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시딘 Feb 17. 2020

외로운 빈츠

손바닥보다 작은 갈색 비닐 포장의 과자. 봄 햇살을 받은 비닐은 과자 이름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빛났다. 빛나는 물체에 올린 듯 미현은 그 자리에 섰다. 앞서 걸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빈 도시락통을 움켜잡고 멍하니 서서 과자를 바라보았다. 숲속에서 불어온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 바람 속에 아들의 목소리가 섞이듯 들려왔다.

“뭐해 빨리 와. 부리바가 기다려”     


된장으로 간을 한 맥적, 매콤한 무말랭이, 숙주나물과 두툼 달걀말이. 새벽부터 일어난 미현은 눈을 뜨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과자나 간식들은 따로 천가방에 챙기고 도시락용 찬합을 꺼냈다. 달걀을 풀고, 재워둔 고기를 팬에 올린 후, 무말랭이는 도시락과 따로 싸줄 것들을 나누어 담았다. 정우는 김치보다 무말랭이를 좋아했다. 이가 좋지 않은 시어머니가 무말랭이를 무칠 일은 없을 것이다. 초록 완두콩이 든 밥을 도시락에 담았다.      


‘초로록 완두콩 붉은 옷 김치, 모두모두 우리친구 골고루 먹자...’      


정우와 밥을 먹으며 되는대로 부르기 시작한 ‘밥상송'이었다. 아들은 ‘초로록 완두콩’이라는 대목에서 까르륵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노래때문인지 밥에 들어가는 잡곡 중 완두콩만 좋아했다. ‘초로록 완두콩..’아마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아들은 변함없이 밥을 뜨면서 노래를 흥얼거릴 것이다. 초록빛 콩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동그란 그것을 손으로 굴리고 어쩌면 콧구멍에 넣어볼지도 모른다. 미현은 밥을 퍼 담으며 아들에게 눈을 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처럼 맛있는 것을 즐겁게 함께 먹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누구보다 손을 잘 닦고 화장실을 잘 다녀와도 과장되거나 어색했다. 단지 그 이유로 자폐증인 아들의 뒤통수는 연민과 보살핌, 놀람 등의 여러 시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미현에게 임신은 족쇄였다. 결혼 직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던 남편과 바로 헤어지지 못하고 아이를 가진 것을 깊이 후회했다.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열 달이 지나갔고 아들을 낳았다. 남편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정말로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결혼 전 그 말없음을 과묵함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공학연구소의 연구원이라는 직업과 조화를 이뤄 개성과 매력으로 다가왔다. 결혼 후 말이 없던 사람이 말을 많이 할 리는 없었다. 규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이해력이 빠르며 엄청난 집중력과 천재적인 연구실적을 보이는 그는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경도의 자폐증을 갖고 있었다.      


“그럼, 정우도 천재 아냐? 서번트인가? 정우 아빠가 좀 그렇잖아.”

자폐판정을 받고 친정 식구들에게 힘들게 털어놓은 날, 엄마가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정우의 지능은 지체 수준은 아니었지만 평균 이하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점이 시댁식구들을 더 싸늘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할말도 없었다.


아이는 일곱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못했다. 놀이치료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치료를 다니며 운동장으로, 공원으로, 시야가 확보되는 공간으로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아이는 크기가 같은 낙엽을 모아 포개놓고 단정히 정리하거나 그네가 있는 모래판을 온 몸에 모래를 묻혀가며 평평히 정리했다. 땅이 비옥한 집 앞 공원엔 지렁이가 많았는데, 비가 온 다음날엔 두툼하고 커다란 지렁이들이 땅위로 올라와 꿈틀거렸다. 정우는 땅위의 생물들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개미들이 힘주어 끌고 가던 두툼한 지렁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놀란 미현이 지렁이를 손에서 빼앗고 아들의 손을 털며 말했다.


“지지. 만지면 안 돼. 그냥 봐야지.”

얼굴이 빨개지며 동그란 콧망울과 입을 실룩이던 아들은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눈물을 흘리며 아들은 터뜨리듯 입을 열었다. 

“개미 불쌍해. 힘들어서.”

아들이 세상에 뱉은 첫 마디였다. 그녀는 말이라는 것을 해 준 아들이 고마워서, 그리고 개미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짠해서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그해 그녀는 이혼을 했다. 

아이와 남편, 시댁. 결혼에 엮인 그들 때문에 매 순간  남편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냉랭하고, 자신의 공부에만 집중했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그와 생활하고 숨쉬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대체적으로 아이는 순한 편이었지만 습관과 원칙이 정해지면 그것을 지키느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나무를 꺾은 반 아이를 그러면 안 된다고 일주일 내내 쫓아다녔다. 무단횡단을 한 남자를 쫓아가다 넘어져 크게 다치기도 했다. 아스팔트가 온통 할퀴고 간 아이의 무릎을 보며 그녀는 가슴을 치며 울었다. 쓰던 논문을 출력해서 책상모서리에 맞춰 챙겨두고, 삼분간 양치를 한 후 잠자리에 든 남편을 바라보았다. 씽크대를 열었다. 수면 장애를 위해 처방받은 약을 한웅큼 손에 넣어 삼켰다. 영원히 잠들기를. 그러나 늦잠을 자는 엄마에게 일어나라고 괘종시계처럼 주변을 도는 아이의 목소리에 깨어났다. 아이를 데려다 주기 위해 멍한 정신으로 세수를 하고 옷을 입으며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 수 없는 이 생활을 이제 더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줄 알았다. 인간도 아니야.”

아이를 데려가지 않겠다는 말에 시어머니는 벌레를 보는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할 말이 많았지만 참았다. 정우를 돌 볼 사람은 시어머니였다. 그래도, 한마디는 하기로 했다.

