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바깥에서.
내가 내 이야기를 관찰하기 시작했을 때
어느 날 문득, 나는 내 이야기를 밖에서 바라보는 나를 보았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내가 살아온 장면들이, 누군가가 쓴 문장처럼 보였다.
그 문장은 정리되어 있었고, 이유가 있었고,
결론을 향해 매끄럽게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야기 안에는 나의 진짜 감정이 없었다.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사건은 복잡하고, 감정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로 자신을 정리한다.
“그 일은 나를 성장시켰다.”
“그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런 문장들은 정신의 평형을 지켜준다.
삶이 설명될 수 있는 세계 안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지니까.
그러나 그 질서의 문법은
언제나 무언가를 지운다.
논리에 맞지 않는 감정,
이유가 없는 직관,
설명되지 않는 행동들.
그들은 이야기의 편집 과정에서 사라진다.
나는 그 지워진 조각들을 오랫동안 무시했다.
그건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이고, 비이성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삶을 진짜로 바꾼 순간들은
항상 그 ‘삭제된 장면들’ 속에 있었다.
설명할 수 없었던 결정들,
불합리하지만 멈출 수 없었던 충동들,
말로 정리되지 않았던 감정들.
그게 나를 이끌었다.
아무 근거 없이,
그러나 명확하게.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를 믿지 않기 시작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믿게 되었다.
감정이 생기고,
그 감정을 언어가 따라붙고,
그 언어가 의미를 조립하고,
그 의미가 나를 설득한다.
이 모든 과정을 나는 매일 본다.
하나의 의식이 ‘이해 가능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편집을 하는지.
그건 일종의 과학 실험 같다.
나는 내 인식을 해부하는 연구자처럼
내 사고가 움직이는 구조를 기록한다.
나는 여전히 이야기를 쓴다.
그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이야기의 문장 하나하나를
바깥에서 바라본다.
그 문장이 완벽해질수록
그 안에 빠져 있던 감정은 더 선명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서사 안에서 살고,
서사 밖에서 숨을 쉰다.
나는 이야기로 나를 설명하지만,
그 바깥에서야 비로소 나를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