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부곡'
영산나들목에 들어서자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부곡’이라는 두 글자였다. 7월의 강한 햇살은 초록 표지판의 오래된 균열사이로 빈틈없이 스며들었다. 창녕은 윤선의 고향이었다. 38년 중 19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농사짓는 큰오빠 부부가 엄마와 아직 살고 있지만 이제 그녀에게 너무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남은 가족들은 늙어가며 조금씩 작아졌지만 그것조차 지루하고 낯설었다. 영산 사거리에 들어선 그녀는 좌회전하지 않고 직진했다. 평일 한낮에 연락없이 내려와 집으로 바로 가는 일은 꽤 껄끄러웠다. 창밖으로 드문드문 보이던 농가들이 사라지고 온천 관광호텔들이 적막한 풍경 사이에 끼어들었다.
길의 끝에서 너른 폐허가 그녀를 맞았다. 덩그러니 서 있는 하얀 건물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부곡하와이. 그녀에겐 오래된 유물같은 알록달록한 기억을 건져 올릴 수 있는 곳이었다. 3년 전 폐업 후 방치된 그곳엔 들어오는 차를 제지하는 관리인도 없었다. 땡볕이 그대로 꽃히는 넓은 주차장을 벗어나 제법 숲이 우거진 썰매장 입구까지 차를 몰았다. 썰매장의 경사를 등지고 막 차를 돌렸을 때였다. 존재감이 확실한 궁서체의 간판을 달고 있는 ‘지옥로’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부곡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녀는 소풍이나 극기훈련 같은 단체 활동으로 이곳에 올 때마다 필수 견학 코스였던 그곳을 기억해 냈다. 길 위에 선 10명의 시왕들은 각자 어떤 죄를 어떤 방식으로 벌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사춘기 남자아이들은 벌을 받는 여인의 젖가슴에서 내내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차를 세우고 입구에 섰다. 죄를 지어 오라를 받고 지옥에 들어가는 인간석상에서부터 길은 시작되고 있었다. 불, 송곳, 얼음, 끓는 가마솥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벌을 주고 받는 석상을 지나치던 그녀는 다섯 번째 시왕, 염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발설지옥’. 지옥의 주신인 염라는 구업을 벌한다. 죄인의 아주 길게 뽑은 혀 위에서 소가 쟁기질을 했다. 그리고 그 옆에선 알몸의 여인이 야차에게 혀를 뽑히고 있었다. ‘혀를 뽑아 쟁기질을 한다.’ 끔찍한 문장, 그 것을 구현해낸 석상 앞에서 그녀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구업, 말로서 누군가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 구업이라면, 그의 혀는 쟁기질 당해 마땅했다. 저렇게 그의 혀를 뽑을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 지었을지 모를 자신의 구업을 사하기 위해 자신의 혀도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
“당신의 건강한 하루를 찰랑, 업!”
비타민과 섬유질이 든 M제과의 곤약 푸딩은 올해 회사의 전략 제품 중 하나였다. 홍보대행사 PM인 윤선은 홍보일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식음료는 처음이라 내심 긴장했다. 지난달 경쟁사에서 이직한 그녀는 연봉인상과 승진에 대한 잡음을 실적으로 잠재워야 했다. 꼼꼼히 전략을 짜고 PT를 준비했다. 제품의 히트는 전략과 상관없이 제 갈길을 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방향을 잡고 촘촘히 리스크 체크를 한 후, 공들여 시뮬레이션을 한 자료를 만들었다.
“건강과 아름다움, 먹는 재미까지.. 회사가 원한 컨셉에 독특함까지. 구성 좋아.”
프리젠테이션 당일 아침, 그녀가 만든 자료와 파일을 보며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슬모양으로 길게 드리워진 귀걸이가 어깨 위에서 흔들렸다. 검정 투피스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자, 파이팅하자고. 이번 제품 봐서 M제과 다른 라인들도 계약 가능할 것 같으니, 수고해줘!”
긴장한 그녀를 바라보며 대표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우리는 한배를 탄 거야. 함께 가는 거라고.”
굳은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서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며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회의실의 불이 켜졌다. 앞에 앉은 임원들의 얼굴은 심드렁했다. 시계를 보며 성급히 다이어리를 정리하는 사람도 있었다.
“질문이나 추가할 사항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윤선은 눈을 반짝이며 임원들을 바라봤을 때였다.
“벗어, 벗지 그래?”
회의실 가득 난감한 웃음소리가 번졌다. 김 전무였다. 회사 최고의 실세라는 그는 오너의 큰아버지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윤선은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벗으면 일단 다들 집중할 거 아니야. 그 다음 자네의 몸매를 보고 웃든가 고개를 돌리든가 하겠지. 홍보전략은 그렇게 봐줄만하고 섹시하게 빠져야 하는 거 아냐?”
