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지키기 위해 게임을 버려야 한다면
N사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왔다는 연락이 왔다. 지하 회의실에 가보니 양복을 입은 키 큰 장년의 남자가 있었다. 가업 승계 문제로 찾아왔습니다. 아버님이 보내셨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남자를 돌려보내고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며 욕을 해댔다. 통화가 끝난 뒤, 아버지가 문자를 남겼다. X월 X일 X시. 화성 경찰서. 여기에서 보자.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함께 경찰 조사를 받았다.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지만, 일단 자기 말에 동의해 달라는 말에 알았다고 했다. 경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런 조사해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이잖아요? 당연히 아들이 아버지를 지키려고 하겠지요. 거짓말인걸 저도 알지만 그냥 마무리해야겠네요. 대신 뒤처리는 확실히 해주세요.”
아버지는 그날 장어구이를 사주셨다. 거의 20년 만에 두 사람의 식사 자리였다. 너 장어 좋아했었잖아. 그나저나 무슨 일인가요? 회사 문제다. 원래 이 회사는 할아버지가 너에게 남기셨던 거야.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내가 운영하고 있었다. 넌 미성년자였으니까. 그러든 말든 관심 없으니 그 회사 그냥 아버지 가지세요. 그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정상적인 형태로 가업 승계가 이루어져야 해. 그게 아니면 문제가 커진다. 정상적인 형태? 우리 회사에서 일 해라. 신입 사원으로 들어와서 사장까지 순차적으로 진급해야 해. 5년쯤 걸릴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제가 왜 그걸 해야 하죠? 아버지는 침묵했다. 여전히 나를 두려워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럴만했다. 당장이라도 불 판을 뒤엎고 눈앞의 칼을 휘두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처럼. 하지만 다음 한 마디에 나는 무너졌다. 네가 아니면 네 동생을 부를 거다. 아들은 둘이니까.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답은 이미 나와있었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유학까지 간 동생의 앞 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결정하지 못했던 것은 게임에 대한 나의 집착 탓이었다. 세계 최고의 게임 회사, C사의 면접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생의 꿈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이었던 게임을 손에서 놓아야만 한다. 동생은 착하고 여린 아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좋아한다. 분명히 궁지에 몰린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리라. 강철의 연금술사를 봤다. 에드워드 엘릭은 동생 알폰스 엘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인 연금술을 버리는 결정을 한다. 그래. 게임을 잠시 떠나보내자. 5년 뒤, 회사를 손에 넣고 나서 게임 사업부를 만드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제조업에 손을 댄 김에 체감형 게임이나 게임기를 만드는 길도 있겠지. 나라면 반드시 이겨내고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아버지에게 제안을 수락하겠다고 연락하고 선반과 G코드를 배우는 기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완전히 생소한 분야이기에 다른 학생들에 비해 적응이 느렸다.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는 정체를 숨기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첫날부터 이사님과 차장님이 나를 알아보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만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탓에 직원들에게 소개를 할 때부터 사장님 아들이고 미래의 우리 보스라고 이야기했다. 악의는 없었겠지만 덕분에 나는 고립되었다. 첫 근무는 절단 반이었다. 80대이신 분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는데, 거대한 톱 기계를 사용했다. 온몸으로 들기에도 무거운 금속 재료를 거뜬히 옮기셨다. 멋진 분이다. 워낙 말이 없으셨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도면을 보고 사이즈에 맞춰서 톱 기계 위에 두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점심시간은 회사 식당에서의 배식이었다. 아버지는 제일 앞에 있는 자리에서 이사님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나는 항상 혼자 앉았다. 간혹 함께 식사를 하자며 다가오는 분들이 있었지만,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이 있는 테이블에 가지는 않았다. 불편해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내가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가 이 회사의 가십거리로 돌기도 했으니까. 나와 친해지면 아첨꾼인 것처럼 소문이 돌았다. 식당과 제품 세척반의 아주머니들이 소문의 근원지였다.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에 더욱 스스로 거리를 두어야 했다. 아버지 또한 그렇게 말했다. 특정 직원 한 둘과 가까워지지 마라. 문제가 생긴다.
