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의 시간] 게 잡이 소년

다시 떠나려고 하는 마음마저 조용히 삼켜버리는 바다의 아침

by 오션뷰

아침의 푸르른 바다, 바다의 푸르른 아침.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동쪽에 자리한 잔지바(Zanzibar) 섬. 그 섬의 동쪽에 자리한 푸르른 아침. 아침의 끄트머리를 곧게 받은 해변의 한 귀퉁이, 그 귀퉁이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발. 눈부심을 마주하고 온몸으로 햇빛을 받는다.

옷소매에선 늘 구운 생선 냄새가 났고, 구불구불하고 짙은 머리카락을 자주 쓸어 넘기며, 계절을 가리지 않고 얼굴엔 늘 기름기가 있던 소년. 또래와 비슷한 키에 먹는 게 죄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비쩍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던 그 소년. 아침의 태양을 닮은 붉은 티셔츠를 즐겨 입고 나오던 소년은 아침마다 제 형을 쫓아 부지런히 움직인다.


바다와 땅 사이를 간지럽히기를 여러 번, 머무를 듯 떠날 듯 하기를 여러 번, 텅 빈 마음 들키지 않으려 갈대 같은 마음 반복하기를 여러 번. 바다가 수줍은 듯 길을 열어주면, 소년은 조심스레 바다가 내어준 길을 따라 걷는다. 발바닥이 아침을 밟고, 발가락이 아침에 잠기고, 발 등으로도 아침이 스며든다.

이내 그런 것은 없었다는 듯, 매정하게 새벽은 저 멀리 가 버린 뒤였다. 모든 기억을 삼켜버린 것처럼, 아니면 모든 기억을 그대로 두고 떠나버린 것처럼, 그것도 아니면 애초에 그런 것들은 없었다는 것처럼, 그렇게 매정하게 멀리 가 버린 뒤였다.

눈 앞의 바다는 아득하게 펼쳐졌고, 어느덧 바다의 끄트머리까지 닿기에는 너무나 멀었다. 모든 푸르렀던 것 위로는 반짝이는 구슬 여러 개가 맺히기 시작했고, 속을 훤히 드러내 보이자 모든 주변은 경계를 허물고 함께 뒤엉켜 들어갔다. 점점 바다는 조금씩 더 뒤로 밀려가며, 소년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애초에 바다는 땅을 품어본 적이 없다는 듯 그렇게.


2. 게 잡이 소년.JPG


아침의 태양은 너무나 강렬해 자주 눈을 감아야 했다. 소년은 얼마나 멀리 걸어갔을까? 그새 남겨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 표정들이,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저 끝에 남아있는 걸까? 닿을 듯 말 듯, 금방이라도 온기를 뒤집어쓴 채 내게 그 환한 미소 보여줄 것 같은 기억들이 바다의 살결에 스며들어 있었다. 게 잡이 소년이 가르고 걸어가는 그 사이마다 제 온도를 잃은 표정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웃음기를 띄어 보내 주었다. 푸석한 감정들은 여전히 그 주위를 맴돌며 이따금씩 소년에게 아는 체를 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그저 하루의 몫을 채우고 하루의 만족감을 바구니에 잔뜩 담기 바빴다.


이 섬으로 흘러 들어온 게 어디 저 소년뿐일까, 섬의 한 귀퉁이로 모여든 게 어디 저 소년의 바구니에 담긴 게들뿐일까, 섬의 해변을 비추는 가장 밝은 것이 어디 바다의 아침뿐일까. 어떤 바람을 타고, 어떤 파도를 타고, 어떤 계절을 타고 왔는지 모르게 여기서 만나는 모든 움직이는 것들. 단순해서 황홀한 풍경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는 건, 나조차도 섬의 작은 해변으로 꾸역꾸역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걸 조금 억누른 다음이었으리라.

마주하기에는 너무나 큰 동쪽의 바다, 그 바다 뒤로 숨어있는 알 수 없는 다가올 오후, 누군가의 이야기가 흩뿌려져 제법 배가 부른 아침의 바다. 다시 떠나려고 하는 마음마저 조용히 삼켜버리는 바다의 아침. 그렇게 늘 다시 바다 앞, 늘 다시 바다 곁, 늘 언제나 바다 품으로 돌아오게 되는 잔지바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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