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칼럼
교육보다는 돈 버는데 열중인 대학? -원본
사람들마다의 시각 차이는 있겠지만 매년 11월이면 우리나라의 가장 큰 행사가 치러진다. 바로 대학을 입학하기 위한 수학능력시험이다. 이를 위해 출퇴근시간을 늦추고 듣기평가를 하는 동안은 비행기의 이착륙도 늦춰진다. 그만큼 오랜 시간동안 노력해온 학생들의 모든 게 결정되는 중요한 날이다. 그렇게 해서 들어가게 되는 대학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은 유교의 이치와 조선의 건국이념인 성리학을 공부하는 곳이었다. 학문을 배우고 인성을 닦기 위한 기관이었다. 물론 서양의 대학도 마찬가지다. 동양과 다르게 세분화한 여러 학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연구하면서 사회에 지식인으로서의 자질함양과 나라의 지도자를 육성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서양문명이 지배하는 지금의 세계는 이러한 개념의 대학이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어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전국적으로 많은 대학이 존재한다. 그리고 설립목적에 맞게 학문에 전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최근에 학문에 중점을 둔 논문이나 학문적 연구의 성과를 경쟁하기보다는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얼마나 되는지를 경쟁하고 있다. 어느새 취업을 위한 직업학교가 되어버렸다. 학생들은 휴학을 하고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 공부를 한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어학을 공부하기위해 연수를 간다.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을 해야 할 지식인들의 전당인 대학이 어느새 보수화되어 교수들은 자신들의 급여와 연금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학생에게 학점을 거래하고 논문통과를 위해 금품을 받는 뉴스는 허다하다.
학생들을 위해 쓰여야할 돈은 학교정문을 멋지게 세우거나 낡은 학교건물의 외벽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는데 쓰이고 있다. 학생들이 공부를 위해 납부하는 등록금은 대학의 이러한 겉치레와 허세에 쓰이고 있다. 학생들은 이런 등록금을 내기 위해 대출을 내고 졸업 후 한동안 대출금을 갚으며 생활해야한다. 그나마도 바로 취직이 되면 상환이 가능하겠지만 요즘 같은 취업현실에서 등록금대출자들은 독촉전화를 받는 게 현실이다. 대학의 치장을 위해 쓰여진 돈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학생에게 지급하는 장학금을 좀 더 늘려 학생들에게 사용되었다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던 모습이다.
어느새 대학은 학문과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보다는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갈취하며 구성원의 한축인 학생들에게 등록금이라는 이름의 돈을 상납을 받는 괴물로 변해 있다. 한때 너무 높은 등록금에 부담을 느낀 학생들은 반값등록금을 부르짖었지만 대학의 반응은 냉랭했다. 자신의 고용과 급여를 위해 교수들도 침묵했다. 학생들의 부담은 ‘나 몰라라’하며 자신들의 배만 불리려는 대학들과 교수들의 야합적인 행태는 무조건적인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최근에 ‘코로나 19사태’로 인해 대학의 수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등록금을 반환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과 유사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학습에 맞게 등록금을 내야함에도 대학은 침묵하고 있다. 이런 모습에 학생들도 침묵하면 호구다. 이미 학생들은 대학에 있어 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마케팅의 대상이고 좋은 돈벌이의 대상이다. 그것을 반증하는 게 자본주의의 결정체인 재벌들이 대학을 하나씩 소유하거나 음으로 양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스스로가 그러한 역할을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 소비자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비싼 등록금을 냈음에도 캠퍼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손해를 청구하고 배상받을 권리 말이다. 이런 것을 두고 합리적이라 표현한다. 지식의 본산을 자처하는 대학이 이러한 합당하고 합리적인 요구에 대응하지 않고 버티기로 일관한다면 스스로 돈벌이에 치중하고 있다는 모습을 반증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학생들 스스로가 ‘호갱’이 아님을 대학에 알려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