“경험이 있으시니 저보다 잘 돌보실 수 있잖아요.”     


한 달에 두 번 아이를 만났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야외로 소풍을 갔다.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친구의 미술학원 데스크 업무를 봐주면서 조금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우의 자라는 모습을 기록할 겸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다. 연필이나 펜을 사용하는 것보다 좀 더 냉정하게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펜의 선이 모니터를 스치는 순간 눈물부터 났다. 그냥 울었다. 시간을 두고 빼야할 것들이 몸에 많이 쌓여있다고 생각했다. 죄책감에 이어지는 우울함들. 나쁜 음식들처럼 몸에 축척된 것들은 울고, 그리고 자고, 또 걸으며 천천히 빠져 나갈 거라고 미현은 믿었는데,     


엄마를 만나면 많이 걸을거야. 걷는게 몸에 아주 많이 좋대.    

 

그렇게 정우가 가르쳐줬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몸은 점점 커갔지만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사는 데 방해가 되는 그저 착한마음. 아이는 하루의 하나씩 선행을 하고 손을 들어 길을 건너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채근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시키는 것을 기억했다. 걷고, 세상의 규칙을 지키고, 많이 웃고... 한달에 두 번 만나며 그들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내년이면 중학생이네. 점점 더 커지고 자랄거야.”

완두콩밥에 고기를 올려주며 미현은 씽긋 웃었다. 정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기가 올려진 수저를 뒤집은 후 다시 수저에 밥을 떴다. 

“이만큼 컸으면 밥은 스스로 먹는 거야.”

미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들 다 컸네. 아들이 이렇게 크는 동안 엄마는 더 쪼그라들고 작아졌어. 


“고모들이 엄마보고 이기적인 년이래. 난 ‘이기적’이라는 말도 알고 ‘년’이라는 말도 알아. 근데, 엄마는 둘 다 아니야. 이렇게 맛있는 밥을 해서 주는데 이기적이야. ‘년’은 여자에 대한 욕이랬어. 근데 엄마는 욕먹을 일을 하지 않잖아.”

“그래서, 고모들한테 뭐라고 했어?”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먹었다.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시댁과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건 그들의 문제였다. 그녀가 ‘살아 있는’것이 아닌 ‘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미현은 살기로 선택했다. 선택에 따른 나머지 문제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도리어 그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딛고 아이를 위해 더 열심히 버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정이 없는 남편이 부러운 순간이었다.  

    

“그건, 친구들의 ‘부리바’가 나오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어.”

지난주 아들은 수업이 끝난 후 집에 가지 않고 앉아 있다가 모든 층의 교실문을 열고 다녔다. 제지하는 교사를 뿌리치다 넘어져 발목을 접질렸다. 부리바는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친구들에게는 누구나 그들만의 부리바가 있다고 아들은 말했다. 부리바와 싸운 친구들은 그들만 남겨둔 채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외롭고 슬픈 부리바는 교실에 남아 소리내지 않고 울었다. 정우는 불쌍한 그들을 위해 교실문을 열어둔 것이라고 했다. 집에 갈 수 있도록 말이다. 피크닉 매트위로 어디선가 하얀 꽃잎이 날아들었다. 조심스럽게 꽃잎을 집어 손등에 얹은 아이는 살살 입김을 불며 다시 매트위로 날려 보냈다.     

 

“엄마가 좋아하는 과자다.”

아이는 빈츠 상자를 들고는 소리나게 흔들며 웃음지었다. 

“그래, 정우도 좋아하지. 이런 초코과자를 먹은 후엔 양치질을 더 잘해야 해요. 이가 썩으면 아프니까.”

정우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도 잘 닦고, 찻길을 건널 땐 꼭 손을 들어요. 어른들을 만나면 큰 소리로 인사하고, 밥도 잘 먹고 친구들을 때리지 않아요. 힘든 건 도와줘야 되고요.”

신이 난 아이는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들이 다시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정우는 문명이 만들어 놓은 규범들을 누구보다 잘 지키며 살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 아이가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을 받는 일은 언제나 속상하고 괴로웠다.      


공원을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집에 가기 전에 운동화를 하나 사 줄 계획이었다. 정우는 날개가 그려진 운동화를 신고 싶다고 했다. 개미를 밟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운동화. 서둘러 집을 정리하고 공원 입구로 향했다. 잠시 허리를 펴 하늘을 보았다. 아지랑이가 피는 봄 하늘이 뿌옇게 나른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아이는 입구 저 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정우의 걸음은 매우 빨랐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던 미현은 땅위에 홀로 떨어진 작은 갈색 봉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초코과자 빈츠 였다. 

미현은 과자를 바라보았다. 너른 공원아래 떨어진 갈색 비닐봉지의 빈츠는 외로워 보였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과자를 주웠다. 외롭다고 손으로 쥐어버리면 과자는 부서지고 초코는 녹는다. 과자와 그녀의 그 외로운 거리를 생각하며 아들이 지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한걸음 앞, 또 한걸음 앞.. 아이는 엄마가 걸을 길 위로 비닐에 하나씩 포장된 과자를 간격을 맞춰 떨어뜨려 놨다. 마치 헨텔과 그레텔이 숲속에서 빵조각을 뿌려놓았듯, 길을 잃지 않도록. 미현은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봉지를 벗겨 입에 넣었다. 달콤한 과자의 맛이 입안에 느껴졌다. 빈츠도 그녀도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초코부터 먹는 거야.”

입구에 선 아이는 한 글자씩 크게 소리 질렀다. 정우의 조언을 따라 초코부분부터 입에 넣어 잘 긁어낸 후 남은 비스킷을 마저 넣었다. 달콤했다. 미현은 징검다리처럼 떨어진 과자들을 주워 주머니에 넣으며 입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텀블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