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부모는 부모다 라는 말이 참 웃겨

2021년 11월 25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가족이 있어.

by 맹무

to.해나에게


해나, 안녕 오랜만이야. 뭐 오랜만이라고 할 것도 없나? 그래도 예전보다는 편지를 자주 하는 것 같아.

10대 20대를 생각하면 삶이 참 힘들고 고단했어. 아, 그러고 보니 지금도 20 대구나.

다행인 건, 남편을 만나고 나서 소소한 것들의 행복을 알게 됐다는 거겠지만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아픔이었어.

“아픔이라니?” 하고 묻는다면 이때까지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왔던 지난날의 내가 눈에 밟혀서 일거야.

차라리 이 행복을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바보 같은 생각은 항상 들더라고. 그냥 어디를 여행 가면서 얻는 행복이라던가, 화장실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편안함이라던가, 아니면 주말에 외식을 한 다던가… 나는 사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여행은 가까운 곳을 걸어도 여행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고, 엄청 거창한 곳을 가야지만 여행인 줄 알았어. 그런데 그냥 다른 지역을 간다거나 가까운 거리를 가서 꽃구경을 하더라도 여행이고 휴식이 될 수 있더라.

남편은 걷는 걸 정말 좋아해서 코로나 때문에 가급적 외출을 자제했을 때 엄청 힘들어했어. 나는 그렇게 힘들 진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내가 밖을 나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아빠 때문에 엄마도 내가 집에만 있길 바라셨거든. 아무래도 내가 놀다 들어오면 엄마랑 아빠가 다퉜었나 봐. 그러다 보니 아주 어렸을 때는 친구 만나서 논다고 밖을 종종 나갔었는데 점점 커가면서 밖을 나갔다 오는 게 싫어지더라. 밖을 나가는 건 좋은데 항상 뒤끝이 좋지 않았으니까. 아빠는 항상 화가 나 있었으니까.

아, 그냥 아빠 화를 돋우지 않으려면 나는 집에서 얌전하게 있는 방법밖에는 없었고, 그게 나중에 큰 화를 불러일으킬지 몰랐어. 이때까지 나는 아빠의 영향으로 참는 것 밖에 배우지 못했고 견디는 방법밖에는 없는 줄 알았던 게 가장 큰 화근이었다고 생각해.

그러다 보니 밖을 나가더라도 무슨 꽃을 볼 시간이 있니, 천천히 걸어가면서 풍경을 볼 시간이 있니 시간이 똑딱똑딱 지나갈 때마다 아빠가 오늘은 얼마나 화가 나 있을까를 생각하기에 정신이 없었지.

20살이 되어도 내 통금시간은 8시였던 걸로 기억해. 그게 정말 너무 힘들었어. 다른 친구들은 같이 술도 먹고, 놀면서 우정도 다지고 그러는 데 나는 친구들과 놀려면 아빠와 한바탕 할 각오를 어느 정도 하고 놀았어야 했으니.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짠해. 새내기 때 알바를 하면서 근근이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교재도 사야 했고, 친구들이랑 놀아야 했고, 밥도 해결해야 했고, 교통비와 아빠 담배값과 술값을 지불해야 했으니 얼마나 쪼개면서 살았는지 몰라. 하도 돈은 없고 그러다 보니까 나는 20살 때 사고 싶은 옷도 맘대로 펑펑 사보지도 못했어. 차라리 옷을 사느니 돈을 좀 더 아껴서 친구들이랑 노는 데 써야 했거든. 친구들한테 없는 티 내고 싶지 않았어.

일주일에 5만 원으로 생활했는데 그러다 보니 밥은 항상 라면이었어. 학식은 3500원이었는데 그 돈마저 아깝지 뭐니. 컵라면이 질려도 먹을 수밖에 없었어.

그냥 아빠를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아. 그래도 우리 아빠라고 생각하면서 아빠가 맨날 술 사 와라 담배 사 와라 했을 때 군말 없이 내 돈으로 사다가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돈이 계속 펑크가 나길래 이유를 찾아보니 내 일주일 5만 원의 용돈을 아빠가 절반은 가져가고 있더라고. 그래서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한참 뒤에 들고 나서는 돈을 받긴 했는데, 처음에는 아빠 술, 담배값으로 돈이 그만큼이나 빠져나가는지 몰랐어. 내가 어디서 잘못 쓰고 있다고 생각했어서 그래서 자꾸 내 식비를 줄이고 교통비를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안 되더라고. 정말 웃기지.

그나저나 다른 집 아빠랑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우리 반에서 어떤 여자애가 있었는데 걔가 아빠랑 전화 통화하고 나서 친구들한테 했던 말이 아직도 인상 깊어.

아빠가 너무 화내길래 자기가 돈을 흥청망청 써서 화가 난 줄 알았는데, 네가 그렇게 옷 사는 데 돈을 많이 써버리면 우리 딸이 제대로 된 밥도 못 먹고 대충 때울까 봐 그게 너무 걱정돼서 말을 거칠게 했다며 미안하다고 하셨대. 그 말을 듣고 좀 충격을 받았어.

우리 아빠는 내가 돈이 부족해서 맨날 컵라면을 먹는다는 것도, 내가 뭘 먹고 다니고 어떤 친구를 만나는지, 내 나이도 몇 살인지도 잘 모를 텐데 저런 부모도 있구나 하는 사실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눈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좀 믿기지가 않았어. 저런 가정이 있다는 게.

우리 아빠는 나한테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과, 아빠가 없으니 내 삶이 더 활력이 생겼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어. 부모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프고 나는 아빠와 잘하고 싶어도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었는데, 어떤 타인은 그걸 단숨에 해 나갈 수 있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날 너무 공허하게 만들어.

차라리 이런 사실을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동화책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라고 생각했던 게 더 나았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난 항상 우물 안 개구리를 생각해. 어떤 개구리가 있는데 아빠한테 항상 폭언을 듣고 사는 거지.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우물 밖으로 올라가게 된 거야. 그런데 우물 밖 세상은 너무 따사로웠어. 햇빛이 노랗게 비치고 꽃들이 살랑거렸고 개구리들끼리 막 음악도 연주하고 즐겁게 개굴개굴 하고 우는 모습을 본 순간 개구리는 우물을 떠날 수 있었을까? 우물 밖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았을까? 밖은 위험하다고. 그 모든 게 꾸며진 것이고, 세상은 따뜻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개구리는 분명히 저기에 무언가가 있다며 의심했을 거야. 평생에 걸친 학습된 생각이 뒤 흔들리는 경험은 자신의 모든 삶을 부정하는 게 되어버리니까.

분명히 그 개구리는 다시 우물 안으로 들어가서 아빠의 폭언을 듣고 살아갔을 거고. 아빠는 그 개구리한테 “그러길래 왜 밖을 나가서 요란이냐!”라고 했겠지.

개구리는 아빠의 분노를 정통으로 받아들이면서 이게 맞다고, 이런 삶이 원래 내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거기에 계속 있었을 거야. 이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건, 폭력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그래도 부모잖니.” “아무리 그래도 부모는 부모다”라는 말들은 너무 폭력적인 것 같아. 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으면서 괜히 죄책감만 들게 만들고, 한 사람의 용기 낸 목소리를 죽여버리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편지가 너무 길어졌네. 슬슬 배가 고프다. 아무래도 아침을 먹어야 할 것 같아.

그러면 다음에 또 봐! 오늘도 내 편지를 끝까지 읽어줘서 고마워. 너도 아침 잘 챙겨 먹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 줘서 고마워. 우리 40대 50대가 되면 꼭 같이 여행 가자! 사랑해.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너의 친구 맹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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