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땅 토스카나를 지배하던 마틸다
거침과 야만의 나라였던 초기의 고대 로마에게 문명이라는 것을 전해준 것은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졌다고 알려진 에트루리아였다. 에트루리아가 자리한 곳은 지금의 토스카나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토스카나는 그리스인들이 옮겨와 새로운 터전 삼을 정도로 풍요로움을 가진 곳이다. 에트루리아인들은 이곳에 새로운 터전을 건설하면서 아치와 같은 그리스의 건축기법으로 만든 터전에 앞선 과학은 물론 미술, 음악, 문학 같은 문화가 풍성한 곳으로 성장시켰다. 이는 훗날 에트루리아를 점령한 로마의 문화가 성숙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가문인 메디치 가문은 무역과 해운을 기반으로 돈을 벌었고 이후 은행업을 시작으로 유럽의 여러 왕과 귀족들과 거래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두 명의 프랑스 왕비와 세 명의 교황을 배출하며 그 명성을 온 유럽에 퍼트렸다. 더불어 교황청의 금고를 관리하는 금고지기를 맡으면서 온 유럽의 자금줄을 쥐락펴락하던 가문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를 작위까지 받게 된다. 토스카나 대공이다. 이를 통해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는 물론이고 토스카나지역을 다스리는 통치 가문으로 승격되었다.
이러한 기반에는 토스카나지방의 기후가 만들어낸 풍요로움이 있었다. 메디치 가문의 성장 기반이 되었던 피렌체가 있는 토스카나지역의 통치자들은 지리적인 요인 때문인지는 몰라도 역사적으로 교황과의 친분이 좋았다. 중세역사에서 프랑크 제국을 세운 카를대제 이후 교황은 각국의 왕과 황제 위에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교황과 왕과 황제 사이에서 시대에 따라 성직자의 서임권을 두고 힘겨루기가 종종 발생하였다. 그중에서 그 대결이 극에 치달았고 발생한 갈등의 크기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카노사의 굴욕(이하 카노사 사건)’이라고 알려진 사건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처지에서는 굴욕이지만 로마 가톨릭의 주교인 교황으로서는 신성로마제국의 발호를 누르고 교황권의 입지를 돋보이게 하여 유럽이 누구에 의해 통치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교황의 편에 서 있었지만 카노사의 사건에서 중재의 고리 역할을 했던 여인이 있었다. 바로 마틸다다. 풍요로운 토스카나의 백작이었던 마틸다의 지지가 있었기에 교황은 정치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많은 도움을 얻고 있었다. 이런 도움에 대한 고마움을 남겨놓은 흔적이 있다. 바로 마틸다의 무덤이다. 로마에 자리를 잡은 작은 종교 국가 바티칸의 중심에 성베드로대성당이 있다. 한 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성당 안에는 역사를 담고 있는 여러 시설이 있다. 그 시설 중의 하나가 바로 마틸다의 무덤이다.
마틸다는 카노사의 성주로 사망하였지만 훗날 카노사의 성이 무너지자 그녀에 대한 고마운 기억이 있던 교황청에서는 그녀의 무덤을 베드로 대성당 안에 새롭게 만들어주며 그녀가 교황청에 했던 기여했던 공을 기렸다. 그리고 무덤에 카노사를 지휘하던 그녀의 강인함을 상징하기 위한 석상을 세웠다. 한 손에는 지휘봉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그녀가 지키려고 했던 교황을 상징하는 교황의 관이 들려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카노사의 사건에 관한 내용을 묘사한 부조가 남아있어 당시의 역사에서 마틸다가 얼마나 깊이 관여되어 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카노사의 굴욕 이후 복수를 노렸던 하인리히 4세는 나중에 군대를 이끌고 로마를 향하면서 카노사에도 군사를 보낸다. 그레고리 7세가 나폴리지역으로 도망을 가지만 교황청을 점령해 교황에 대한 복수에는 성공을 한다. 하지만 카노사에 보낸 군대가 패하면서 마틸다에 대한 복수에는 실패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카노사 사건을 계기로 파문을 면한 하인리히는 신성로마제국으로 복귀하여 자신에 충성하지 않는 영주들을 몰아낸뒤에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영주들과 함께 힘을 키워 로마로 진군하였던 것이다. 결국 이런 강력한 군대를 맞아 마틸다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카노사가 가진 경쟁력이 남달랐기 때문인데 이런 든든함은 결국 토스카나지역의 풍요가 밑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토스카나의 풍요로움은 이후 오랜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하나된 이탈리아가 세워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이 지역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푸치니는 음악으로 이탈리아를 묶은 위대함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작곡한 오페라의 레치타티브나 아리아, 코러스가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오늘날 유행곡을 따라부르듯이 많은 이들이 그가 만든 노래를 따라불렀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당시에 각 지역의 이질적인 방언들을 하나로 묶는데 많은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외에도 토스카나지역은 풍요로운 곳답게 이탈리아 음식을 대표하는 다양한 발효문화가 성장한 곳으로 알려져 이탈리아 문화의 원류중에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