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를 넘어 희망으로
*해당 글은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졌습니다.
어릴 적, 나는 늘 교실의 뒷자리에서 뒤처지는 아이였다.
칠판에 적힌 글씨는 눈앞에서 자꾸만 흐려졌고, 선생님의 목소리는 멀어져만 갔다.
친구들이 손을 번쩍 들며 대답할 때, 나는 이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종소리가 울려도 마음은 따라오지 못했고, 늘 다른 장면 속에 서 있었다.
아이의 귀에 가장 자주 꽂히던 말은 단순했다.
“왜 이렇게 산만하니?”
“조금만 더 집중해 봐"
그 말들은 마치 지우개처럼 내 존재를 지워내는 낙인 같았다.
나는 조금씩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잘못 만들어진 게 아닐까.”
그 감각은 교실을 넘어 영화관에서도 이어졌다.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을 때였다.
불 꺼진 극장, 사람들은 스크린에 몰입했고
친구들은 장면마다 웃고, 놀라고, 함께 속삭였다.
하지만 내 시선은 스크린에 머물지 않았다.
나는 몰래 이어폰을 꽂았다.
내겐 영화보다 음악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변은 하나의 세계에 빠져 있는데,
나는 다른 세계로 도망쳐야만 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나만 혼자 동떨어져 있다는 감각,
그 외로움은 차갑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음악이 흘러들어오는 순간,
그 고립은 이상하게도 따뜻한 울림으로 변했다.
음악은 나의 결핍을 알아주었고,
내 안에서 묻혀 있던 감정에 공명을 일으켰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속하지 못한 자리에 억지로 발을 들이는 대신,
나를 이해해 주는 진짜 울림에 귀 기울이는 것이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라는 것을.
세상은 거대한 무대 같았다.
사람들은 같은 속도로 걸었고, 비슷한 목소리로 대답했으며,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 안에 섞여 산다면 분명 편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늘 다른 박자를 탔고,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 시선을 두었다.
내 색은 흔히 볼 수 있는 빛깔이 아니었고, 그 차이는 언제나 눈에 띄었다.
그 때문에 나는 종종 고립되었고,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혼자라는 감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오류’라고 여겼다.
세상이 정한 코드 속에서 벗어난 채, 혼자 엉뚱한 곳에 서 있는 사람처럼.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내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
“너 힘들었겠다.”
단 한마디였다.
그 순간, 나는 숨이 막혔다.
아무도 몰라주던 결핍, 말하지 못했던 상처가 빛을 받아 드러난 것 같았다.
나는 알았다. 사람의 영혼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인정’ 속에서 만져진다는 것을.
한마디 따뜻한 말, 한 번의 고요한 눈빛이
오랜 세월을 버텨온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삶은 동시에 다른 진실도 알려주었다.
아무리 따뜻한 행동이라도, 그것이 전략처럼 보이는 순간
사람은 등을 돌린다는 것.
사랑이든 위로든, 그 뿌리가 진심이 아니면
순식간에 조종으로 변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배웠다.
진심은 언제나 티가 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바람처럼 스치고, 빛처럼 흘러야 한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공부는 깊어지고 경험은 쌓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알면 알수록 공허는 더 커졌다.
왜냐하면 각자의 결핍은 너무 고유해서
결국 누구도 완전히 대신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안의 공허를 채워줄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고,
진정으로 내 영혼을 공명해주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알게 되었다.
수십 명의 박수보다 단 한 사람의 깊은 공명이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바로 그 소수의 울림 덕분에
삶은 여전히 살아갈 만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감정은 단순히 개인의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 이론을 무너뜨리고,
완벽한 시스템마저 흔드는 근본적인 변수다.
아무리 정교한 계획도 감정 앞에서는 균열이 생긴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언어다.
나는 여전히 다른 리듬으로 살아간다.
다른 색을 품고, 다른 길을 걷는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결핍이고 동시에 나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나는 믿는다.
언젠가 이 다른 울림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공명을 만들어낼 거라고.
그리고 그날, 나는 알게 될 것이다.
잘못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방식으로 빛나기 위해 태어났음을.
“다른 리듬은 또 다른 음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