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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위해 옷을 벗다.

필자는 못 벗는다...

by 필립일세

Tax에 얽힌 명화의 사연


제2차 세계대전 때 잉글랜드의 한 도시가 나치 공군의 공습을 받게 된다. 유럽대륙을 장악한 나치에 대항할 세력은 레지스탕스 같은 게릴라식 파르티잔(Partisan, 빨치산) 정도가 고작이었다. 나치(Nazi)에게 남은 큰 적은 단 하나. 도버해협 건너에 있던 잉글랜드였다. 히틀러는 USA가 참전하기전에 잉글랜드를 항복시켜야만했다. 1940년 11월 14일~15일 밤 거의 500여 대에 이르는 나치 폭격기들을 동원해 약 1만5천여 개로 추정되는 폭탄을 한 도시에 퍼부었다. 약 500톤에 달하는 무게였다고 전해진다. 12곳에 이르는 군수공장을 없애기 위해 진행된 나치 공군의 폭격이었지만 지금처럼 정밀한 타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의 유적지인 세인트 마이클 대성당 (St Michael 's Church)을 비롯한 민간인이 거주하는 주거용 건물까지 도시중심부의 대부분은 파괴되었다. 밤사이 진행된 나치 공군의 폭격이 끝난 뒤 당시 잉글랜드의 왕이었던 조지6세가 폭격현장을 방문해 상황을 살폈는데 이때 남은 영상기록물을 통해 당시의 참상을 엿볼 수 있다. 당시의 폭격은 도시에 집중된 가장 큰 공습으로 꼽히는 사례다.






이곳은 1896년부터 동력을 일으키는 모터와 사이클을 생산하던 곳이었다. 산업발전을 위한 기계를 생산하던 곳이었지만 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수품을 생산하는 산업시설이 되었다. 잉글랜드와 망명해 있던 프랑스가 도이치의 공격에 버티거나 반전을 위한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이에 지원해줄 군수품의 생산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잉글랜드의 군수공장에 대한 나치의 공습은 당시 연합군의 전투력을 저하시키려는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여인과 말의 이야기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 도시는 중세부터 성장했던 도시로 잠깐 잉글랜드의 수도이기도 했다. 지금은 자동차 기업 푸조의 부품센터와 잉글랜드 자동차산업의 자존심인 재규어의 본사가 위치한 곳이다. 코번트리(Coventry)가 이 도시의 이름이다. 앞서 설명한대로 전쟁기간동안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도시 중심부 건물은 폭격으로 인해 돌가루 먼지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이곳에 배경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려진 명화는 아직도 남아서 당시의 숨결을 느끼게 해준다. 코번트리라는 도시의 역사에 담긴 또 다른 매력을 지금부터 알아보자.






코번트리에는 언젠가부터 실존인물이지만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1043년 이곳을 다스리던 영주는 65세정도로 나이가 든 리어프릭(Leofric) 백작이었다. 그의 아내였던 고다이버(Godiva)부인은 16세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백작은 코번트리를 아름다운 문화 도시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상징적인 건축물을 짓기로 결정한다. 신앙심이 독실했던 두 부부는 중심지에 수도원을 세웠다. 지역의 다양한 활동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점차 코번트리지역의 거점이 자리를 잡아가자 백작의 꿈은 커졌다. 계속해서 여러 공공건물을 지어 도시의 활동의 범위를 늘리고 싶었다. 문제는 짓고 싶었던 건물을 위해 건축비용을 조달하는 것이었다. 필요한 돈을 갑자기 구할 수 없었던 백작은 방법이 따로 없어서 백성들에게 걷는 세금을 늘리게 된다. 생활에 필요한 식량이나 물품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기구나 물자에도 세금이 붙자 백성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특히 자영농 외에 자신이 다스리는 영지에서 농사를 짓던 소작농들에게 혹독한 세금을 걷는 등 착취로 인한 통치는 너무나도 가혹해 소작농의 가족까지 더욱 피폐해져 갔다.






신앙심이 독실했던 고다이버 부인이었기에 남편의 의도를 알고는 있지만 그로인해 백성들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남편의 세금 착취로 인해 많은 백성이 힘들어하자 남편을 설득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어느 날 고다이버 부인은 남편에게 세금으로 얼마나 많은 백성이 고통을 받고 힘들어하는지를 말하며 백성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들이 지고 있는 세금의 부담을 덜어달라고 간청을 한다. 안하무인으로 살아온 백작은 어린부인의 간청을 무시하고 원래했던 계획대로 세금을 걷고 있었다. 부인은 이에 지지 않고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 계속 부탁을 했고 리어프릭 백작도 끈질기게 계속되는 부인의 부탁을 무시하기는 힘이 들었던지 세금을 줄여주겠다고 약속을 하면서도 이행하기 어려운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백작이 내건 조건의 내용은 자신의 영지를 말을 타고 한 바퀴를 돌되 옷을 걸치지 않은 알몸인 상태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건대로 이행한다면 더 이상의 공공건물을 짓지 않고 약속한대로 세금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조건은 부인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어린나이에 느낄 수치심과 신분의 고귀함을 생각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늙은이의 치졸한 생각에서 나온 일종의 거래였다. 더욱이 어린나이지만 신앙심마저 독실했던 고다이버 부인에게는 수치심을 안길 수도 있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백작이 내민 조건은 노욕(老慾)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동안 고민을 하던 고다이버 부인은 백성을 힘든 삶을 어떻게든 구해보고자 자신의 수치심을 버리기로 하고 남편인 백작의 조건을 수락하기로 한다.

