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읽고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은 2021년 아침달에서 출간한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산문집이다.
저자가 2013년부터 프랑스와 한국에서 경험한 예술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사라지는 것들에 관한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그리고 2025년 10월 18일. 섬북동 5인이 만나 책의 난해함을 토로하면서도 ‘책에 대한 감상’과 함께 ‘공연예술의 매력’과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려는 방식'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진행, 기록 : 주이
사진: 매옥
참여 : 효진, 승은, 매옥, 유정, 주이
발제책을 고민하던 어느 날, 트위터 추천탭에 이 책이 흘러 들어왔고, ‘이거다’ 싶었다. 섬북동 사람들 중에 공연예술을 싫어하는 사람 못 봤으니까. 그리고 캡쳐된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책의 머리말 부분이었던 것 같다. 발제책으로 먼저 통보한 후 읽기 시작했는데, 얇지만 쉬이 읽히지 않아 다 읽는 데 2주는 걸렸다. 다들 완독은 했는지, 또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하다.
효진 : 마침 알고 있던 책이고 장바구니에 담겨있던 책이라 사서 읽고 있는 중이다. 비극의 기원까지 읽었는데 워낙 공연예술을 좋아하니까 여러모로 공감하며 읽었다. 깊이가 있어 좋았고, 저자가 나와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있다고 느껴졌다. 좀 더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읽고 있다.
승은 : 책이 얇아 만만하게 봤는데, 속도가 안 나 하루 20페이지 정도씩 읽게 되더라. 아직 <장끌로드 아저씨>와 <춤을 나눠드립니다>부분이 남았다. ‘나랑 맞는 책인가?’ 계속 의문이 들었지만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읽으려 한다. 좋은 책이고, 글이고, 예술가라 생각한다.
매옥 : 좋아만 하고 싶은데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의 문장, 이야기, 삶 모두 좋았다. 유학을 꿈 꿨던 입장에서 작가와 비슷한 부분도 많았고, 좋은 문장이 많아 필사도 하고 소장하고 싶어 주문도 했다.
유정 : 완독하는데 일주일 걸렸다.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았는데 문장은 취향이 아니다. 밀도가 높은 건 맞지만 독자에게 너무 큰 에너지를 쏟게 한다. 불어 같기도 하다. 어떤 부분은 너무 싫은데 어떤 부분은 너무 좋았다. 작가가 본업인 공연비평은 잘 한다고 느꼈다.
특히 흥미로웠던 챕터가 있었냐는 질문이 이어졌고 유정은 머리말이라 할 수 있는 <뒤 늦게 쓰인 비평>이 제일 좋았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이에 동의하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말을 제외하고는 다들 다른 취향들을 내놓았다.
효진 : <김동현 선생님께> 챕터가 기억에 남는다. 편지 쓰기 힘든 시대여서 더 마음에 와 닿고 인상적이었다. 상대를 향한 진심이 느껴졌다. <공간에서>를 읽으면서는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옥 : 사실 앞의 세 챕터는 그냥 그랬는데 <관객학교>부터 꽂혀서 끝까지 잘 읽었다. 특히 <관객학교>, <테러와 극장>에서 작가의 통찰이 느껴졌다.
유정 : <솔렌>, <장 끌로드 아저씨>같은 인물이 나오는 챕터가 재밌었다.
주이 : 유정과 같다. 챕터로 나누기보단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솔렌>에서 춤을 추며 관객들도 같이 울렸던 이란인 이야기, 좋아하는 예술을 나누고 싶어 선한 오지랖을 부린 <장 끌로드 아저씨>, 그리고 책 뒷부분에 취미로 치는 피아노로 당당히 예술을 한다고 답한 할머니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책 제목이 직관적이지 않아 책을 다 읽고도 내가 생각한 게 맞을까 궁금해져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의 의미를 각자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찾아봤던 작가의 인터뷰는 대답을 모두 들은 뒤 공유하겠다.
승은 : 책 제목부터가 난해한 책에 대한 스포였던 거다.
매옥 : 난 이렇게 해석했다. 우리에겐 침묵이라는 공통의 언어가 있다. 우리는 침묵으로 공감할 수 있다.
유정 : 말을 안 해도 우리는 다 통했다고 작가가 말하는 방식이 단정적으로 느껴진다.
매옥 : 내가 작가 입장에서 해명을 해 보겠다. 그는 시종일관 공연비평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모두가 맞다고 한다. 책 뒷부분에서 작가가 창작자 앞에서 당신의 공연을 모두 이해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가 좋았다. 그 자체가 영감이 됐다.
효진 : 관객입장으로 해석하자면 공연을 보며 이런 순간을 많이 경험했다. 어떤 장면에 다같이 숨을 참고 커다란 느낌표를 띄우는 순간을 경험했다.
주이 : 작가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같은 죽음, 아픔을 목도한 사람이라 정의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의 말하지 않아도 공유되는 아픔을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고나서 발제를 준비하며 찾아본 작가의 인터뷰에서 마침 이에 대한 답을 발견했다.
