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베네치아'
밤의 어둠에 가려 검은 장막처럼 보이는 바닷물이 그의 다리를 감싸고 허리, 가슴을 지나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감각이 무뎌질 만큼 차갑고 묵직한 밀도를 가진 검은 액체가 그의 입을 빈틈없이 틀어막았다. 목구멍 아래까지 차오른 물에 숨이 가빠오고 의식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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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운이 좋은 거에요. 베네치아엔 눈이 거의 오지 않아요. 이런 멋진 풍경과 눈을 함께 볼 수 있는 건 당신이 행운아라는 겁니다.”
공항리무진을 기다리는 경수의 옆에 선 이탈리아 남자는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경수를 향해 과장된 제스츄어가 섞인 서툰 영어를 쏟아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남자와 내리는 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2월, 베네치아의 하늘에선 제법 큰 눈송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습하고 추운, 뼈 속까지 시려올 날씨가 예상되었다. 알리탈리아의 지독히 맛없는 치킨라이스, 그나마 포크와 스푼을 세 번의 요청 끝에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식욕이 없어진 그가 맥주를 거푸 마실 때부터 이미 시련은 예고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전, 아마 출장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을 떠나면서부터 였을 것이다.
“그냥 박람회야. 보고서만 내면 되니까 쉬었다 온다고 생각하라고. 아, 이삼일 남은 휴가 붙여서 지내다 와도 괜찮고.”
디자인 가구 박람회가 열리는 베네치아 출장에 그를 보낸 정이사의 속내를 그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얼마전 대기업 계열사로 합병된 회사에는 월급과 복지 수준이 모기업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명퇴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1차 대상은 박경수 부장이 팀장으로 있는 마케팅 2팀이라고 했다. 영업 지원 부서인 2팀은 모기업의 지원부서와 업무 내용이 상당부분 중복된다는 구체적인 이유와 함께였다. 일단 지원부서에서 경험을 쌓길 원한다는 인사팀 내부의 정보가 있었다. 공식 정보에 비공식 피셜이 붙어 새해, 그의 명예퇴직은 거의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여행사에서 예약한 호텔은 산마르코 광장 부근이었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추운 광장은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비둘기들은 눈과 바람에도 관광객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과 비둘기들에 부대끼며 사진을 찍고 아내와 딸에게 보냈다. 아내의 부러움 가득한 멘트에 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대화를 한지 오래된 딸은 역시, 톡에서도 답이 없었다.
“환영합니다. 미스터 박!”
그림 속에서 나온듯한 백발의 호텔 매니저가 묵직한 키뭉치를 건네주며 미소를 지었다. 외출할 때도 열쇠를 카운터에 두고 가면 된다고 덧붙이며 매니저는 요란한 손동작으로 열쇠들이 잔뜩 꽂힌 선반을 가리켰다. 로비의 테라스가 붙은 작은 식당에선 조식 외에 점심과 저녁도 이용가능하다고 했다. 지금은 브레이크 타임인 모양이었다. 어차피 식욕은 없었으니 상관없었다.
이층의 방은 매우 춥고 온기라곤 없었다. 작은 히터 두 개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돌아가고 있었지만 방안을 데우기엔 부족해보였다. 그는 오늘밤, 자신의 온기로 침대 속을 데우고 잠들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철저히 혼자인 이 며칠이 차라리 편했다. 좁은 방에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베네치아는 무척 복잡하답니다.”
호텔을 나서는 그에게 호텔직원은 마술을 하듯 입으로 소리를 내며 손바닥크기로 접힌 지도를 건넸다. 호의에 미소 짓던 경수는 3유로라는 직원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지도앱을 켠 스마트폰을 들어보였다. 직원은 검은 보우타이를 장난스럽게 당겼다 놓고 어깨를 으쓱하며 은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눈이나 비가 온 후엔 안개를 조심하십시오. 길을 잃고 마음까지 잃어버릴 수 있답니다. 베네치아는 당신의 마음을 훔치는 도시니까요.”