두 번째는 기계 반이었다. 수동 선반 작업을 배웠는데, 몇 번인가 불량을 냈다. 실수로 손가락을 잃을 뻔하는 일이 생겼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기계반에서부터는 숙련도의 차이가 컸다. 초보자인 나는 거의 민폐 수준이었다. 일반 직원이었다면 크게 혼났을 실수도 있었는데, 반장님은 별 말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더 불편했다.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난 후 제품 하나를 통째로 맡게 되었고, 이는 부서 졸업 시험이었다. 그다음은 샌딩이라는 작업이었다. 길쭉한 기계 안에 제품을 넣고 장갑을 낀 손을 안에 넣어 제품을 닦는 작업이었다. 샌딩 머신 안에서는 고속으로 움직이는 모래알이 날아다녔는데, 고무장갑에 목장갑까지 끼고 있음에도 따가웠다. 같이 일하던 분은 중국에서 오신 분으로 한국 말이 서툴렀다. 항상 혼자이셨는데, 세척반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로는 장기 매매 택시를 몰다가 도망쳐서 한국에 숨어 살고 있는 거라고 하셨다. 믿거나 말거나.
회사를 다니며 가장 크게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족구였다. 점심시간마다 시합을 했는데, 나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문제는 내가 출전하면 잘하든 못하든 주목도가 높아진다는 점이었다. 조리실의 아주머니들조차 나와서 구경을 할 정도였으니까. 족구 시합을 피하고 싶었지만, 매번 도망칠 수는 없었기에 주말에 혼자 근처 운동장에 나가 밤늦게까지 연습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수년간 족구만 해오신 분들에 비하면 햇병아리 수준이었다. 이때 즈음 연인과의 이별을 겪게 되었다. 신입 사원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에 N사에 다니던 시절의 연봉에서 20% 수준으로 급여가 크게 줄었고, 화성 공장에 있다 보니 서울에 사는 연인과 만나는 것도 힘들었다. 연락이 서서히 잦아드는가 싶더니 어느 날인가 회사 동료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 미래가 없는 나에게 붙어 있을 수는 없겠지. 회사에서는 고립되고 연인과는 이별했다. 친한 지인들은 모두 게임 업계 사람들이었는데, 어쩐지 연락하기가 불편했다. 외로웠다.
열처리 반은 거대한 용광로 앞에서 일하는 부서였다. 힘든 일이었는데, 의외로 이 공장에서 가장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 배치된 곳이라고 했다. 화학 전공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 여러 약품을 배합하고 온도와 제품 크기, 요구 경도에 맞춰 계속 조절을 하는 작업이다. 관련 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그저 거대한 크레인으로 제품을 담갔다가 시간에 맞춰 꺼내는 정도의 보조 작업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겨울에는 휴식 시간마다 다들 열처리 반으로 모였다. 용광로 앞에 서 있으면 웬만한 실내 난방보다 더 따듯했으니까. 열처리 반 직원 분들은 매일 소금을 먹었다. 한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니셨고 여름에도 크게 더위를 타지 않으셨는데, 직업병이라고 하셨다. 열처리반 반장님은 90세가 넘으셨다고 했는데, 혼자만 알고 있는 비법 조합식이 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사장님보다 급여가 높은데도 계속 일하고 계신 거라고. 온몸에 주름이 잡혀 있었는데, 젊은 시절에 용광로에 빠져서 전신 화상을 입으셨다고 한다. 자신이 죽을 뻔했던 바로 그 용광로 앞에서 계속 일하는 멘털이라니. 엄청나지 않나. 이 회사에서는 온몸으로 자신의 용맹함을 보이는 전설적인 존재였다. 진정한 장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없던 버릇이 생겼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을 바로 일으켜 왔는데, 멍하니 누워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 상태로 내가 죽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게임이 없는 나의 인생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게임 업계가 아닌 곳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결론은 하나였다.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게임 업계로 돌아가겠다는 다짐과 기대. 혼자 있을 때면 '죽고 싶다, 죽을까?' 하는 말이 자꾸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 분야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 분 한 분이 너무 멋지고 대단했다. 다만, 내가 평생 아둥바둥 살아온 과정에서 목표로 하던 것을 잃은 자의 한탄일 뿐이었다. 고작 그게 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날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끼 밖에 못 먹던 시절에도 여기저기 얻어맞으며 돈을 벌기 위해 궂은일을 하던 시절에도 잘 버텨온 나였기에 느낄 수 있었다. 내 삶에서 게임을 빼면 안 되는구나. 그동안 투정 부려 오던 것이 한심했다. 철야를 해도 야근을 해도 월급을 못 받아도 무슨 짓을 당해도 게임만 만들 수 있다면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고 나서야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이든 마찬가지겠지.