[아침달 인터뷰]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작가 中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제목이 된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참 묘하고 매력적이라 생각했어요. 어느 나라의 언어가 모국어인 게 아니라 침묵이 모국어라니. 소리가 없는, 그러나 분명히 있는 그것이 모국어라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처음 그 문구를 떠올렸던 건 정말 단순한 이유에서였어요. 외국어를 쓰면서 살다 보면, 외국어도 모국어도 제대로 못 하게 되는 상태가 오잖아요. 외국어가 힘겨우니 어딘가 기대고 싶은데, 모국어도 그 역할을 못 해주는 거예요. 그때 정말로 기댈 수 있는 곳은 침묵뿐이라는 생각이, 그게 진짜 모국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란 표현을 떠올렸을 때부터 언젠가 책 제목으로 하고 싶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그저 욕심이었죠. 쓰려던 책의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거든요. 그때는 단순히, 지나가버리는 것들에 대해, 훗날 독자와 더 가까워졌을 때 쓰겠다는 콘셉트 정도만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본격적으로 글을 쓰다 보니 침묵이라는 주제가 발화될 수 없는 고통들과 깊이 연관되기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쓰면서 의미가 발생한 거지요.
유정 : 우리 다 다채롭게 오답을 냈다.
주이 : 작가를 본받아 우리도 온전히 이해했다고 당당하게 우기면 된다.
작가는 공연예술을 ‘발생과 동시에 소멸하는 예술’이라 정의했다. 공연을 포함하여 여러분은 삶에서 지나간 경험이나 기억들을 어떤 방식으로 붙잡거나 다루고 있나.
유정 : 글을 쓴다. 블로그를 운영하면 검색도 쉽고 아카이브가 잘 되어 좋다.
승은 : 지나가는 게 싫어서 기록을 하고 싶은데 다시 잘 안 보게 되더라. 되새기지 않는다. 너무 많은 게 잊혀 져서 아쉬운 마음은 든다.
효진 : 공연을 미친듯이 보는 이유가 이거다. 강박적으로 프로그램북도 사 모은다. 미련이 많은 타입이라 여행도 갔던 곳을 또 가는 걸 좋아한다.
주이 : 순간에 집중한다. 콘서트를 관람할 때에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기보단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순간을 즐기는 걸 우선시한다. 지나가면 많은 게 잊혀지긴 하지만 체화되는 부분도 있다고 믿는다.
책에 나오는 장끌로드 아저씨는 오페라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해 선한 오지랖을 보인 인물이다. 그처럼 특정 영역이나 취향의 세계를 열어 주고 넓혀준 존재가 있었나.
유정 : 집에서 엄마가 클래식을 자주 틀어 놓곤 하셨다.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어려서부터 다녔는데 아빠가 가이드 역할을 하셨다. 부모님이 문화, 예술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을 쌓아주었다고 생각한다. 다 커서는 지인들 영향으로 해외여행, 공연 등에 취미를 갖게 되었다.
효진 : 첫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간 장기여행 중 암스테르담에서 장끌로드 아저씨 같은 분을 만났다. 본인이 사랑하는 도시를 소개해주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암스테르담의 건축과 문화. 관광지가 아닌 골목골목을 안내해 주었다. 뮤지컬은 동방신기 시아준수 덕질을 하다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는데 시아준수는 탈덕했지만 뮤지컬 덕질은 여전히 뜨겁게 하고 있다. 뮤지컬을 통해 확장된 취향의 영역도 많다.
주이 : 나 역시 초딩 때부터 ‘태지오빠’를 좋아해서 서태지 콘서트를 많이 다녔는데 게스트로 나온 여러 인디밴드와 해외밴드의 공연을 접하게 됐다. 그 영향으로 어느 순간부터 다양한 뮤지션의 공연에 제 발로 찾아가게 되었다. 책의 세계를 열어준 이는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이다. 책 많이 읽는 학생을 좋아하는 선생님께 예쁨 받고 싶어 책을 정말 많이 읽었고 그때부터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매옥 : 오픈 마인드라 낯선 환경이나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대학에서 아르헨티나 교포 친구와 친했는데 그 영향도 많이 받은 것 같다. 해외 여행에서 선의를 베푸는 현지인들을 많이 만났다. 하우스 서핑을 하기도 했고, 무료로 한 시간씩 외국어 과외를 받은 경험도 있다. 책은 여기 섬북동을 통해 넓혔고 또 효진을 통해 여러 공연을 보게 됐다.
승은 : 인디영화, 일본문화 등등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취향을 넓혔다. 전 회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니 여행, 와인 등 회사 복지를 통해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많았다.
공연예술 중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다면 그 장르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보고 너무 좋아서 소개해 주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말해달라. 책에 나온 작품 중 보고 싶은 작품을 이야기해 줘도 좋다.
