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민수전의 화룡점정은 기본소득이다.
어제의 부흥과 오늘의 부흥–토지제도와 금융제도
오늘날 부(富)의 척도는 다양하다. 척도가 다양해져야할 만큼 세상은 과거보다 복잡해졌고 쓰임을 받는 필수재화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사회인 오늘날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주 단순하게도 돈이다. 이는 과거의 왕조시대에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쌀이나 보리 같은 곡식이 돈이었기 때문에 곡식을 생산할 수 있는 땅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그 땅을 경작할 노동력 즉, 노비가 필요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토지제도와 노비제도까지 가지고 있던 문벌귀족이 득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절벽 같은 운동장을 가진 고려를 혁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도전이 주장한 것이 바로 ‘계민수전(計民授田)’이다. 국가의 토지를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으로 오늘날을 사는 기득권자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인데 당시의 기득권에게는 파격적이라는 표현이외에는 적당한 표현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왕조가 유지되면서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어 왔던 한반도의 역사에서 국가나 권문세족 또는 사대부의 소유가 아닌 백성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경작을 하여 조세를 거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부의 속성상 시간이 지나면서 부는 다시 소수에게 집중화되었겠지만-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자영농이 증가하면 증가하는 만큼 이들이 납부하는 조세도 증가했을 것이다. 국가가 안정된 세수를 확보한다는 것은 국가의 안정은 물론 국력의 신장을 의미한다. 백성의 삶이 안정되는 것은 물론이고 당시 주인이 없는 땅으로 여겨졌던 요동과 만주일대까지 고려나 조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을 것이다. 국가에게 세수확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국가를 부흥시킨 인물로 평가받는 여러 왕이나 재상의 주요업적 중에 자영농육성과 농지개혁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국가의 토지나 화폐 같은 재화가 소수에 의해서 독과점 되기보다는 여럿에게 나뉘어져 이들이 생산 활동을 하면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을 통해 계속적인 거래와 교환이 이루어지는 게 국가 경제에 있어서는 조세를 포함해 더 많은 도움이 된다.
이런 경제흐름을 만드는 것은 바로 ‘교환’이다. 부를 창출하던 토지를 가진 지배층에 의한 소수가 교환경제에 참여하기보다는 토지를 가진 다수의 백성이 경제적 주체가 되어 교환경제에 참여했다면 이는 시장의 형성을 비롯해서 도량의 통일, 화폐의 발달을 앞당겼을 것이며 이로 인한 시장경제는 한반도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역사는 당시의 고려나 조선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지 못했다. 정도전의 계민수전이 아닌 정몽주의 과전법이 시행되면서 파격은 자취를 감춘다. 거대한 개혁보다는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변화정도에서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조선의 개국이후 왕위계승이라는 정치적 사안으로 인한 정도전의 실권까지 일어나면서 더 이상의 개혁을 멈추었고 조선의 성장은 더 이상 없었다.
큰 변화가 없이 유지되던 조선을 지나 오늘날의 대한민국까지 계민수전 같은 개혁은 없었다. 변한 것이라면 곡식이 아닌 돈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자본주의 세상으로 바뀌면서 모든 가치는 돈에 있었다. 오늘날의 부는 토지보다는 필수재화를 생산해서 돈을 만들어내는 제조업이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금융이 만들어냈다. 1987년 개정된 헌법을 통해 명문화된 경제민주화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이상일 뿐 현실화하기에는 정치적상황이 버거웠다.
불씨는 의외의 곳에서 켜졌다. 펜데믹으로 번진 코로나19사태다. 동시에 찾아온 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이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선도국은 자국의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이라는 돈을 지급했다. 어려울 때 지급한다는 개념을 통해 ‘기본소득’이라는 복지까지 연결시켜 보편적으로 알리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이후 찾아온 대선을 통해 후보 간의 많은 논쟁도 불러왔다. 지금은 잠시 멈춰있지만 언제든지 수면아래에서 재부상할 준비를 마친 상태다.
국가를 하나의 회사로 간주했을 때 국가의 구성원은 회사의 구성원일 수 있다.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구성원이 애사심으로 회사를 가꾸면서 회사의 성장과 함께 기본 급여는 물론 성과급을 받아가는 것처럼 이를 국가에 비유한다면 국가를 위해 병역을 다하고 근로를 통해 받은 소득에 대해 납세를 하고 소득으로 소비를 하며 국가경제가 움직일 수 있도록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국민이 기본급으로 간주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받아가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의 가계소비를 통해 기업은 제품을 판매하고 이익을 얻는다. 물론 기업이 성장한 덕분에 해외로 수출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오랜 시간 국민가계의 소비와 사랑이 없었다면 품질의 향상은 있을 수 없었고 오늘날의 인지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 좀 더 많은 사회적 기여를 위해 납세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결국 국민이 받은 기본소득은 국내에서 대부분 사용되면서 승수효과(乘數效果, Multiplier Effect)를 발생시키게 구조가 된다. 이는 국가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어있다. 기본소득이 주어진 국민가계의 소비에서 시작되는 기업의 이익과 정부의 이익 모두는 기본소득이 가져다주는 선순환 구조의 장점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거대한 개혁의 플랜은 이미 600여 년 전에 계민수전(計民授田)을 통해 정도전에 의해 그려져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헌법에 명시되어 이상으로만 여겨왔던 경제민주화(經濟民主化)를 이루기 위해 기본소득(基本所得)을 실행하면서 정도전의 개혁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을 차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