원통 반의 기술은 특별했다. 우리 제품을 대기업이 따라 하지 못하는 핵심 중 하나라고 했다. 앞서 공정을 통해 나온 물건의 날과 같은 곡선 면을 깎아내는 작업이었는데, 기계로 대체할 수는 있지만 설비 비용이 너무 비싸서 가성비가 안 맞는다고 했다. 그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0.001mm의 작은 오차. 그리고 0.01도 단위의 각도까지 손으로 잡아냈다. 기계로 하려면 고가의 초 정밀 기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얕보는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직접 일해볼수록 이 분들이 존경스럽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손 끝으로 0.001mm의 차이를 감지해 내는 것. 상상이 되는가? 지금까지는 실제 제품 가공에 손을 보탰지만, 여기에서는 잘못 깎은 불량품으로 연습하는 수준에 그쳐야 했다. 내가 작업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세상이 너무나 좁게 느껴졌다.
한동안 회사 근처 원룸에서 지냈다. 더운 여름이었는데,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었다. 회사까지는 논을 가로지르는 지름길로 가면 도보로 30분 정도 걸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처음으로 중고차를 구매했다. 내가 일하는 곳이 자동차 관련 제조를 하는 공장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뒷말이 많았다. 그래도 사장님 아들인데 소형차를 탄다고? 아버지가 사주신 거냐고 묻길래 대답하지 않았다. 부자 관계에 대해 알려서 좋을 것은 없을 테니까. 이때 구매한 차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발이 되어 주고 있다.
제조반 직원의 절반은 수작업, 절반은 C&C 작업을 했다. 수작업을 하시는 분들 역시 대단한 장인이셨다. 개중에는 의외로 나이가 어린 직원들도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들과 친하게 지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지금 젊은 친구들이 이 회사의 미래에도 쭉 함께 할 거라고. 제조반 구역의 중심에는 오래된 PC가 한대 놓여 있었다. 윈도우도 아닌 DOS가 돌아가고 있었다. M.exe 단순히 상징인가 싶었는데, 나이 많은 직원 분들이 종종 도면을 들고 그 PC에 가서 무언가를 메모하고 돌아가셨다. 저건 뭐예요? 저거? 우리 회사의 핵심 중 하나인 프로그램이지. 뭐 하는 건데요? 계산기 같은 거야. 우리 제품에게만 적용되는 값을 알려주는 것이지. 우리 제품에만 적용된다고요? 코드 봐도 돼요? 봐도 모를걸. 어디서 파는 건가요? 아니, 사장님이 만드셨어. 네 아버지는 뛰어난 기계 공학자이자 수학자이거든. 컴퓨터도 잘 다뤄. 화학도 잘하셔서 우리 회사 열처리 기술도 사장님이 처음 만드셨지. 아버지가 코딩을 하셨다니. 전혀 몰랐다. 그나저나 아버지가 이런 먼치킨이었다고? 직원들의 존경을 받는 아버지가 생경했다.
공장을 다닌 지 1년쯤 지났을 때, 미국에서 삼촌이 들어오셨다. 회사에서의 직급은 상무였는데, 직원들 다수가 따르는 모습이었다. 어쩐지 마음에 걸려서 총무부 부장님에게 회사 지분을 알려달라고 했다. 사장님 아들이라서 큰 경계가 없으셨는지 곧바로 알려주셨는데,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 작은 회사의 지분이 심각하게 쪼개어져 있었다. 주주가 20명도 넘는 것 같았다. 그중 가장 큰 지분을 가진 것이 아버지와 삼촌이었다. 현장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삼촌과 내가 회사 경영권을 두고 싸우게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무 행동도 말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줄 서기를 시작했다. 뜬금없이 할 말이 있다고 나를 불러내서는 내 편이라고 인증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다른 분들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아시죠? 이게 뭐지? 사내 정치는 딱 질색인데. 이렇게 불편한 상황이 생기는구나.
작은 녹음기를 하나 샀다. 그때부터 하루 동안의 모든 대화를 기록했다. 퇴근 후 기숙사에서 확인하며 필요한 부분을 PC로 옮겼다. 어떻게든 틈을 찾아내야 했다. 아마 너는 일본에서 녹음 속 수업 내용을 옮기고 있겠지? 너는 공부를 위해서, 나는 생존을 위해서 같은 행위를 한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여기에서 내려가고 싶었다. 회사를 물려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주변의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돈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일구지 않은 회사, 증오하는 마왕과 아버지의 성취로 이루어진 돈이 반가울 리가 있나. 게임으로, 내 힘으로 번 돈이 아니라면 나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는 휴지 조각이다. 어떻게든 나는 게임을 만들 거다. 게임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끝까지 실패해서 제조업에 남게 된다면? 결국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승계받게 된다면? 그때는 게임 부서를 만들 거다. 적어도 게임 컨트롤러나 체감형 아케이드 머신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 나는 결심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