옆에 앉은 대표의 눈이 커졌다. 임원들은 박수까지 쳐가며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역시 유쾌하시다니까. 맞는 말이잖아. 껄껄 대며 다들 한마디씩 보탰다. 김 전무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푸딩 컨셉은 좋아. 근데 우리 제품 시식해 봤잖아? 좀 더 말랑하고 부드러운 느낌.. 그러니까 자네 가슴을 한번 만져봐. 그렇게 말랑하고 보드라운 느낌, 식감. 그걸 느끼고 강조하라는 거지. 지금 만져보지 그러나.”
아이고, 전무님 짓궂으셔라. 마케팅 부장이 사태를 수습하려는 듯 일어섰다. 굳은 표정의 윤선을 보며 고개를 흔들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은 이만 정리하겠습니다. 저희 마케팅2팀에서 좀 더 논의하고 진행하는 것으로 하죠. 정윤선 과장님, 대표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홍보대행사 담당자가 클라이언트 회사의 임원을 직접 만나 일을 진행하거나 접대를 해야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기업 실무 담당자와 의사소통하며 체크하면 되었다. 특히 전략적으로 단일 제품을 맡는 경우에 그럴 일은 더욱 드물었다.
“난 자네가 정말 맘에 드네.”
이어진 몇 번의 식사와 술자리에서 김전무는 윤선을 옆에 앉혔다. 술을 따르는 일이야, 뭐 어른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언사들, 그리고 스치는 몸과 시선이 아슬아슬하고 은밀하게, 확실한 의도를 품고 그녀에게 접촉했다. 그 느낌과 기억은 얼룩처럼 베어서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어떤 단어를 동원해도 축축하고 불쾌하게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인내심이 부족하고 지독하게 예민한 자신을 탓해 보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래, 대표님과 이야기해 보자. 그래도, 같은 여자인 그녀는 윤선의 입장을 이해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담당자를 바꾸는 미봉책이라도 줄 수 있을지 몰랐다.
“이해는 하는데, 당신 프로잖아요. 클라이언트 특성에 맞게 대응해야죠.”
대표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덧붙였다.
“그것도 업무의 일부라는 거 아시죠? 회사 구성원이잖아요. 폭력같은 문제삼을 만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조금만 참아봅시다. 잘 하고 있잖아요.”
*
텅빈 길에서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윤선은 고개를 들어 혀를 뽑히고 쟁기질당하는 석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의외로 평온했다. 어느날 그녀의 일화를 소문으로 전해들은 모 일간지 기자가 연락해 왔다. 평소 친분이 있던 기자는 갑질에 대한 사례를 모으고 있다며 상세한 제보를 요청했다.
“헛소문이에요. 제가 그런 일을 당하고도 계속 회사에 다닐 사람으로 보이세요?”
그녀는 웃으며 태연히 안부를 주고받은 후 전화를 끊었다. 맞아, 정윤선 너는 그런 사람이지. 얼룩의 처리는 철저히 자신의 몫이었다. 더러운 얼룩들을 세상에 노출해봤자 이용당하거나 무시당하거나, 세상은 이런 사소하고 너저분한 사건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사후세계에서 그녀가 속 시원해 질 만큼 형벌을 내려줄 수 있을까? 그의 혀를 쟁기질 하면 내 얼룩은 과연 사라지게 될까?
지옥로를 빠져나오며 그녀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낡은 팜플랫을 발견했다. 폐업 직전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오색별빛 부곡 인디언 캠프’ 체험 프로그램 홍보책자였다.
- ..어린이들의 바른 인성을 함양할 수 있는 지옥로 산책 코스..
쓴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그들의 인성은 지옥로를 산책하기 못했기 때문인 걸로,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지옥 초입의 화탕지옥에서 가마솥에 담궈진 남자가 보였다. 끓고 있는 가마솥에서 떠오르면 옆에 있는 ‘인두우로’와 ‘귀왕’들이 칼과 몽둥이로 가라앉게 만든다는 설명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각자의 욕망이 제멋대로 들끓고 있는 가마솥, ‘부곡(釜谷)’은 여기가 아닌 그녀가 떠나온 곳이었다.
살갗이 데이고 벗겨져도 혼자 동여매고 견디고 살아가야 하는 곳. 가라앉히는 주변인들의 근면한 이기심에서 오는 고독을 견디는 게 더 서글픈 곳.
자동차 위에 드리워졌던 그늘은 한줌도 남지 않고 사려져 버렸다. 뜨겁게 달아오른 차를 몰아 그녀는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영선사거리를 알리는 네비게이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회전 하지 않고 영산나들목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지옥로가 있는 골짜기 위로 붉은 저녁노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황인찬
폐업한 온천에
몰래 들어간 적이 있어
물은 끊기고
불은 꺼지고
요괴들이 살 것 같은 곳이었어
센과 치히로에서 본 것처럼
너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
다들 어디론가 멀리 가버렸어
풀이 허리까지 올라온 공원
아이들이 있었던 세상
세상은 이제 영원히 조용하고 텅빈 것이다
앞으로는 이고독을 견뎌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긴 터널을 지나 낡은 유원지를 빠져나오면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