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조합은?
갱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느 날 문득 ‘아, 이거구나’ 하고 인지하게 될 뿐이지요. 마치 오래전부터 집 앞에 와 있던 택배를, 현관에서 발에 채일 때에야 알아차리는 것처럼요. 서서히 다가와 오래 머물다가, 특정한 순간에야 비로소 존재를 드러냅니다. 최근 몇 달 사이 갑작스러운 신체 증상에 화들짝 놀랐지만, 돌이켜보면 그날의 당황은 번개 같은 습격이 아니라 예고편이 길었던 본편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야 깨달아집니다.
시작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그저 잠깐 힘든 시기라 생각했던 심리적 흔들림이 사실은 갱년기의 초입이었습니다. 첫 신호는 불면이었습니다. 낮잠을 잔 것도 아닌데 새벽 두세 시까지 눈이 말똥말똥한 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 밤이면 옆에서 태평하게 코를 고는 남편을 보며, 침대 밑으로 밀어버리는 상상을 한두 번쯤은 하게 됩니다. 다행히 아직은 상상과 실행을 구분하는 이성의 기능이 남아 있었습니다.
잠들지 못한 시간은 늘 잡생각을 불러옵니다.
10년, 20년 묵은 장면들이 어제 일처럼 재생됩니다. 그때는 삼키고 지나갔던 말들, 억울했지만 설명할 수 없었던 순간들,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기억들이 감정까지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해 버립니다.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마음이 자동 해동이라도 된 것처럼요. 그 감정이 향하는 곳은 늘 같았습니다. 남편, 그리고 시어머니였습니다.
내 편이 맞나 의심스러웠던 남편의 태도들이 떠오릅니다.
나를 직장 부하직원처럼, 혹은 인생의 동반자가 아닌 ‘집에서 애 낳고 살림하는 사람’ 정도로 대하던 태도들. 시어머니의 부당한 말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그 침묵의 동의 역시 잊히지 않습니다. 만삭의 나를 두고 시어머니와 여행을 떠났던 일,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둘째 출산 예정일에 맞춰 시동생 결혼 날짜를 잡아놓고도 누구 하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던 시집 식구들. 셋째를 낳고 퇴원하던 날, 남편을 생각해 퇴원 수속을 미리 마쳐두었더니 “그럼 나는 왜 온 거냐”라고 묻던 그 한마디까지.
함께의 의미와 가치를 모르는 사람과의 동행이란 이런 것일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늘 우선순위의 맨 뒤에 서 있는 사람의 마음을, 과연 알 수 있을까요. 알았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요.
새로운 분노는 이어집니다.
원하지도 않은 반찬을 싸주고는 가짓수마다 먹었는지 버렸는지 확인하던 시어머니.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에 “네가 다 먹었지?”라며 눈을 흘기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 이후, 수십 년간 좋아하던 무말랭이무침을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엄마가 나를 위해 직사각형으로 썬 무를 실에 꿰어 손수 말려가지고 고춧잎과 함께 매콤 달콤하게 무쳐 주셨던 그 무말랭이무침을 나는 무척 좋아했던 겁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이제는 엄마의 그 정성과 사랑의 추억이 무색해질 만큼 무말랭이가 싫어지고 말았지요.
완전히 새것인 이 감정은 어떤 것이냐면,
시어머니가 말을 걸기만 해도 느닷없이 화가 치미는 그런 것입니다. 자고 있는 남편의 모습만 봐도 짐을 싸고 싶은 그런 것입니다. 어느 날은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갑작스러운 부정맥으로 병원에 다녀온 날, 결과를 묻는 남편의 메시지에 저는 날 선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당신이 언제부터 내 건강에 관심이 있었느냐, 내가 죽으면 처녀장가들면 되니 염려 마라, 어머니께서 다 맺어주실 거다…
(네,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큰아이가 돌도 안 되었을 때 이혼하고 나가라, 잘난 아들은 다시 처녀장가들 수 있다는 말씀도 들었지요. 제 친구들이 아침드라마 각본을 쓰라고 한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여하튼 느닷없는 이런 반응에 남편은 또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물론 그러든지 말든지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이상했습니다.
이게 웬 난데없는 화병인가 싶었지요.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갱년기의 시작이었던 겁니다.
오래된 일들은 덮고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용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땐 그랬지’ 하며 정리했다고 생각했지요. 연로해진 시어머니를 보며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갱년기는, 굳이 안 열어도 될 서랍을 다시 열게 합니다. 약해진 모습과는 별개로, 저는 새롭게 분노하고 또 무섭게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감정에는 유통기한이 없는 걸까요.
2년 가까이 마음속에는 이혼이라는 단어가 맴돌았습니다. 저 남자는 외도도 안 하나, 하며 이혼서류를 내밀 명분을 찾는 제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문제는 남편인지, 갱년기인지, 아니면 둘의 콜라보인지 헷갈립니다.
자, 잠시 숨을 고릅니다.
이 글은 고발장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기록입니다. 엄마의 갱년기, 아내의 갱년기는 생각보다 무섭습니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스며듭니다. 스펀지에 잉크가 퍼지듯, 왜인지도 모르게 마음을 점령합니다. 당사자도, 가족도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를 대할 때 너무 서둘러 판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배려하고, 몸과 마음에 잠시 여유를 허락하며 함께 견뎌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시기의 언행으로 그 사람의 성품을 예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도 원래 이렇게 이상스러운 사람은 아닙니다. 내 남편의 속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부채질 정도였겠지요. 그것도 아주 살짝.
안타깝게도 새로 생긴 부정적 감정과 분노는 아직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이유 없는 짜증, 명분 없는 화가 여전히 불쑥불쑥 고개를 듭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대상이 아무나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늘 남편과 시어머니… 쿨럭. 선택과 집중이 아주 정확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것 역시 흘려보내면 됩니다. 울 일도 화낼 일도 많지만, 대신 기록할 수는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 아직 미완이지만 중간보고를 해보려 합니다. 여전히 흔들리지만,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