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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랑한 마들렌 Apr 07. 2023

유유상종(類類相從)

누구와 어울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나요.

어느 주말, 남편이 갑자기 식기세척기를 보러 전자제품 매장에 나가자고 하더군요.

그 신문물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던 저는, 어차피 대강이라도 헹궈서 세척기에 넣어야 하는데 그냥 손으로 설거지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극구 사주겠다고, 설거지할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굳이 사주겠다는 것이 무언가 평소답지 않은 모습으로 보였으나 결국 못 이기는 척 고맙게 받았습니다.

(실제 사용해 보니 신세계이긴 합디다…)


뒷이야기를 들으니 이랬습니다.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던 중, 집에 식기세척기가 없다는 말을 들은 동료들은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더군요.


“아니, 아직도 사모님한테 식기세척기를 사주지 않으셨어요?”

“그럼 손으로 설거지를 하시는 거예요? 애가 셋이나 있는데요?”


민망해진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죠.


“그… 그래도 의류건조기는 있어요!”


그들 : “건조기 없는 집이 어디 있어요?!”


옆 동료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더니 화면을 보여주더랍니다.


“이거 그렇게 비싸지 않은 모델이에요. 얼른 하나 주문해 드리세요.”






오래전 지인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명품 가방을 들고 있기에 좋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사회적으로 존경과 부러움을 살 만한 직업에 종사하고 실제로도 수입이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괜찮다고 해도 남편이 자꾸 명품 가방을 사준다고 그녀는 말하더군요.

남편 직장 동료들은 으레 그런 가방을 몇 개씩이나 가지고 있거나 아내에게 사주는 사람들이라나요.

 

“남편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가 중요해.

수준 높은 사람들이니까 명품 가방 사주는 것도 당연시하잖아. 그런 사람들 틈에서 이런 것쯤 안 사주는 게 이상하지. “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더군요.

남편은 어쩌다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때마다 저를 위해 외국 브랜드 가방을 사 왔습니다.

나중엔 소위 명품급 가방도 사주더군요.

또 뭔 이야기를 들었던 듯하지요?^^


이제는 제가 못 사게 합니다.

그런 것은 하나면 충분하다고, 명품으로 치장할 것이 아니라 내가 명품이 되고 싶으니 나에게 현찰로 투자하라고요.

그랬더니 최신형 노트북도 사주고 얼마 전에는 아이패드를 액세서리까지 풀세트로 사주었습니다. 내놓고 '투자'라고 말하니 차라리 귀엽습니다.






아침 6시면 낭독 독서모임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름하여 <아침낭독반>.

500쪽 이상의 벽돌책, 혼자 읽기 부담스러운 책들을 함께 낭독으로 읽고 나누는 모임입니다.

벌써 몇 달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습니다.

(1800여 쪽에 달하는 작품을 이제 곧 완독 하게 되니 뿌듯함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읽은 부분에서는 안나의 오빠인 스테판 아르카지치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보기 드물게 대단히 사교적인 남성입니다.

가정을 돌보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살다 보면 소홀히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지요.


왜,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 있지 않습니까.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유부남이지만 여자를 좋아하여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만나려 하는,

음주와 오락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 없으며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 말이지요.

(손 들지는 마세요.^^)




스테판 아르카지치는 사려 깊은 아버지와 남편이 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독신자의 성향이 있었고, 그는 그저 그러한 성향에 맞춰 살아갈 뿐이었다.
- 레프 톨스토이 저, 연진희 역, [안나 카레니나](민음사) 중에서




오로지 쾌락만을 위해 사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대단한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여 서로 이해하고 도움이 되도록 하는 데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지요.

설득력도 좋아서,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즐거운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보니 유지비가 많이 들어 언제나 돈이 부족합니다.

자신의 수입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지출하여 가계는 쪼들리고 빚은 늘어만 가지요.

고민 끝에 더 많은 봉급을 받을 수 있는 공직으로 옮기기 위해 인맥을 동원합니다.

청탁을 받은 이가 ‘그런 일을 왜 하려 하느냐’고 묻자, 빚이 있어서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하다고 대답하지요.

빚이 얼마나 되느냐 묻고 '2만 루블'이라는 답을 들은 그는, 크게 웃으며 그건 빚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알고 보니 30만, 50만, 500만 루블을 빚졌다는 사람들의 이름이 줄줄이 거론됩니다.

어마어마한 빚에, 현금은 한 푼도 없지만 그래도 아주 멋지게 살아간다는 말과 함께요.

그런 사람들 틈에서 스테판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게 되는 순간입니다.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類類相從(유유상종) :
사물은 같은 무리끼리 따르고, 같은 사람은 서로 찾아 모인다는 뜻.



또 이런 말도 있지요.


내가 만나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 바로 나다.
(짐 론)



선한 사람들과 어울려야겠습니다.

바른 사람들과 어울려야겠습니다.

나보다 낫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만나야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내를, 엄마를 자주 밖으로 나가게 하고 여행 다녀오라 용돈 쥐어 내보내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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