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모가 찬성하면서 반대한 이유

같은 문서에 지지와 거부가 함께 담긴 의견서를 읽었습니다

by 조성우


지난 글에서 컨슈머 리포츠가 NHTSA에 의견서를 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소비자 단체가 유엔 자율주행 기준의 미국 수용을 건의하는 것이 이례적이라고 했습니다.


https://brunch.co.kr/@maepsy/163



이번에는 다른 목소리입니다.


운전대 없는 차를 실제로 미국 도로에서 굴리고 있는 회사가 말했습니다.

웨이모(Waymo)입니다.

같은 날, 같은 공청회에 의견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 의견서가 좀 이상합니다.

찬성과 반대가 한 문서에 함께 담겨 있습니다.



웨이모는 지금 무엇을 굴리고 있나


의견서를 제대로 읽으려면 웨이모가 어떤 위치에 있는 회사인지 먼저 봐야 합니다.

웨이모는 현재 6개 미국 도시에서 주 40만 건 이상의 유료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누적 운행 횟수는 2천만 건을 넘었고, 차량은 3천 대가 넘습니다. 완전 자율주행으로 달린 거리가 1억 2천700만 마일에 이릅니다.

그 데이터에서 나온 숫자가 하나 있습니다. 같은 구역에서 인간 운전자와 비교했을 때, 웨이모는 중상 이상의 충돌 사고가 90% 적었습니다.

이 회사는 자율주행이 안전하다는 것을 이미 숫자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의 의견서는 단순한 로비 문서가 아닙니다.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규제를 설계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찬성합니다. 하지만 이건 안 됩니다”


웨이모는 ADS GTR 찬성을 권고했습니다.

NHTSA가 6월 WP.29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근거는 하나입니다. GTR의 핵심인 안전 케이스(Safety Case) 접근법이 자율주행 시스템을 규제하는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안전 케이스란 무엇인가. 차량이 특정 시험을 통과했는지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개발 전 과정에서 어떤 위험을 식별했고, 그것을 어떻게 줄였으며, 그 결론이 타당하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하는지를 종합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논증입니다.


웨이모는 이 방식이 자율주행에 맞다고 봅니다. 자율주행 시스템이 마주치는 교통 상황의 수는 이론적으로 무한합니다. 몇 가지 정해진 테스트로 그 전부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조사가 자신의 검증 방법과 기준을 직접 설계하고 그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GTR에는 문제가 있는 조항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ADS의 주행 행동은 충돌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


문장만 보면 당연한 말 같습니다.

하지만 웨이모는 이 조항이 규제로서 작동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충돌이 일어났을 때 ADS가 원인인지 판단하는 것은 수개월이 걸리는 법적·기술적 조사입니다. 충돌의 정의가 없어서 도로 파편 하나와 부딪혀도 해당될 수 있습니다. 그 판단을 누가, 어떤 절차로 내리는 지도 규정에 없습니다. GTR은 각주에서 스스로 “인과관계 확립이 항상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조항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규정은, 규정으로서의 실효성이 없습니다.

웨이모는 이 조항이 GTR에서 수정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국 방식과 한국 방식, 그리고 유럽 방식

웨이모가 반대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GTR 6장의 감사(Audit) 조항입니다.

GTR은 제조사의 안전 관리 체계, 테스트 환경, 안전 케이스 전체를 외부 기관이 사전에 심사하도록 규정합니다. 이것은 유럽의 방식입니다. 형식승인 체계에서는 제조사가 차량을 팔기 전에 독립 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은 다릅니다. 제조사가 스스로 기준을 충족한다고 선언합니다. 규제 당국은 이후에 확인합니다. 사전 승인이 없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같은 구조입니다. 2003년부터 자기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만 1958년 협정과 1998년 협정 모두에 가입해 유럽의 UNR 기준과도 조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GTR이 국내 기준에 반영될 때, 한국 역시 미국과 똑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GTR의 감사 조항을 그대로 가져오면 자기인증 원칙과 부딪힙니다. 웨이모가 NHTSA에 제기한 문제가 그대로 국토교통부 앞에도 놓입니다.

이것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조정을 누가 어떻게 하느냐가 실제 문제입니다.



찬성과 반대가 한 문서에 공존하는 이유


웨이모의 의견서가 이상해 보이는 이유는 하나의 문서 안에서 찬성과 반대를 동시에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략입니다.

WP.29에서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최종 채택 의무가 아닙니다. 미국이 GTR에 찬성하면 국내 규제 절차를 시작할 의무만 생깁니다. 실제로 FMVSS에 어떻게 반영할지는 그 이후의 문제입니다.

찬성을 권고하는 것은 글로벌 표준 설계에 계속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뜻입니다. 반대 조항을 명시하는 것은 그 전환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을 선점하겠다는 뜻입니다.


1억 2천700만 마일의 자율주행 데이터를 가진 회사는 자신의 검증 방식이 가장 앞서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안전 케이스 방식은 그 데이터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규제 구조입니다.

외부 기관이 사전에 심사하는 방식은 그 속도를 늦춥니다.

이것이 웨이모가 원하는 규제의 모양입니다.



앞으로 살펴볼 것

6월 WP.29 투표가 첫 번째 이정표입니다. 미국이 찬성표를 던질지, 기권하거나 조건을 붙일지에 따라 이후 FMVSS 논의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두 번째는 ‘충돌 금지’ 조항의 최종 문구입니다.

원안대로 유지될지가 GTR의 실효성을 결정하는 분기점입니다.

세 번째는 한국입니다. 자기인증 체계를 유지하면서 안전 케이스를 어떻게 다룰지, 국토교통부가 어떤 입장을 가져갈지가 남은 문제입니다. 웨이모가 NHTSA에 던진 질문이 이제 국내 규제 논의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자율주행의 기준은 지금 빠르게 수렴하고 있습니다. 그 수렴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의견서입니다.


Waymo LLC, Comments on NHTSA RFC Re: UNECE ADS GTR, February 23, 2026 — Docket No. NHTSA-2026-0034 (NHTSA-2026-0034-0035)

#자율주행 #웨이모 #ADS #자율주행규제 #안전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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