눈은 어느새 그쳐 있었다. 리알토 다리 부근의 화려한 가계들을 지나 무작정 걸었다. 관광객들에 밀려 걷던 그는 무작정 사람이 없는 좁은 골목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작은 다리를 지나고 또 골목을 걷고, 미로같은 도시를 계속 걸었다. 길에는 옅은 안개가 내리기 시작했다. 인적은 점점 뜸해졌다. 날씨 탓인지 골목을 만든 집들은 입을 꾹 다문 듯 이중으로 된 창문의 덧문까지 단단하게 닫고 버틴 듯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4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배도 고프고, 뼈속까지 시린 추위를 피하고 싶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지도앱을 켰다.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그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좁은 골목 가운데 섰다. 분명 아까 지나온 길 같았다. 거미줄같은 수로의 도시에 그는 갇혔다고 생각했다.
“중국산 복제 가구가 많아져서 이젠 이 시장도 희망이 없어.”
김과장의 잔에 소주를 따르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직원 정리는 사실 지난해부터 은밀히 시작되었다. 마케팅 2팀의 축소는 예견되어 있었지만 그는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영업부터 시작해서 차근히 경력을 쌓아온 그를 회사가 내치진 않을 것이라는 섣부른 믿음이 있었다. 김과장처럼 실적이나 근태가 명백히 좋지 않은 직원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잘 된거야. 더 일찍 다른 걸 준비할 수 있잖아.”
그때 김과장은 어떤 표정을 지었나. 정말 잘되었다고 손뼉을 치며 감탄한 표정을 했던가. 그는 고개를 숙였다. 안개는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눈 앞까지 뿌옇게 된 길에서 경수는 검은 운동화의 발끝만 보고 걸었다. 장갑이 없어 주머니에 넣은 손에 공연히 힘이 들어갔다. 46년의 인생을 거머쥔 주먹은 텅 비어 있었다. 이대로 안개와 함께 사라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끝도 희미해질 만큼 안개가 짙어진 눈 앞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가 조금씩 베네치아에서 지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았다. 천천히 감각만으로 왼발을 들어 앞으로 옮겼을 때였다.
발이 허공에 뜨고, 온 몸이 허공에 뜨고, 그리고
그의 몸은 어디론가 내던져 졌다.
시커먼 물이 그를 휘감았다. 묵직한 액체가 온 몸을 누르기 시작했다. 액체 속에서 두 눈을 떴다. 검고 더러운 물속에 나부끼는 쓰레기들이 보였다. 입으로 들어온 액체가 불쾌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나가고 싶었지만 몸은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짜고 냄새나는, 더러운 하수 속에서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안개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나았을텐데. 갚지못한 아파트대출, 아내, 그리고 딸 진영이... 한국에서 그를 둘러싼 것들이 생각나자 몸이 가라앉았다. 그래 거기 바닥이나 여기 바닥이나 똑같을 것이다. 차라리 아는 이의 눈에 띄지 않는 이곳이 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악취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배설물과 쓰레기, 오물이 섞인 이 물은 참을수가 없었다. 숨이 사라져가는 와중에도 구역질이 일었다. 순간 그는 온 힘을 다해 물위로 올라가기 위해 애를 썼다.
그때 였다. 물살이 일며 긴 막대 하나가 그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막대기를 잡고 올라갔다. 손을 뻗자 나무로 만든 배가 만져졌다. 곤돌라 였다. 두터운 근육질의 두 팔이 그를 끌어 올렸다. 물을 흠뻑 먹은 두터운 패딩점퍼가 가득 머금은 바닷물을 곤돌라에 쏟아놓자 뱃사공은 인상을 썼다. 그는 그대로 누워 크게 숨을 내쉬었다. 날씨는 여전히 추웠지만 안개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세뇨르, 어쩌다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당신은 운이 좋은 겁니다. 오늘은 안개가 심해서 곤돌라를 운행하지 않아요. 손볼 곳이 있어 잠시 나왔다가 당신을 만난 겁니다.”
