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에 있는 집

by 오션뷰


카사블랑카(Casablanca)로 향했다. 카사블랑카를 떠난 지 4일 만이었다.


4일 전 카사블랑카에 머물며 친구가 되었던 매지드, 그와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매지드를 통하여 가족들에게 연락하여,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나는 매지드의 가족들에게 줄 선물이 가방 안에 잘 들어있는지 기차 안에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어서 와요, 잘 왔어요!”

매지드의 가족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매지드의 큰 누나 수아드가 나를 꼭 안아주었다. 고작 하루를 봤을 뿐인데도 헤어지며 눈물까지 보였던 그녀와 나였다. 초등학생인 막내는 마치 오랜만에 가까운 친척을 보는 것처럼 좋아했다. 그들은 늦은 시간임에도 부엌에 있는 온갖 과일을 내어 주었다.


“모로코 북쪽을 여행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실라(Asilah)까지 갔다가 다시 방향을 남쪽으로 틀었어요. 이렇게 불쑥 신세를 지게 되어서 죄송하고 고마워요.”

“무슨 소리예요! 카사블랑카에 있는 집이라고 생각하라고 했잖아요, 너무 잘 왔어요.”


나는 가방에서 가족들을 주려고 산 선물을 꺼냈다. 포장지의 부스럭 소리가 요란했다. 매지드의 세 자매와 어머니를 위한 팔찌 네 개였다. 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디자인에 플라스틱 비즈로 만들어진 팔찌. 그런데도 그들은 마치 내가 금팔찌라도 선물한 것처럼 고마워했다. 막내는 방으로 잽싸게 뛰어다녀 오더니 내 손목에도 팔찌를 하나 끼워주었다. 카사블랑카의 초등학생들에게 유행하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손목을 흔들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나는 매지드의 가족들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 세 자매 그리고 매지드. 이렇게 그의 가족은 여섯 명이다. 그들의 집은 두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실과 응접실 등 공용 공간이 네 개, 부엌 하나, 무슬림 가족답게 기도 공간도 하나 있었다. 화장실은 층마다 하나씩 있었고, 침실은 총 세 개였다. 하나는 부모님이, 하나는 매지드가 그리고 나머지 방 하나를 세 자매가 함께 쓰고 있었다.



나는 짐을 풀고 칫솔과 세안제를 챙겨서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크게 당황했다. 화장실은 기도 공간보다도 작았다. 반 평도 채 되지 않는 크기였다. 양변기도, 세면대도, 샤워기도 없었다. 대신 양옆으로 발판이 있는 화변기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무릎 높이에서 빼꼼히 나온 두 개의 수도꼭지와 그 아래 커다란 양동이. 물이 어느 정도 채워진 그 양동이 안에는 작은 바가지가 둥둥 떠 있었다.


나는 칫솔과 세안제를 그대로 손에 쥐고 거실로 갔다. 수아드가 난처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그녀에게 혹시 샤워할 수 있는 화장실이 따로 있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알겠다는 표정으로 내 손을 잡은 채 나를 다시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녀는 화장실 안의 것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가리켰다. 그녀의 손짓은 화변기와 발판을 지나 수도꼭지, 큰 양동이와 작은 바가지 그리고 다시 화변기로 이어졌다. 그녀는 바가지를 이용하여 직접 샤워를 하는 시늉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화변기의 구멍을 가리키며 ‘노 프라블럼’이라 했다. 나는 알겠다고 그녀를 따라 ‘노 프라블럼’이라 답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비좁은 화장실에 문을 닫고 들어가 있으니 조금은 막막했다. 어디에 서서 샤워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화변기의 발판 말고는 따로 설 곳이 없었다. 나는 발판 위에 어색하게 자리를 잡았다. 발이 편안하게 자리 잡지 못하니 몸은 엉거주춤했고, 허벅지에 힘이 잔뜩 들어가 마치 벌이라도 받는 자세였다. 허리를 숙여 머리를 감을 때에는 당시 유독 길었던 머리가 화변기 구멍으로 쓸려갈 것만 같아서 어설픈 깨금발을 하기도 했다.


수도꼭지에서는 찬물과 뜨거운 물이 적당한 비율로 쏟아졌다. 양동이의 물은 천천히 채워지고 재빨리 비워졌다. 머리를 감고, 양치하고, 샤워하느라 쓴 모든 물이 화변기 아래로 열심히 사라졌다. 그녀의 말대로 배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샤워를 겨우 마친 후 몸의 물기를 털어내고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분홍색 테이프로 테두리를 마감한 거울에 습기가 잔뜩 차 있었다. 수건으로 쓱 문질렀다. 그 안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방금 샤워를 끝낸 것 치고는 상당히 떼꾼해 보였다. 괜히 한 번 더 거울을 쓱 문질렀다.


“화장실이 많이 불편하죠?”

수아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답 대신 미소로 답하자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난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함맘(hammam: 터키식 공중목욕탕)에 가요. 여러 명이 쓰는 곳이긴 해도, 집 화장실에서 씻는 것보단 훨씬 편하니까.” 그녀가 수줍게 웃었다.


그녀는 나를 세 자매의 방으로 데려갔다. 방 안의 가구는 더블 사이즈 침대 하나와 옷장이 전부였다. 책상도 없었고, 화장대도 없었다. 그녀들의 방은 둘이서 써도 한참 부족해 보였다.

우리는 완벽한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었지만, 친밀함을 나누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들에게 내가 모로코 여행 중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고, 그녀들은 아는 곳이 나오면 반가워했다. 우리는 다음날 계획도 함께 세웠다. 함께 시내로 나가 시장 구경도 하고, 카페도 가기로 했다. 우린 함께 할 내일을 이야기하며 들뜬 마음을 나누었다.

어느덧 눈이 감기는 막내가 익숙한 듯 바닥에 요를 깔았다. 그나마 있던 발 디딜 틈조차 없어졌다. 나는 잘 자라는 인사를 남긴 채, 침대와 요사이를 까치발로 걸어 나왔다. 그녀들의 ‘굿나잇’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분 좋게 따라왔다.


나는 매지드가 내어준 방으로 갔다. 그는 자신의 침대를 내어주고 거실 소파에서 이미 잠들어 있었다. 나는 방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누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떨어질 것 같이 작은 침대였지만 세월에 무르익은 매트리스가 나를 안정감 있게 잡아주었다.


세 자매가 잠들기 전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옅은 빗소리를 듣는 것처럼 편안했다. 샤워할 때 발바닥에 무게를 완벽히 내려놓지 못했던 까닭에 허벅지가 살짝 저린 것도 같았다. 누운 채로 허벅지를 조금 주무르다 수아드의 말이 생각났다. 카사블랑카에 있는 집. 나는 그 말을 천천히 내뱉어 소리로 만들어 내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매지드의 코 고는 소리와 작은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마저도 정겨웠다.

카사블랑카에 있는 집이 틀림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광장 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