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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존중의 시대

낭독은 개취니까

by 낭랑한 마들렌

낭독, 하면 할수록 어렵지요? 열심히 하겠다고 매일 연습을 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 같고, 동료들을 둘러보면 다들 목소리도 좋고 낭독도 어쩜 그리 따뜻한지요. '나는 이번 생엔 안 되려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는 분도 계시더군요. 하지만 낭독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처음 배울 때는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 순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나갈 때 우리는 성장하게 됩니다.


할수록 낭독이 더 어렵다고 느끼시는 분들께 희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번에는 음악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요즘 한국의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데, 여러분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클래식 음악을 잘 알진 못하지만, 들으면 어쩐지 귀도 즐겁고 마음도 간질간질해지는 것 같아서 즐겨 듣는 편입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인재로는 임윤찬 씨를 들 수 있겠지요. 기교가 좋은 피아니스트라고들 하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조성진 씨의 연주를 좋아합니다.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 절제미와 우아함이 느껴지면서 그가 음악에 깊이 몰입하여 연주하는 모습은 무척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원로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의 연주는 강하고 힘 있는 느낌과 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임윤찬, 조성진, 백건우 세 연주자들 중 가장 탁월한 피아니스트는 누구일까요? 마음속으로 대답해 주시지요.


네, 이것은 우문(愚問)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임윤찬일 것이고 저에게는 조성진일 겁니다. 어떤 곡은 백건우의 연주가 좋고 또 어떤 곡은 랑랑 혹은 예브게니 키신이 최고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요.


‘가장 탁월한 피아니스트’를 가리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전문가들이야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토대로 분석하고 비교할 수 있겠으나, 저는 ‘개인의 취향’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해 전에 작고하신 재일교포 서경식 교수님의 저서 [나의 서양음악 순례]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연주가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그게 일정 수준을 넘기만 하면 그다음은 개인의 주관에 좌우된다. 아니 주관이라기보다는 좀 더 감각적인 것이다.

(서경식 저, 한승동 역 [나의 서양음악 순례] 중에서)



이 글에서 저자는 소위 일류 연주자들의 일류 연주라고 하는 공연들을 많이 들었는데 정작 자신은 별 감흥이 없었다고 합니다. 프로 연주자의 수준까지 올랐다면 마음을 울리는 명연주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듣는 이의 감각, 취향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낭독도 이와 같습니다.

어느 정도 기본 소양을 갖췄다면 그 이후에는 청자의 몫으로 남겨 두면 됩니다. 청자들은 자신의 개인 취향대로 들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중저음의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저의 낭독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또 어떤 사람은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의 낭독을 즐겨 들을 것입니다. 깨끗하고 순진한 느낌을 주는 낭독을 선호하는 분도, 고향의 사투리 억양이 섞인 낭독을 선호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 누구의 낭독이 ‘가장 탁월하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글에 나의 감성을 얹어 정성스럽게 전달하면 나만의 개성이 담긴 유니크한 낭독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낭독은 참 쉽습니다.


물론 기본 소양은 반드시 갖춰야 합니다. 약간의 미흡함이 오히려 매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약간의 미흡함’이어야지, 기본기가 없어도 상관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개성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겁니다.



멋들어지게 낭독 한 자락 해내고 싶은가요? 겸손하게 배우시고 꾸준히 낭독해나가다 보면 나다운 낭독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조금 부족한 듯해도 가장 나다운 낭독, 내가 꾸밈없이 드러나는 낭독에서 청자는 매력을 느낍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당신의 낭독을 일부러 찾아 들을 정도로 선호하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은 취향 존중의 시대니까요.



어딘가에있어.jpg 출처: 오디오북낭독연구회 / 캘리그래피: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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