그는 커다란 수건을 가져와 내게 건네 주고 다른 수건으로 바닥을 닦았다. 물을 닦던 그가 먼 곳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세뇨르, 지금은 석양을 보기 딱 좋은 시간이에요. 석양이 가장 멋진 탄식의 다리를 지나 산모이세 성당 앞에서 숙소로 가세요. 베네치아의 명물을 놓치시면 안 됩니다.”
붉은 스트라이프 티셔츠 위에 검은 점퍼를 입은 금발의 사공은 내 얼굴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수건을 감은채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명의 은인인 그가 하자는 대로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는 싱긋 웃고는 물을 뚝뚝 흘리는 경수를 보고 윙크를 했다. 그리곤 마이크 테스트 하듯 목청을 가다듬었다.
석양이 물들 때, 황홀한 오션 카페에
사랑을 나누는 모든 연인들 춤을 춰
이런 날을 기다렸어 영화처럼 멋진 꿈을
모두다 불러요 사랑의 노래를
이 밤이 새도록, 아침이 밝아 오도록
그대가 내게로 들려준 정열의 사랑의 노래를
오 솔레미오 영원한 내 사랑
그대를 만나 장미꽃 사랑이 내게 온 것 같아요
아름다운 내 사랑아
오늘이 가도 그 마음 변치 말아주세요
그의 노래 위로 맑은 하늘과 검고 더러운 바다를 불태우는 석양이 번져나갔다. 세상 모든 오물이 들어가 썩고 있는 바다. 그 더러운 바다에서 그는 살아났고, 또 그를 살렸다고 생각했다. 오물냄새는 아직도 지독하게 코끝을 맴돌았다. 그래도 석양은 아름답고 물위의 공기는 맑고 산뜻했다. 목청 좋은 스트라이프 뱃사공의 노래도 나름 감미로웠다. 이거면 됐다. 나는 안개에 사라지지도 않았고, 하수에 매장되지도 않았다. 온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겨울공기도 생존의 증거라 생각하니 그다지 괴롭지 않았다.
“세뇨르, 도착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산모이세 성당 앞에 곤돌라를 댔다. 경수는 그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발에 바닥이 닿는 뭍에 서니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주저 앉으려는 그를 뱃사공이 잽싸게 잡아 일으켰다.
“괜찮으신가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뒤돌아서는 경수의 어깨를 그가 살며시 잡았다.
“세뇨르, 100유로입니다.”
아.... 경수는 젖은 지갑을 꺼내 역시 축축한 100유로 지폐를 꺼냈다. 뱃사공은 젖은 지폐를 손바닥에 붙이곤 입김을 ‘후’ 소리를 내며 부는 시늉을 하고는 미소를 짓고 어두운 선착장으로 사라졌다.
일단 지독한 냄새가 올라오는 패딩점퍼를 갈아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커멓고 밀도감있게 출렁이는 베네치아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수 속에서 오물이 되어 생을 마감하고 싶진 않다는 잘고 사소한 실존이 그를 살렸다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파스타 삶는 냄새가 났다. 그는 오늘 하루, 베네치아에서 단 한 끼도 먹지 않았다. 일단 식사를 하고 생각하자. 점점 짙게 풍기는 파스타 삶는 냄새, 토마토소스가 끓는 냄새를 따라 그는 천천히,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한 식당 골목을 걸어 들어갔다.
니체
나는 다리에 서 있었다
다갈색으로 물든 그날 밤
멀리서 노랫소리 들려왔다.
그 소리는 황금빛 물방울이 되어
출렁이는 수면(水面)을 흘러 갔다.
곤돌라가, 등불 빛이, 음악이ㅡ
취한 듯 황혼 속을 표류하고 있었다.
나의 영혼은, 리라의 가락은, 홀로 노래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연주하였다.
곤돌라의 노래가 은은히 가락을 맞추었다,
화려한 축복에 떨면서.
ㅡ누가 그것을 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