입니다. 둘째, 셋째 아이의 경우는 위로 챙길 아이가 또 있으니 고난은 곱절이 됩니다.
그런 시절에 늘 혼자 검진을 받으러 다녔던 것 역시 서러워, 잠시 흥분했던 날입니다.
괜찮습니다. 여생을 남편에게 보복하며 살면 됩니다. 남편께서는 나를 위해 요리하시고, 청소하시고, 빨래를 개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