절대로 실행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백작은 의외의 반응에 놀랐지만 대답에 반신반의했다. 이런 사실이 영지 내에 있는 백성들에게 퍼지자 자신들을 위해 희생하는 부인의 행동에 감동스러워하며 부인이 영지를 돌 때 모두가 외출을 자제해서 그녀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자고 약속했다. 약속한 날에 고다이버 부인은 준비된 말 위에 올라타고 자신의 손과 머리카락으로 가릴 수 있는 부분은 가린 채 백성들을 위한 성스러운 발걸음을 시작했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모든 사람들이 바깥 활동을 멈추고 집에 들어가 문과 창문을 모두 닫아 주었다.






마을에서는 닫힌 문틈 사이로 가끔 들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길에서 움직이는 말의 발굽소리 뿐이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말발굽소리에 긴장하다가도 안전하게 지나가는 말발굽소리를 들으며 집안에서 숨죽인 백성들의 마음에는 감동이 밀려왔다. 신분제 사회에서 당시 대부분의 귀족은 소작농을 비롯한 도시의 상공업종사자와는 달리 부족한 것 없었다. 누리려고만 하면 누릴게 많았던 고귀한 신분의 백작부인이 자신들처럼 비천하게 낮은 사람들을 위해 수치심을 감수하면서까지 희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고다이버 부인의 희생과 용기에 대한 마음 속 감사와 함께 영지를 다 돌 때까지 아무런 일 없이 무사히 끝나기를 백성들은 기도했다. 백성들의 기도덕분인지 고다이버 부인은 알몸으로 백작의 영지를 다 돌고 무사히 복귀한다. 아내가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그로인한 행동에 감동한 백작은 아내와 약속한대로 무리한 건물 건축을 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부과하던 세금을 감면해주게 된다. 이후 백작도 더 이상의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백성을 위해 선정을 펼치며 코번트리를 통치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변화로 고다이버 부인의 존경심과 함께 그녀를 칭송하는 소문이 주변지역으로 퍼졌다고 한다. 백작가문에 대한 사랑도 이어졌다. 간혹 백작부부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백작이 부인에게 이런 조건을 내건 약속을 했다고 생각하는 후대 사람들이 있으나 둘의 사이가 돈독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부부의 손녀 중에 훗날 잉글랜드에서 앵글로색슨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진 해럴드 2세(Harold II)의 왕비가 나오기도 한다.






고다이버 부인의 이야기가 역사가 아닌 전설로 알려지는 이유는 역사학자들이 현실성에 대해 부정하기 때문이다. 부부가 실존한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저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당시의 기록으로 확인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관련된 내용은 훗날 200여년정도가 지나서야 기록으로 보이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다.






다만 고다이버 부인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조셉 드랍스(Joseph Draps)와 그의 아내 가브리엘 (Gabriel)은 고다이버 부인의 이야기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고 자신들이 만든 초콜릿의 콘셉트와 맞춰 제품의 브랜드로 사용하자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지금의 ‘GODIVA’라는 이름의 회사를 세우게 된다. 코번트리 마을 사람들은 고다이버 부인의 용기와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녀를 상징하는 ‘말을 탄 여인’ 모습의 동상을 세우고 관련된 기념품을 만들어 관광 상품으로 팔고 있다.






또 그녀의 스토리를 담은 그림은 여러 화가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그중에서도 1897년 영국의 화가 존 말러 콜리어(John Maler Collier)가 그린 고다이버 부인의 말 탄 모습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코번트리의 자동차산업을 비롯해 전자 장비, 기계 도구, 농업 기계, 인공 섬유, 항공 우주 부품 및 통신 장비가 발달해있는 도시다.






이 작품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과거나 현재 모두 과도한 세금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것은 다수의 국민과 시민이라는 점이다. 다수의 시민이 생산을 통해 수입이 많다면 정부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세금은 전담하는 것이 맞지만 근대를 넘어 현대로 오면서 대부분의 재화와 이윤은 소수의 기업과 자본가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조세부담률보다 국민부담률을 더 높이는 것은 정부마저 시민보다 자본가에게 유리한 조세행정을 펼치는 것이라고 봐야한다.






중세유럽의 경제활동에서 다수를 차지하지만 삶은 힘들었던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배층이 솔선수범했다는 것은 다수의 백성이 원하던 바람이었을 수도 있고 백성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려던 지배층이 꾸며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역사적인 사실이냐? 구술가가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냐?’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고다이버 부인의 희생으로 영지의 백성에게 가중되던 무거운 세금이 줄어 삶이 편안해졌다는 거다.






부의 밑단에 있는 오늘날의 대다수 시민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빈부 격차가 커지는 현실에 맞춰 과세가 줄지 않는다면 시민들의 삶은 점점 궁핍해지고 소수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금융은 종지부를 찍게 되어 국가의 존망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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