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보다 소중한 것
신이 내게 묻는다.
반드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하나는 1000억.
다른 하나는 오늘 밤, 아무런 고통 없이 잠들 듯 생을 마치는 것.
나는 두 번째를 고른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잠깐 말을 멈춘다.
대개는 웃거나, 농담으로 넘기거나, 다시 묻는다.
정말이냐고.
그 반응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1000억이라는 숫자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결핍을 지우고, 미뤄둔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니까.
다만 나에게는, 그 질문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나는 한때
남들이 말하는 ‘괜찮은 삶’의 조건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아왔다.
일을 했고, 돈을 벌었고, 관계를 만들었고, 또 잃기도 했다.
무언가를 얻었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고,
그게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적도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나서 남은 건
의외로 단순한 감각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몸이 괜찮은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
그게 생각보다 어렵고,
그래서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그 상태를 해치지 않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래서 어떤 선택 앞에서는
계산이 길어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
단 1분,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고통을 견디면
그 대가로 100분의 완전한 쾌락을 주겠다는 제안.
아마 많은 사람들은 잠깐 계산을 할 것이다.
1분과 100분,
짧은 고통과 긴 보상.
그렇게 생각하면
그 거래는 나쁘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계산이 멈춘다.
1분.
그 시간이 실제로 흐른다고 상상하는 순간,
뒤에 붙는 100분은 의미를 잃는다.
그건 보상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버린 어떤 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쾌락은 더해지는 것이지만,
고통은 한 번 생기면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둘은
서로를 상쇄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 앞에서
더 이상 계산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1000억이라는 선택도 비슷하게 보인다.
그 돈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해진다고 해서
내 삶에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평온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충분히 겪어본 종류의 변화일 가능성이 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상태가
그 과정에서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의 삶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크게 무너지지 않고
조용히 흘러가는 하루를 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상태를 꽤 신뢰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지막을 고르라고 하면,
나는 그 흐름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멈추는 쪽을 택한다.
그건 포기라기보다는,
억지로 더 이어 붙이지 않는 쪽에 가깝다.
잘 쓰인 글을 끝까지 읽고
조용히 덮는 것처럼.
혹은
한 장면이 충분히 오래 머문 뒤에
빛이 서서히 꺼지는 것처럼.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하루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
그리고 언젠가 그것이
고통 없이 멈출 수 있다는 가능성.
그 두 가지면,
내게는 1000억보다도 조금 더 설득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