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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가 설명해주는 금융환경

by 필립일세

용어가 설명해주는 금융환경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으로 세상의 경제와 돈의 흐름을 설명할 수 있었던 때에 세계경제는 복잡하지 않았다. 물가의 상승과 하락, 경기의 과열과 침체, (+)와(-)만 신경을 쓰면 되는 환경이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후 한국전쟁으로 드러난 동서냉전의 긴장감은 있었지만 세계경제가 안정기를 구가하던 시절 세계유일의 기축통화였던 달러의 인쇄를 담당했던 아메리카는 민주진영의 맏형답게 국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실천하며 시장에 많은 돈을 풀었었다.





이때 갑작스럽게 터진 중동전쟁은 인류가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제상황을 만들어냈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스태그네이션처럼 단순하게 해석되는 세상에서 점점 복잡한 해석이 필요해지는 세상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1970년대는 경기과열과 물가상승으로 대표되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와 물가하락으로 대표되는 스태그네이션이 동시에 나타나게 된다. 과열되지 않은 경기에도 물가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이하 스태그)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꽤 자주 언급되었고 오늘날까지 그 의미가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 2008년에 주택구입을 위해 은행에 내는 대출인 모기지론에서 부실이 발생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이로 인한 금융위기는 예상보다 피해규모가 컸다. 은행은 대출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보유한 채권을 할인을 통해 유동화 시켜서 확보한 자금으로 다시 대출을 해주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채권이 어떻게 섞였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또 서브프라임 론 채권과 프라임 론 채권을 섞어서 새로운 상품을 구성하다보니 상품의 위험도(신용도)가 왜곡되는 상황까지 있었다. 금융에 대한 근본적인 바탕인 신뢰문제까지 훼손된 상태에서 복합적인 문제로 발전하게 되었다. ‘금융위기’는 자본주의로 고도화 되어있던 전 세계의 금융시장을 마비시켰다.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건 아날로그 후진국뿐이었다.






예방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문제의 근원지를 파악할 수 없는 상태였던 당시에 발생한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법은 부실이 잠재된 금융폭탄이 터지기를 기다리다가 터지면 수습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인간이 가진 자본에 대한 이기적인 욕심이 만들어낸 지구적 참사였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이론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았다. 이때 새롭게 등장한 용어가 스크류플레이션(Screwflation, 이하 스크류)이다. 스태그의 업그레이드버전으로 스태그가 거시적인 관점으로 앞으로의 경기를 여러 지표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면 스크류는 미시적인 관점으로 현실적인 경기를 바라봤다.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라는 경제적인 관점을 넘어 경제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돈(유동성)을 위해 예·적금과 보험을 해지해서 마련된 환급금이나 대출을 통해 쥐어짜가면서 생활을 해야 하는 환경을 말한다. 서민들의 장바구니 체감물가는 물론 소비심리까지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스태그가 지속되면서 소비가 줄어들었다. 소비감소로 재화의 재고가 늘면서 생산시설가동률이 떨어지고 고용이 감소하였다. 가계의 소득이 급감하여 빈부의 격차도 심해진다. 결국 중산층이 무너져 저소득층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공과금과 식료품구매를 위한 최소한의 소비를 위해 ‘쥐어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기간적인 의미를 가지는 슬럼프 플레이션(Slumpfl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모두가 스태그가 가져다주는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표현하는 용어들이다.






경기와 별개로 가격상승만 표현하는 용어도 있다. 농업(Agriculture)과 물가상승(Inflation)이 합쳐진 단어로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는 표현이 있다.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다른 물가도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농산물이 인간의 삶에 가장 기초적으로 필요한 재화이기에 가격에 민감한 부분도 있지만 금융시장에서 농산물 국제가격 움직임을 금융상품으로 만들어 거래하다 보니 수익률까지 따지게 되어 민감하게 움직인다. 물론 투자자 중에서 대형자본을 가진 일부 세력은 자신들이 가진 자본으로 시장가격을 왜곡시키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






인류의 반복되는 것에 대한 실증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새로운 변화는 경험해보지 못한 복잡한 환경을 만들어 더 많은 경제시사단어를 양산해내고 있다. 앞으로 벌어질 경제상황은 새로운 금융환경을 조성할 것이고 그에 맞춘 새로운 단어가 계속 나올 것이다.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를 위해 환경이 변하는 것은 복잡해지건 단순해지건 상관없이 좋다. 다만 금융환경변화를 통한 성장의 열매를 다수보다는 소수의 상류층에 있는 구성원이 취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수를 위한 경기안정과 물가안정, 실질소득증대 같이 생각만 해도 ‘아름다워지는 세상’을 위한 신조어를 바라는 것이 소수를 위해 존재하는 자본주의에게는 ‘과욕인 것일까?’라는 질문을 수정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라고 밀어붙이는 자본주의자들에게 던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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