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예찬

by 오션뷰


오랜만에 피란을 다시 찾았다. 4년 만이었다. 피란은 슬로베니아의 왼쪽 하단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스위스 로잔에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약 800km에 이르는 거리이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최종 목적지인 피란은 집을 떠난 다음 날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피란은 굉장히 작은 마을이어서 마을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버스는 무료 셔틀버스로 운행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서서히 피란의 중심부로 들어가는데, 가슴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오래전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우리 둘은 너무 사랑하는데 환경이 따라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던 그런 애인.

아는 길을 지나가고, 4년 전에 파란색 카디건을 샀던 가게를 지나가고, 정박된 보트들의 옆을 지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피란의 광장이 나올 차례였다. 내 심장은 더욱 쿵쾅거렸다.


버스는 광장 앞에서 멈췄고, 승객들은 각자의 짐을 들고 우르르 내렸다.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광장이 비로소 눈앞에 있었다. 여전한 모습이었다. 계절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세월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여전히 야무진 모습이었다. 깨끗한 광장으로 햇빛이 잔뜩 맺혀 있었다. 연한 파스텔 톤의 건물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광장을 중심으로 한쪽은 바다와 가깝고, 한쪽은 좁은 골목길들의 시작점이었다. 우리의 숙소는 바로 그 몇 갈래의 골목길 중 하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스튜디오 형태의 숙소의 창문 중 하나는 광장을 향해 나 있었다. 바로 옆의 건물과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창문 앞에서 몸의 각도를 틀어야 광장을 내다볼 수 있었다. 카페의 테라스에서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 그 뒤로 보이는 광장, 그리고 그 위로 파란 피란의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피란의 어귀에 머물며 광장의 숨결을 계속해서 느꼈다. 그 광장은 파리의 방돔 광장처럼 럭셔리하지도 않고, 브뤼셀의 그랑플라스처럼 야경이 화려하지도 않고,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처럼 웅장하지도 않다.

피란의 광장은 참 소박하다. 피란의 소박한 모습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렇다고 초라한 것은 결코 아니다. 멋 부리지 않았지만 진솔한 맛이 느껴진다. 활기차면서도 시끄럽지 않고, 단순하지만 눈 둘 곳이 많다. 광장의 중심에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주세페 타르티니(Giuseppe Tartini)의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의 이름을 본떠서 광장의 이름도 타르티니 광장이다.



나는 피란에서 세 밤을 보냈다. 매일매일 다른 곳에서 일몰을 보았고, 매일매일 바다를 보았고, 매일매일 작은 골목들을 걸었다.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없던 피란에서의 가을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사랑한 순간은 숙소 바로 아래에 있는 카페의 테라스에서 아침 식사를 할 때였다.

베리류의 과일이 올려진 3단 팬케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듬뿍 올려진 소스를 찍어 먹는 일, 호호 불며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시는 일, 광장을 가로질러 어딘가로 향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일, 단체 여행을 온 오스트리아 학생들의 독일어 억양을 듣는 일, 뒷자리에 앉은 목소리가 많이 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엿듣는 일, 주세페 타르티니의 청동상 앞에서 셀카를 찍는 이들의 표정을 살피는 일.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4년 전 피란을 찾았을 때에는 날씨가 상당히 흐렸다. 겨울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광장에도 안개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때 주세페 트리니티의 청동상 위로 연말 분위기를 내기 위한 바이올린 모양의 색깔 전구들이 달려있었다. 그런데 밤까지 계속된 안개 때문에 그 모습조차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피란을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맑은 하늘이 펼쳐졌고, 나는 그제야 피란의 진가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하루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꼭 다시 피란을 가야 할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머무는 내내 맑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는 기모 후드를 입으면 딱 좋고, 낮에는 햇빛에서는 반팔, 그늘에서는 셔츠 하나 더 챙겨 입으면 딱 알맞은 여행하기 참 좋은 온도였다. 다시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피란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어김없이 숙소 아래의 카페에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그런데 내가 꼭 다시 먹고 싶던 팬케이크가 안된다고 했다. 나는 실망스러웠지만, 이 참에 다른 메뉴도 먹어봐야지 하며 에그 베네딕트를 주문했다. 까르보나라 한 접시를 끝내는 게 쉽지 않을 만큼 느끼한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나에게, 에그 베네딕트는 아침 식사로 상당히 어려웠다. 카푸치노를 먹으면서도 에스프레소를 한 잔 더 마셔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마지막 날 아침에 팬케이크를 먹지 못한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난 다시 피란에 가야 할 이유를 찾아내었다. 꼭 그 카페에서 팬케이크에 카푸치노를 마시기 위해서.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무료 셔틀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는데 왜 그리도 마음이 헛헛한지, 숙소에 두고 온 것도 없으면서 다시 숙소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버스는 마을을 점점 빠져나갔다. 주차장 앞에 도착하여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하차했다. 주차장 앞에서 피란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표지판을 보았다. 표지판 속 피란의 모습이 아름다워 눈물이 고였다. 나는 환영한다는 표지판에 대고 눈물 고인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슬로베니아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면서도 아름다운 광장의 모습을 계속해서 음미했다. 그렇게 열심히 피란을 즐기고 왔음에도 애틋한 감정이 맴돌았다. 벌써부터 그리워진 것이다. 나는 또 피란으로 향할 궁리를 할 것이다. 이기적 일지 모르지만 그 모습 그대로 남아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