주이 : 나부터 얘기해 보자면 콘서트 관람을 가장 좋아한다. 책 131p에 잠깐 언급되는데 ‘음악이라는 걸 시공을 포함해 모든 감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음악과 어울리는 조명과, 연출, 음원과는 다른 애드립을 듣는 게 즐겁다. 관객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환호하든 춤을 추든 같이 즐길 수 있으니까. 가장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아티스트와 관객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연예술이라 생각한다.
효진 : 뮤지컬 덕후지만 요즘엔 연극도 많이 본다. 스토리나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가깝게 보는 게 좋다. 그들의 표현력에 봐도 봐도 감탄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언더스터디> 등 무대 뒤편의 이야기를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
승은 : 다 좋아하는데 많이 접해보진 못했다. 스스로 찾아서 보기보단 주변에서 보자고 하면 보는 편이다. 취향을 따지자면 연극보다 뮤지컬이다. 기본적으로 음악이 가미되는 걸 좋아해서 영화도 뮤지컬 영화를 좋아한다. 대학교 다닐 때 남경읍 교수의 <뮤지컬의 이해>라는 수업이 너무 좋았다. 책을 보며 궁금했던 작품은 테드창의 <내 인생의 이야기>다.
매옥 : 책에서 뮤지컬에 불호를 나타내는 사람들의 이유에 공감했다. 대사를 갑자기 노래로 부르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다. 뮤지컬보단 연극을 좋아하고, 예상 외로 전개되는 극을 좋아한다.
유정 : 책에서 소개된 공연 중 <타우버바흐>가 궁금하다.
책에서 공감했던, 좋았던,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공유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주이 : 작품의 존재는 그것이 발생하고 있는 오직 그 시간 속에서만 유효하다. 관객은 사라짐의 목격자가 되어 영영 혼자만 알아볼 흐릿한 여운을 안고 극장을 나선다. 더 이상 존재가 없으므로 점차 기억은 희미해진다. 그중 어떤 기억은 되바꿀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몸에 기입된다.
<꽁띠뉴에 中>
유정 : 신기하게도, 소리가 어떻게 울리고 또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감각하는 일은 그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를 감각하는 일과 닿아 있었다. 왜냐하면 소리가 공간의 질곡을 따라, 공간을 쓰다듬으면서 떠나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세계의 어떠함을, 우리들 몸으로부터 나온 잔향의 스러짐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공간에서 中>
효진 : 내일은 창경궁에 갔다가 혜화로터리까지 걸어갈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떠나신 후로 처음 가보는 것입니다. 엘빈에서 차를 마시고 혜화로터리에서 택시를 태워 보내주신 그 언젠가, 빌려드리고 돌려받지 못한 시집이 있었던 것을, 선생님을 보낸 얼마 후 돌연히도 깨달았던 적이 있습니다. 마종기 시인의 [모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였지요. 정원씨 고마워요, 제가 잘 읽고 꼭 돌려줄게요. 그 시집을 영원히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저를 깊이 위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일, 낯선 서울의 겨울을 산책하는 동안에도 아마 그것을 끝내 다행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덕분에 저는 아득한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김동현 선생님께 中>
매옥 :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그것은 전부 타인의 아픔에 관한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르는 동안, 어떤 이들은 멀리 떠나버리기도 했다. 남겨진 편지가 해독되지 않을 곳으로. 잊히지 않는 것들을 잊은 곳으로. 그 먼 곳에서 안식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기어이 진실을 품고 돌아오는 것 또한 그들의 몫인지. 그 귀환을 증언하는 것이 많은 비극의 몫인지.
<관객학교 中>
승은 :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은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끝내 잊히고 만다. 나는 삶으로부터 그것을 배웠고 그리하여 되도록 많은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 특별히 공연을 보고 돌아온 밤이면, 덧붙여 그 공연이 아름다웠던 날이면 졸음을 붙들고 아직은 생생한 기억을 풀어 내가 본 것들을 남겨두려 했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수첩을 뒤적이며 종종 과거의 내게 감사해하고,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도 현재의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
<꽁띠뉴에 中>
모임 후 며칠이 지나 승은이 책을 완독하고 나니 <춤을 나눠드립니다> 챕터가 가장 좋았다고 모임 때 하지 못한 답을 단톡방에 남겼다. 막상 책을 반납하려니 소유하고 싶은 마음도 한켠에 들었다는 소감과 함께. 나 역시 책을 반납하며 같은 생각을 했기에 반가웠다.
이에 유정은 미련없이 반납했다는 모임 때와 일관된 시니컬한 태도를 취했다. 참고로 그는 작가의 문장을 디스하고 싶어 책을 3번 정독했다고 밝힌 바 있다. 멋있다. 힙합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섬북동 책모임에 10년 가까이 참여하고 있고, 발제도 여러 번 했지만 기록은 처음이다. 이번 모임에서 발화되는 것에 미련이 없는 편이라 말했지만 사실 미련이 없다기보다 게으름이 미련을 이길 뿐이다. 막상 써보니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생각보다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