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낱말 곳간

죽음 1

지금 죽어도 될까?

by 낭랑한 마들렌

덜커덕!


'응? 이게 뭐지?'


어느 평범했던 날 갑자기, 심장이 덜커덕거렸습니다. '덜커덕'이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느낌이 자주 반복됐습니다. 코로나19 예방 접종 후 겪었던, 아마도 심근염 후에 느꼈던 부정맥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습니다. 강렬했고 빈번했습니다. 그다지 신봉하지도 않는 현대의학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싶지 않았기에 내 몸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일시적인 문제라면 회복하라고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언제 심하거나 덜한지 패턴을 알게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러다 갑자기 심정지가 올 수도 있을까?'

진료를 받아보기로 마음먹고서 생각해 봅니다. 지금 죽는다면 어떨까 하고요.



나, 지금 죽을 수 있을까?
죽어도 괜찮을까?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주 오랜만에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나는 어떤가?


내가 하던 일이 중단된들 누구에게 큰 피해를 입힐 것도 없고, 마무리 짓지 못해 한스러운 일도 없었습니다. 계획했으나 아직 시작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도 일말의 아쉬움이 없었습니다. 지금 죽는다 해도 말이죠.

남편? 음.. 패스할게요. 아이들? 좀 이른 나이에 엄마를 떠나보내 힘들다 한들 그들의 몫이니 감당해야죠. 사실 엄마라고 해주는 것도 별로 없으니 크게 아쉬울 건 없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두 곳의 의원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했습니다. 혈액검사에서는 피가 조금 나오다가는 중도에 더 이상 전혀 나오지 않아서 임상병리사와 저 모두 황당했지만, ‘이번엔 나올 거예요’라고 내가 말하며 세 번째 바늘을 다시 찌르게 했을 때는 시원하게 나오더군요. 하루쯤 검사기기를 몸에 부착하고 심장 박동 상태도 기록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건강은 괜찮습니다. 부정맥이 하루 100번쯤 일어난다고, 강하다고 의사가 말했지만 처방해 준 약이 효과가 좋았습니다. 어차피 원인 해결이 아닌 대증요법이니까요. 추가로 처방받은 비타민 D와 고지혈증 약까지, 약은 넉넉히 먹게 됐습니다.

‘지금 죽어도 될까?’

생각해 보았던 일은 혼자만의 해프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조금 씁쓸해졌습니다. 나에게는 죽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오래전부터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두렵기는커녕 한때는 어서 오기를 기대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정말 있는지 모른다 해도 좌우지간 나는 예수를 믿으니,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 했으니 그곳에 내 자리 하나쯤 있을 테고요.


내게 두려운 건 죽음보다는 사는 것이었고, 죽을 때의 고통이었습니다. 아픈 것도 싫고 비참해지는 것도 싫었거든요. 고통 없이 추하지 않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복 중의 복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막상 '지금 죽어도 되겠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쓸쓸해지는 것입니다. 내게 살아갈 이유가 그토록 없었던 것인가.

'사는 동안 열심히 살자'주의입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을 겸허히 감당하며 충실히 살겠다는 다짐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하기 위해 내가 절대 죽지 말아야 할 것은 없다니, 이거 괜찮은 건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요즘 박경리 작가님의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의 시들을 매일 조금씩 낭독하고 있습니다. 제목에 덜커덕 반해, 그냥 집어 들고 신용카드를 내밀어버린 책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이렇습니다.


남아있는 무엇이든 버리고 갈 수 있어서 참 홀가분하다.



나, 이대로도 괜찮은 거지요?

사는 동안은 열심히 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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