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의선 광인 Oct 27. 2024

우리는 그저 티 없이 빛나는 쌍둥이별이다.

책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읽고

이국의 연인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특히 그 이국이 나의 고국과 너무나도 달라 벽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사실 우리는 서로 다를 게 없는 그저 똑같은 인간들일뿐인데,

문화적 차이와 역사적 앙금으로 인한 이별을 맞게 되면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요즈음 나의 유튜브 피드에서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추천된다.

평상시에 멜로드라마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나였지만,

헤어진 타국의 연인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는 시놉시스에 꽂혀 드라마와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은 적극적이고 직설적이며 열정적인 한국인의 원형이다.

준고는 신중하고 본심을 잘 표현하지 않는, 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본인의 표본이다.

이러한 성격 차이를 갖고 어떻게 연애를 이어갈 수 있겠는가?


홍은 줄곧 준고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준고는 결혼하자는 표현을 ‘평생 같이 살자’라는 말로 에둘러 표현한다.

회사 사정으로 저녁 약속을 어기게 되어도 전화 한 통 주지 않는다.

답답한 걸 곧 죽어도 싫어하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천불이 나는 행동이다.

완곡한 표현을 즐겨하고 업무 중에는 핸드폰을 보지 않는 일본인 입장에서는 당연한 행동이다.


홍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되려 화를 내는 준고에게 상처를 주며 떠난다,

“잘못했다고 하면 되잖아! 너희 일본 사람들은 어째서 그런 말 한마디를 못 하는 거야?”

홧김에 모든 일본 사람들을 싸잡아서 나무라는 광역 어그로를 시전 한다.


하지만 그녀의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


‘준고, 함께 한국에 가자.
가서 일본 여자와 결혼하려던 아빠를 반대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너처럼 좋은 일본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하자.
우리 세대는 다르다고 말하자.‘
나는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묻지 않았다. 피곤함과 짜증이 섞인 그의 눈빛이 침묵 속에서 나를 찌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슬픈 얼굴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날 나는 그에게 소리쳤다. 무슨 말들을 했는지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너희 일본 사람들이라고 소리쳤을 때, 우리를 점령하고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 것을 빼앗아 가고, 하는 소리들을 처음 했을 때
준고의 얼굴이 처음으로 천천히 나를 향했는데 그때 그의 눈빛은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 보였다.


그녀가 홧김에 모든 일본인들을 싸잡아서 욕한 데에는 그녀의 할아버지로 대표되는 그녀 안의 애국심에 기인한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어 살리기 운동을 하신 홍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들려준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는

홍의 인생의 기반이 되어 그녀가 일본에 건너가 윤동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에서 마주친, ‘일생동안 쏟을 수 있는 사랑의 양을 다쏟 어부는’ 준고로 인해

그녀 인생의 목표는 준고와의 결혼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홍의 정신적 지주인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일본 여자와의 결혼을 반대하였다고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애국주의자인 할아버지가 그러한 선택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일본여자를 평생 잊지 못한 자신의 배우자로 인해 고통받았던 홍의 어머니 역시 홍과 일본 남자와 결혼을 극구 반대한다.

더군다나 소설의 배경인 1997년 당시만 해도 두 나라 사이에 반일혐한 감정이 극심하였던 시기였다.


때문에 준고와의 사랑을 선택한 홍은 할아버지와 어머니, 한민족을 배신한 듯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렇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택한 이국의 남자는 자꾸만 내게서 멀어져 간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그이밖에 없는데.

그는 왜 날 한 번도 이해해 주지도, 미안해하지도 않는 것인가?

이렇게 상처를 입은 홍은 준고에게 이별을 고하며 다시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일수록 잊기 힘들다.

특히나 서로를 상처 준 어린 날의 치기 어리고 무책임했던 말과 행동은

내면이 성장하면 할수록 후회를 남길뿐이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전의 실수가 무색하도록 있는 힘껏 사랑할 텐데.


그래서 준고는 홍과의 연애시절 추억을 담은 소설을 쓴다.

그녀에게 이 책이 닿기를 바라며. 그녀가 다시 날 돌아봐주길 바라며.

말로는 진심을 온전히 전할 수가 없기에 그는 글로 적은 진심이 통하는 기적을 바란다.


그리고 그가 바란 기적은 진실로 일어난다.

그의 소설을 한국어 버전으로 출판하기로 한 출판사에 홍이 일한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잡을 기회를, 마치 신이 주신 선물처럼 받게 된다.


준고는 홍이 매일 러닝을 하는 분당의 호숫가를 찾는다.

그리고 그녀를 마주쳐 그녀와 함께 달린다.

홍과 연애시절 조금만 뛰어도 힘들어하던 준고는 이제 홍처럼 어렵지 않게 달릴 수 있다.

홍과 이별한 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홍이 늘 그랬던 것처럼 매일 러닝을 하였던 준고는

어느새 그녀의 아픔과 고독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 정말로 달렸어. 그것밖엔 할 수 없었거든. 계속 달렸기 때문에 그때 네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게 되었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넌 혼자서 달렸다는 걸. 난 그때 너와 함께 달렸어야 했다.
난 너에 대해 뭐든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읕 가장 중요한 것을 알지 못했던 거야. 내가 나빴어. 널 외롭게 해서. “
힘이 쭉 빠져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난데없는 눈물 때문에 잠시 내 몸이 휘청했다.
그가 균형을 잃으려고 하는 내 손을 잡았다. 구체적인 체온이 그의 손을 통해 느껴졌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혹은 서양인이든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온기.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느끼는 따스한 온기.
나도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아니야……. 우리가 나빴어…….”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선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연애나 대인관계뿐만이 아니라 외교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몇천 년간 서로 침략과 대항을 일삼아온 인접국 관계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실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별에서 떨어져 나온 서로를 쏙 빼닮은 쌍둥이일 뿐임을 깨닫고

서로를 이해하며 진심으로 협력하는 관계가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일본 사람도 한국 사람도 다 같은 아시아 몽골로이드야.”
“아니, 윤오. 그전에는 같은 유인원이었어. 그전에는 양서류였고, 그전엔 어류. 우린 다 같이 바다에서 온 거라고.
또 우연히 우리 선조는 한반도에, 너희 선조는 일본 열도에 정착하게 된 것뿐이야. “
“아니야 베니. 일본 열도는 원래 한반도에 붙어 있었어. 원래는 하나의 유라시아 대륙이었지.”
“아니야, 윤오. 아직 이 별에 바다와 땅이 없었을 때 이 별은 하나의 뜨거운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는걸.”
“아니야, 베니. 맞다. 이 지구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태양이었어. 태양에서 떨어져 나와 이 지구라는 별이 생긴 거야.”
우리는 웃었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놀이로 우리는 자신들을 둘러싼 국경이나 경계나 식별의 공허함을 확인하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