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축구
오랜만이야, 케이. 그 후로 벌써 10년 만이네.
기억해? 우리가 열광했던 그때를, 동시에 절망했던 그때를 말이야.
케이, 난 축구를 다시 보기 시작했어. 넌 보고 있을까?
나는 여전히 그 사람들이 밉지만 조금은 달라졌으리라 생각하기로 했어. 우린 끊임없이 배우고, 깨우치는 인간이니까 성장을 믿기로 한 거지. 나는 선(善)함을 믿고 싶어.
있잖아, 케이 경기를 보다 보면 가끔 묘해지는 순간이 있어.
‘꿈’이라는 건 두루뭉술하여 실재하지 않는 것이 맞는데, 그게 명확히 보이는 1초의 찰나가 존재해. 그 찰나를 비롯해 점점 선명해지는 그들의 간절함은 내게 흥분과 동시에 공포감을 줘. 남의 꿈을 멋대로 응원하고, 재단하고, 타오르고, 식어버리고 이게 마치 나비효과를 불러오는 것 같아.
가령 잘 뛰고 있던 선수가 태클을 당해 넘어진 상태로 일어나지 못하고 들것에 실려 나간다던가, 이건 다른 스포츠 이야기지만 평소처럼 경기를 보다 흥분한 상태로 ‘아, 좀 빨리!’를 내뱉자마자 순식간에 차가 뒤집히고 불이 난 차에 갇힌 선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노라면 명치가 막힌 듯하고, 속은 체한 듯이 갑갑해져.
그리고 사람들은 저들을 향해 비난을 해. 이기는 게 당연한 것도 아닌데 욕을 하고, 물건을 던져. 그럼 난 그들의 표정을 봐.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단 말만 반복해. 그래서 아예 보지 않았어. 그건 나한테도 큰 상처였고, 나까지 좀먹는 것 같았거든. 바닥을 기는 수준의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도 역겨워 토악질이 났어.
그런데 이번에 카타르 월드컵을 했잖아. 이건 내 선택사항이 아니었어. 마치 내 앞에 아몬드 초콜릿이 있는 것과 같았거든. 그들의 간절함이 뚝, 뚝, 하고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모습을 보면 언제 외면했었냐는 듯이 심장박동이 빨라져.
맞아, 다시 보게 된 건 불가항력이었어.
좋아하던 선수가 언젠가 꼭 다시 축구팬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진짜 그렇게 됐어.
이 편지를 네가 본다면 아마 바보 같다고 말할 거 같네. 난 지나버린 시간만큼, 늦은 만큼 염원 그 비슷한 것들도 함께 담아 즐기려고 해. 일희일비하는 지금이 즐거워. 너와 함께했던 시간도 즐거웠는데 벌써 오래된 이야기가 됐네.
케이, 내가 했던 말 기억해? 각자 잘살자는 말.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내는 것. 그게 스포츠 같아. 응원하고, 응원받고, 열정으로 돌려주고, 그 열정에 또 자극받는 선순환의 관계 말이야. 내가 좋아하는 선수도 언젠간 기량이 떨어지고 지금과 같진 않겠지만 영원할 수 없어서 더 애틋하고 소중하다고 느껴져. 나는 이 모든 순간을 낭만이라고 생각해.
너의 낭만은 어때? 새로운 낭만을 찾았어?
다음엔 네 이야길 들려줘. 기다리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