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의 낡은 담요가 꾸던 꿈

계속해서 길을 잃었지만 계속해서 바라나시의 꿈 속이었다.

by 오션뷰

나의 첫 해외여행지는 인도 바라나시(Varanasi)였다. 대학을 일 년 반 다닌 후, 휴학 중이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받고, 비행기표를 샀다. 그러고 나니 10만 원가량이 남아있었다. 열흘 동안 하루에 만 원씩 쓰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바라나시 갠지스강 사진을 본지 정확히 일주일 뒤 떠났다.

여행 준비를 할 시간도 없었고,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턱대고 출발한 후 인천공항에 가서야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잠잘 곳 정도는 미리 정하고 가야겠지 싶어 공항 한편에 마련된 서점에서 인도 가이드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바라나시 페이지에서 숙소 항목을 찾아 저렴한 곳의 이름을 냉큼 적었다. 그 숙소의 바로 맞은편 식당 이름이 모나리자여서, 그 식당을 먼저 찾으면 되겠다는 다부진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거의 꼬박 하루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바라나시 공항으로 입국하는 몇 안 되는 외국인 중 하나가 되었다. 공항 직원이 건넨 “Enjoy India”로 나의 첫 해외여행이 시작되었다.


바라나시에서 느끼는 모든 것은 내게 처음이었다. 그것은 단지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사람들로부터 오는 감촉이 아니었다. 바람조차도 다르게 느껴졌고, 간판에 쓰인 모든 글자들은 숨겨져 있던 알 수 없는 나의 욕망을 꿈틀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마스떼,라고 인사하며 주고받는 눈빛은 매번 새로웠고, 하루에 세네 잔씩 마시던 차이 티는 마실 때마다 맛이 오묘하게 달랐다.




바라나시에서 열흘 동안 머물렀던 숙소도 많은 의미에서 처음이었다. 누군가 정해준 것이 아닌 나 스스로 정해서 잤던, 스스로 처음 써보는 화폐를 내고 잤던, 해외여행을 떠나 처음으로 잤던 숙소였던 것이다. 어두컴컴한 방 안, 삐그덕 거리는 싱글 침대 두 개와 더러운 창문, 마음에 들 리가 없는 화장실. 공항에서 이동 후, 다섯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모나리자’ 식당의 위치를 물어보고 찾아가니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여서 더 이상 다른 숙소를 찾아볼 여력이 없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인천공항에서 처음 마음먹은 대로 그 숙소에 짐을 풀었다. 내 물건을 여기저기에 늘어놓으면, 방의 더러운 것들이 내 물건 속으로 깊이 침투할 것만 같았다. 차마 베고 잘 수 없을 정도로 눅눅한 배게 위로는 머리 대신 발을 올려놓았다.


숙소의 전기는 자주 나가기 일쑤였다. 그때까지 험난한 태풍이 몰아칠 때 말고는 겪어본 적 없던 정전이 아주 쨍한 날, 그것도 밥 먹는 횟수보다도 자주 생기니 그것 또한 새로웠다. 화장실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건물의 복도인지, 다른 어느 비밀스러운 곳인지 모를 곳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그 창문을 통하여 누군가 샤워하는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곤 했는데, 정전이 되면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 한결 다행스러웠다.


사실 12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이유를 명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묵고 있는 숙소가 마피아 조직에 의해 운영된다고 믿었다. 건너편 모나리자 식당에서 들은 건지, 차이 티를 자주 마시던 가게에서 들은 건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아니면, 워낙 인도 여행에선 아무도 믿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에 그들을 마피아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마피아 조직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늘 숙소에서 발소리와 숨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고 걸으려 노력했다. 또한 열흘을 머물며 청소 한 번 요구하지 않았다. 일을 시킨다고 해코지를 하거나 숙박 요금을 말도 없이 더 내라고 할까 봐 무서웠다. 그때 내가 최고로 소중히 지니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선불로 지불한 숙박요금 영수증이었다.


쨍한 밖의 햇살은 한 가닥도 들어오지 않는 방, 흐릿한 전등 아래에서 작은 수첩에 그 날 만난 사람들, 먹은 것들, 길에서 배운 쉬운 인사말 몇 가지를 적곤 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온갖 감정들을 어떻게 해서든 풀어 적어보려 애썼다. 일기를 다 쓰고 난 후에는 삐그덕 거리는 침대 위에 누워 낡은 담요를 덮고는 하루 내 들이마신 온갖 새로운 것들을 밤새 소화시키느라 바빴다.




그렇게 숙소는 내가 바라나시에서 유일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온갖 낯설고 신비로운 것들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고 난 후 숙소로 돌아오면, 내 물건들이 방에 적응을 하여 함께 퀴퀴하게 섞여 들어간 냄새를 맡고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여기서 어떻게 바지를 내리고 볼 일을 보나 싶었던 화장실은 바라나시에서 내게 최고로 편한 화장실이 되어있었다. 더러운 창문으로 좁은 골목을 내려다보는 대신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꿈을 꾸는 듯한 하루하루를 마감하고, 낡은 담요 속으로 몸을 누이면 매일마다 꿈을 꾸었다. 그곳에서 꾼 꿈들은 나를 다른 어느 곳으로도 데려가지 않았다. 그저 꿈에서도 조금 더 바라나시를 누빌 수 있도록, 눈부신 광경을 계속해서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낮 동안 온몸에 머금었던 바라나시의 뜨거운 햇빛이 꿈꾸는 담요 속으로 희미하게 스며들어갔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나는 그 얇은 한 줄기 낮의 햇빛을 잡고 컴컴한 밤의 골목 속을 계속해서 걸었다.

갠지스강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희미했던 빛은 점점 진해져 갔다. 밤의 강물에 빛을 비추면, 갠지스강은 그 안에 감춰진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곤 했다. 한낮에 빛나는 태양 아래의 가트(Ghat)에 누워있을 때처럼, 쏟아지는 달빛 아래의 가트에서 온갖 여유로움을 다 부렸다. 한낮에 아무 하고나 별 거 아닌 이야기를 세상 가장 중요한 이야기처럼 나누었듯이, 한밤에도 조곤조곤 갠지스강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마치 세상 가장 중요한 것처럼 들었다.

여러 차례 길을 헤매다, 신비로운 향기를 쫓아 가보기도 했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다면 이 곳에서 나눠질 수도 있겠다 싶은 광경에 넋을 놓아 보기도 했다. 계속해서 길을 잃었지만 계속해서 바라나시의 꿈 속이었다. 낡은 담요도, 삐걱거리는 침대도, 곰팡이가 잔뜩 핀 방의 벽들도 나를 더 이상 그 어떤 곳으로도 데려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