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드나듦에 대하여
점심시간, 볕이 좋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해?”
“이제 안 입는 곳들 정리 좀 하고 있어. 버릴 거 버리고.”
“그래? 계절 바뀐다고 큰일 하는구나.”
“큰일은 아니고. 근데 한 번도 안 입은 옷들도 있어서 좀 아까워.”
“그렇겠다. 근데, 옷을 정리하고 나면 남아있는 옷들이 새삼 새롭게 느껴지지 않아?”
“그렇지.”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옷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떤 걸 버려야 할까. 철 지난 옷들을 아무렇게나 쌓아두고는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옷을 정리하는 기준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옷이 꼭 옷장에 있었던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편한 옷이 꼭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어떤 옷은 입은 적도 없고 앞으로도 입을 것 같지 않지만, 꿋꿋이 옷장에서 살아남는다. 하지만 어떤 기준이 어떻게 얽히고설켜 옷을 정리하느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 옷이 살아남느냐, 버려지느냐의 차이일 뿐. 간단하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옷장의 옷들이라면, 그렇지가 않다.
인연은 맺어짐과 헤어짐으로 나뉘지만, 이 단어들이 무색하게 대부분의 관계는 맺어짐과 헤어짐의 중간 그 어디쯤에 있다. 계절이 바뀌어 옷을 정리하는 것처럼 관계를 정리하는 시기가 있다면, 우리의 관계는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보련만. 어떤 이에게는 모든 날이 계절이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계절이 더디게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두고 입어야 할, 진작에 버렸어야 할, 혹은 혹시 모르니 깨끗하게 세탁해서 소중히 옷장 안쪽에 두어야 할 그런 인연들 사이에서, 그냥 하루를 살아간다.
옷을 정리하며 친구와의 대화를 계속 반추했다. 너는 나에게 어떤 옷일까, 나는 너에게 어떤 옷일까. 사교성이 그리 좋지 못한 나의 옷장에는 적은 옷들이 빠르게 나고 든다. 그 세월 속에 닳아버린 내 옷장은 잘 잠기지도 않고 삐걱대기까지 한다. 그런 나의 옷장에서도 친구는 3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리 사랑해주지도 않았는데, 맞춰 주지도 않았는데. 중요한 건 내 자신이지 옷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도.
옷을 다 정리하고 남은 옷들을 바라봤다. 새삼 새로웠다. 그러나 가장 새롭게 느껴진 건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