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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봄 May 04. 2023

K에게

낭만과 축구

오랜만이야, 케이.  후로 벌써 10 만이네.

기억해? 우리가 열광했던 그때를, 동시에 절망했던 그때를 말이야.


케이,  축구를 다시 보기 시작했어.  보고 있을까?

나는 여전히 그 사람들이 밉지만 조금은 달라졌으리라 생각하기로 했어. 우린 끊임없이 배우고, 깨우치는 인간이니까 성장을 믿기로 한 거지. 나는 선(善)함을 믿고 싶어.


있잖아, 케이 경기를 보다 보면 가끔 묘해지는 순간이 있어.


‘꿈’이라는 건 두루뭉술하여 실재하지 않는 것이 맞는데, 그게 명확히 보이는 1초의 찰나가 존재해. 그 찰나를 비롯해 점점 선명해지는 그들의 간절함은 내게 흥분과 동시에 공포감을 줘. 남의 꿈을 멋대로 응원하고, 재단하고, 타오르고, 식어버리고 이게 마치 나비효과를 불러오는 것 같아.


가령 잘 뛰고 있던 선수가 태클을 당해 넘어진 상태로 일어나지 못하고 들것에 실려 나간다던가, 이건 다른 스포츠 이야기지만 평소처럼 경기를 보다 흥분한 상태로 ‘아, 좀 빨리!’를 내뱉자마자 순식간에 차가 뒤집히고 불이 난 차에 갇힌 선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노라면 명치가 막힌 듯하고, 속은 체한 듯이 갑갑해져.


그리고 사람들은 저들을 향해 비난을 해. 이기는 게 당연한 것도 아닌데 욕을 하고, 물건을 던져. 그럼 난 그들의 표정을 봐.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단 말만 반복해. 그래서 아예 보지 않았어. 그건 나한테도 큰 상처였고, 나까지 좀먹는 것 같았거든. 바닥을 기는 수준의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도 역겨워 토악질이 났어.


그런데 이번에 카타르 월드컵을 했잖아. 이건 내 선택사항이 아니었어. 마치 내 앞에 아몬드 초콜릿이 있는 것과 같았거든. 그들의 간절함이 뚝, 뚝, 하고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보면 언제 외면했었냐는 듯이 심장박동이 빨라져.


맞아, 다시 보게   불가항력이었어.

좋아하던 선수가 언젠가 꼭 다시 축구팬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진짜 그렇게 됐어.


 편지를 네가 본다면 아마 바보 같다고 말할  같네.  지나버린 시간만큼, 늦은 만큼 염원  비슷한 것들도 함께 담아 즐기려고 . 일희일비하는 지금이 즐거워. 너와 함께했던 시간도 즐거웠는데 벌써 오래된 이야기가 됐네.



케이, 내가 했던  기억해? 각자 잘살자는 .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내는 . 그게 스포츠 같아. 응원하고, 응원받고, 열정으로 돌려주고,  열정에  자극받는 선순환의 관계 말이야. 내가 좋아하는 선수도 언젠간 기량이 떨어지고 지금과 같진 않겠지만 영원할  없어서  애틋하고 소중하다고 느껴져. 나는  모든 순간을 낭만이라고 생각해.


너의 낭만은 어때? 새로운 낭만을 찾았어?


다음엔  이야길 들려줘.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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