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by 낭랑한 마들렌

산부인과 대기실에서


국가암검진을 받으러 갔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기본 검진에 더해 성별과 연령에 따른 몇 가지 암 검사를 받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부인과 검진은 여자라면 누구나 꺼리는 과정입니다. 아이를 셋이나 낳으며 숱하게 산부인과 침대 위에 올라가 검진을 받았지만, 그 일은 끝내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더 큰 일을 예방하기 위한 과정이니까요.


신도시의 깨끗한 새 건물에 자리한, 동네 의원치고는 제법 규모 있는 산부인과였습니다. 젊은 전문의들이 진료를 보는 그 병원에는 젊은 임산부들이 가득했습니다. 아니, 거의 전부였습니다. 평일 오후임에도 남편의 시중(?)을 받으며 배를 내민 채 앉아 있는 그녀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나는 이미 다 해치웠다는, 그것도 여러 번 해냈다는 묘한 우쭐함에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갑자기 훅 늙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나 역시 한때는 ‘언제 낳아서 언제 키우나?’ 하고 걱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식 다 키워놓고 검진을 받으러 온 중년 여성들을 보면서 또 그다지 부럽지는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폐경이라는 단어 앞에서


곧 진료 순서가 돌아왔고, 전문의를 만나 검진과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요즘 내 또래 여성의 화두는 단연 ‘폐경’입니다. 몇 해 전부터 나는 검진을 받을 때마다 폐경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직은 건강한 상태인지 꼭 묻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습니다. 의사가 어떤 말을 하든 흔들리지 않을 평온함이었습니다.


젊은 여의사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궁 내막 두께가 0.4cm 이하이면 폐경으로 보는데, 나의 경우는 0.87cm 정도라고 했습니다. 한 번 정도 월경을 더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폐경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뜻이었습니다. 물론 의학적으로는 마지막 월경 후 1년이 지난 시점을 폐경으로 정의하지만요.



왜 그렇게 늦추고 싶었을까


전에는 왜 그토록 폐경 시기를 늦추고 싶어 했을까요. 아마도 나는 그것을 건강의 척도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어떤 여성들은 폐경을 여성성의 상실로 받아들여 우울해진다고 합니다. 내 엄마도 아직 젊으셨을 때 자궁적출술을 받고서(그 시절에는 비교적 흔한 수술이었습니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나는 엄마가 마취에서 잘 깨지 않아 무섭고 걱정이 되었고, 다행히 잘 회복하신 것이 감사할 뿐이었는데 웬 여성성 타령인가, 살아난 게 다행이고 감사하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겁니다.


최근 2~3년 사이 월경은 여러 면에서 불규칙해졌습니다. 폐경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는 없었습니다. 의사가 “아직은 괜찮아요.”라고 말해 주면 저는 괜스레 안도하곤 했습니다.


여성성을 잃을까 봐 두려웠던 것은 아닙니다. 폐경이 곧 여성성의 소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몸이 아플까 봐 걱정이었습니다. 폐경 이후 여기저기 아프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새벽마다 낭독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녘에야 겨우 잠들어 결국 모임에 나오지 못한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동갑내기 친구들 중에는 하루는 몸이 부서질 듯 아프다가, 다음 날은 거짓말처럼 멀쩡해지고, 며칠 후 또다시 온몸이 쑤신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어느새 ‘월경의 종료 = 몸의 고통’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았고, 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습니다. 내가 용한 침술원을 알고 있는데, 침을 맞고 오면 없던 생리도 다시 시작되곤 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로 침을 맞은 것이지만, 그렇게라도 폐경을 조금이나마 연기할 수 있었던 것에 다시 안도하곤 했습니다.



해방


그래서 엊그제 의사에게서 곧 폐경이라는 말을 듣고 내 마음이 어땠냐고요? 나는 실실 웃었습니다. 우울감은커녕, 오히려 해방감이 밀려왔습니다. 이미 갱년기의 신체 증상을 어느 정도 겪어 보았고, 한 고비를 넘기고 나니 생각보다 살 만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막연히 상상하던 두려움은 이미 현실 속에서 한 차례 지나갔습니다.


‘아아, 드디어 벗어나는구나! 근 40년에 육박하는 세월 동안 매달 생리를 하느라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느냔 말이다! 가임기? 이제 사양할게. 세 번의 임신과 출산으로 충분해!’


더 이상 생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속이 다 후련했습니다. 아, 내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모든 일에는 결국 끝이 있구나. 집에 돌아와서는 안방에 보관하고 있던 여분의 생리대를 모두 딸 방에 옮겨 두었습니다. 이제 난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너나 실컷 써.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태도


폐경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요. 나는 아프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으며 잘만 삽니다. 여성성을 잃는다고요? 태어날 때 여자였다면, 죽을 때도 여자인 겁니다.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몹시 두려워하면, 오히려 두려워하는 그것이 반드시 찾아온다고 믿습니다. 상실을 붙잡고 떨기보다, 새롭게 얻게 될 것을 바라보는 편이 낫습니다. 나는 한 달 내내, 언제나 쾌적할 것을 생각하니 설레고 즐겁습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은 이럴 때 어울리는 게 아닐까요.



중학생 시절에 설레며 연모했던 가수 이승환의 노래 중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일도 말하자면 하나의 이별이네요. 가임기와의 이별, 매달의 통증과의 이별, 괜한 불안과 몹쓸 불편감과의 이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이별을 연습해 왔습니다. 검디 검은 머리카락과도, 생생하던 체력과도, 풋풋했던 청춘과도 조용히 작별을 고해 왔으니까요. 폐경도 그중 하나일 뿐이라면, 너무 비장해질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인간은 벌어진 일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고통받는다.
- 에픽테토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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