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의 시간] 새벽을 여는 소리

바다 곁에서 밤을 보냈을 때라면 더욱 그러했다.

by 오션뷰

밤새 몇 번이나 뒤척였는지 모른다. 저 멀리에서부터 힘겹게 걸어오던 녀석은 그렇게 닿을 듯 말 듯, 여러 번 망설이다 겨우 내게로 왔다. 어물쩡거림이 잔뜩 묻어난 시간의 겉을 계속해서 핥았다. 맹렬한 아픔이 혓바닥을 훑고 지나가면, 조금은 지쳐 그 기다림에 무심할 수 있었다. 오래도 걸렸다. 잠시나마 평온이 깃드는 것 같은, 착각이라 해도 그 순간 꿈이라는 단어를 잊을 수 있다면, 몽롱하게 눈이 부셔도 보고 싶은 얼굴 하나 만나면 그렇게나 즐거울 수 없는 그런 밤의 시간들. 뒤척이는 사이마다 찾아오는 시간에 대한 압박, 또 다가오는 날짜에 대한 두려움, 긴 여행의 시작과 끝의 사이에 선 외로움.


긴 밤이 될 줄 알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무색하게도 밤의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버렸다. 순식간에 우리의 시간은 새벽으로 당도하고, 녀석은 떠났다. 녀석의 옷자락 끄트머리를 애타게 잡고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녀석이 떠나고 남은 자리는 아직 따뜻했고, 그 온기를 매만지며 새벽의 시작을 기다렸다. 조용한 기다림이었다. 눈빛이 갇히고, 두 다리가 갇히고 나면 생각이 갇히곤 했다. 그것은 농도 없이 어두웠다. 그 어두움은 너무 진해서 매일같이 더욱 어두워지는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 무엇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의 기다림은 가끔은 숨이 턱 막히기도 했다. 차마 아무런 빛도 뚫고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은 때에 거짓말처럼 어둠이 걷히곤 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선명하게.



그렇게 늘 새벽은 조용하지만 힘 있게 나타났다. 그곳에서 새벽을 그저 흘려보내는 일은 뿌리 없는 하루와 같았다. 바다 곁에서 밤을 보냈을 때라면 더욱 그러했다. 파도의 소리는 밤이 다르고 새벽이 달랐다. 해변의 수많은 모래알들은 밤이 다르고 새벽이 달랐다. 파도가 해변의 모래를 적시고 지나간 위로 내리쬐는 달빛 또한 밤이 다르고 새벽이 달랐다. 그 모든 다름의 순간들은 참으로 빠르게 지나가버리곤 했다. 빠르게 사라져 버리는 그 아득한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보면, 자연스레 발걸음은 해변으로 향했다. 쪼리에는 지난밤의 모래들이 녹아내려 있었고, 머리 위로는 아직 축축한 어둠이 남아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삐그덕 거리며 어둠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새벽의 머리를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한 바람의 냄새가 코끝에 훅 끼쳤다. 몇 발자국을 걸어 당도한 곳에는 차가운 모래가 빼곡히 쌓여 있었고, 그 위로는 어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쪼리 위의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차가움이 어느덧 희미해져 가는 녀석의 흔적을 털어 보냈다. 새벽 공기를 들이켠 눈동자는 시린 지 여러 번 끔뻑거리다 이내 새벽과의 적절한 교감 온도를 찾아내었다. 저 멀리 별들은 촘촘했던 경계를 느슨하게 풀고 있었다. 그 사이로 얼핏 보라색이 스치기를 여러 차례. 사위가 조금씩 밝아지자, 구름이 눈 앞에 펼쳐졌다.



나와 일직선상으로 마주한 구름, 그리고 그 양 옆으로 고개를 쭈욱 돌려보자 계속해서 펼쳐져 있는 구름들. 무대에 조명이 하나씩 켜지 듯, 기다랗게 늘어져있는 구름마다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구름의 굴곡을 따라 새벽이 일렁이고 있었고, 그 사이마다 새벽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구름과 수평선의 아슬아슬한 경계의 깊이를 가늠하고 있을 때, 새벽을 여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낮잠 후 맞이하는 오후보다 더욱 생기가 넘치는 목소리들이었다.

그 목소리를 시작으로 새벽은 조금 더 자신을 환히 열어주었다. 보랏빛은 어느덧 구름 사이로 완벽히 스며들어버렸고, 대신 검붉은 강렬함이 주위를 뒤덮었다. 검붉다가 검은 끼가 많이 빠진 붉은 주홍빛이, 붉은 끼가 빠져버린 황금빛이. 그 황금빛이 나에게서 와르르 쏟아져 내렸고, 아 – 하고 소리를 내어보니 나의 목소리에서도 황금빛이 쏟아져 내려왔다. 내가 내뱉은 소리를 뒤따른 낮은 입김도 그 황금빛 옷을 입고 천연덕스럽게 웃어 보였다.

황금빛 파도들이 저 멀리서부터 멀지 않은 곳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모양새를 바라보았다. 어푸, 어푸, 오랜 기간 동안 하지 않았던 수영을 해내는 사람처럼 거친 숨소리를 내며 파도가 일렁였다. 파도가 내는 소리마다 거품이 들끓었다. 그 모습은 구름을 닮기 위한 몸부림 같기도, 구름에 닿기 위한 몸부림 같기도, 떠나는 새벽을 붙잡기 위한 몸부림 같기도 했다.

길을 떠날 준비를 마친 작은 배 한 척이 새벽을 여는 파도에 몸을 실었다. 그들은 파도를 따라 그대로 나아갔다. 그들의 목소리는 멀어지다가도 이내 바람에 실려 가까이 다가오곤 했다. 그들의 뒷모습은 수면을 타고 위아래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아주 조금씩 작아졌다. 작아지는 그들의 모습에는 여전히 밤의 잔여물이 조금 묻어있었다. 그들은 파도를 지나고, 또다시 파도를 지났다. 새벽 속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밤을 향해 다시 떠나려는 파도의 몸부림.



어느덧 주위의 모든 것들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밝아졌다. 새벽의 해변에는 또 다른 하루를 여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달리는 이,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이, 간 밤에 꾼 좋은 꿈에 대해 떠드는 이, 이미 앞서 간 배를 따라가려는 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이, 그리고 그런 이들을 바라보는 이까지. 어둠을 움켜잡았던 손을 펴자, 마지막 남은 그 작은 어둠마저도 파도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버렸다.

수평선을 따라 길게 좌우로 뻗어 있던 구름 사이마다 작은 틈이 벌어졌다. 어느덧 황금끼가 빠져버린 노오란 색이 그 구름의 작은 틈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새벽의 마지막을 슬퍼하듯이, 마치 더 이상 그 틈새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듯이, 마치 그 자리는 원래 노오란 색이었다는 듯이 그렇게. 새벽의 파도 위로 첫 배를 띄운 이들은 어느덧 손톱만큼 작아져 있었고, 그 뒤를 따르는 몇 척의 배들도 해변으로부터 꽤나 멀어져 있었다. 배의 꼬리에 실린 마지막 새벽의 꼬리가 내게 건넨 작은 인사가 파도를 타고 넘실거렸다. 그렇게 작은 해변은 아침을 맞을 준비를 마쳤고, 커다랗고 붉은 해는 바다와 구름 사이를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