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죽장갑과 경호원, 그리고 주총

자본도 법의 테두리에 넣어 어항 속 금붕어로 관리해야 한다.

by 필립일세

빠다보다 빳따를 사랑하는 회장님의 과도한 자식 사랑과 주총 봉쇄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부모는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다. 물론 과도한 자식 사랑으로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법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학교에서는 가르친다. 그러나 정작 법을 지키는 것은 힘없는 사람들이다.


사실 힘을 가진 이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법이라는 걸 왜 지키지?’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본주의를 추앙하는 사회다. 그렇기에 누구나 자본을 가지려고 노력과 시간을 사용한다. 자본을 가진 이가 세상을 가지기 때문이다. 자본이 없는 이들은 차선책으로 권력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쩐의 꽃’보다는 ‘권력의 꽃’이 좀 더 일찍 색을 바라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그래서일까? 가진 자본이 많을수록 자신의 꽃이 시들지 않음을 알기에 더 많은 자본을 가지려 한다. 물론 많은 자본을 가진 부작용도 있다. 세상에 대한 두려울 게 없어 부끄러움을 모르는 거 같다. 그들은 상대가 가진 게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적으면 무시하는 게 일상이다. 맹장이 퇴화하듯 염치가 퇴화한 거다.






우리나라는 '법치주의'라는 사법제도를 통해 두 가지의 가치로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와 '자본주의'라는 경제제도다. 정치제도에서 ‘권력의 민주화’로 권력은 법에서 정한 임기가 적용된다. 권력을 쥐고 있다가도 임기가 마무리되면 법에 의해 행사되는 권한은 새로운 이에게 넘어간다. 물론 이를 어기고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임기를 늘린 경우도 우리 역사에는 있었으나 그사이 성숙된 시민의식은 내란을 시도한 쿠데타마저 실패로 만들었다. 그런데 자본은 어떤가? 세상이 자본을 추구하기에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경제 권력을 형성했음에도 권한이라는 힘 뒤에 숨어 나약한 척한다. 사실 자본을 형성하고 경영권을 가진 이들은 다수의 권한을 가지고 기업을 조종하며 자신들이 가진 자본보다 더 큰 권한을 누린다.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사회구조적으로 현실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그들을 지켜주는 호위병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을 가진 자들은 자본을 가진 자신들이 이들을 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1차적으로 자본을 가진 이들은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여론이라는 걸 조장하면서 자신들에 대한 보도가 이뤄지지 않도록 통제한다. 또는 보도가 이뤄지더라도 축소해서 보도하거나 더 큰 사건을 터트려 ‘물타기’ 수법을 시전 한다. 이게 자본을 가진 이들의 포장 속에 가려져 있는 민낯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자본의 큰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실질적인 힘은 가장 강력한데 사회적인 관심이 적게 받다 보니 언론의 가림막 뒤에서 불법으로 보이는 일들이 늘어난다는 거다. 자신들의 임기를 늘리기 위해 기존 법을 무시하거나 기존 법이 강화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장악한 언론으로 여론을 조장하거나 왜곡 보도(1차)를 하고 우호지분을 설득해 주주총회(2차)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한다. 정치권에 로비(3차)하여 표결을 최대한 막고 행정에 손을 내밀어 거부권을 행사(4차)하게 한다. 1차, 2차, 3차, 4차마저 무너졌을 때에는 사법의 힘(5차)을 빌어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사법적 특권을 누리며 자본의 힘을 누린다. 우리는 이를 지켜봤다.






2007년 3월 회장님(?)의 보복폭행이 뉴스를 타고 흘러나왔다. 자식이 집단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고 경호원을 비롯한 무리를 거느리고 나아가 집단폭행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들을 청계산으로 납치하여 폭행한다. 이때 끌려간 이들이 현장에서의 공포감을 느끼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쇠파이프와 전기충격기 같은 것들이 소품(?)으로 사용되기도 했단다. 허풍쟁이가 술 한잔 마시면서 취기에 할만한 무용담으로 보이나 멀쩡한 대낮에 법정에서 회장님의 진술로 다뤄진 내용들이다. 이후 은폐와 축소를 위해 경찰 간부가 동원되고 조직폭력배가 동원되었다. 회장님의 이런 행동은 CNN 같은 외신을 타고 K-마피아로 소개되며 K-재벌문화를 알렸다. 이런 외신의 보도가 우리나라로 역수입되어 공중파를 타기도 했다. 방법은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의 행동이 자식에 대한 부성애 때문이라며 그를 감싸는 유명인들도 있었다. 이들의 이런 관점은 세상의 질타를 받았다. 어느 일반인 아버지가 아들의 복수를 위해 쇠파이프와 전기충격기를 가지고 사람을 거느리며 출동하겠는가? 거기에 경찰에 로비까지 말이다.






물론 회장님은 일련의 사건의 책임을 지고 재판을 받았다. 실형 선고 후 수염을 기른 상태에서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타주는 코스프레(?)도 언론을 통해 보여주었다. 쇼맨쉽이 충만한 그다. 어쨌든 결국에는 그마저도 가진 자들이 누리는 ‘집행 유예’로 정리가 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때 그가 자식을 위해서 했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법이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기준이 아닌 남다른 기준(?)을 적용해 법치가 제대로 다스리지 않았기에 새로운 사건이 또 발생한다. 자본주의의 근간이라고 불리는 기업의 주주가 모이는 주주총회에서 주주가 들어가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주주는 자본주의라는 꽃이 피도록 도와주는 거름이고 밀알 같은 존재다. 주주는 기업이 세워지기 위해 필요한 자본금에 기여하는 주체다. 그런 주체가 모여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게 바로 주주들이 모이는 주주총회(이하 주총)다. 주총이 열리는 장소로 들어가는 출입구에 배치된 검은 양복 차림의 건장한 사내들은 일반 주주의 출입을 막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총에 참여하려고 주총 장소로 향하는 주주가 제지를 당한 거다. 이는 투표하려는 주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도록 투표장에 입장을 못하게 한 거와 마찬가지다. 주주의 입장을 막아선 이들은 바로 ‘어디선가 회장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타나는 무리’ 중에 핵심인 경호원이었다. 60~80년대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한화생명의 주주총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동안 한화생명의 주주총회는 한화금융센터별관 1층의 넓은 다목적홀에서 열렸으나 건물 리모델링을 핑계로 올해는 좁은 본관의 세미나실에서 진행되었다. 장소가 좁아서 다른 주주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핑계였고 꼼수였다. 63빌딩에 정말 공간이 없었을까? 기업의 현재 상황을 설명듣고 의결하려 했던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반(反)자본주의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현재 경영권을 장악한 회장님의 수족 역할을 하는 임직원들만이 참석한 회의장에서는 많은 안건이 상정되었다. 재무제표가 승인되었고 정관의 일부 내용도 변경되었다. 감사와 이사가 선임되었고 이사가 받을 보수도 승인되었다. 20여 분만에 끝났다. 모든 것이 출입이 봉쇄된 주주총회장 안에서 진행되었다.






주주총회가 평양에서 진행되는 것처럼 마무리되었다. 일당독재의 공산당이 주관하는 회의처럼 진행되는 주주총회를 주주들은 바라만 보았다. 일반 국민이 납부한 보험료를 활용해 한화생명이 2024년에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은 7,206억 원이다. 2023년 대비 17% 정도 증가하였으나 해약에 따른 환급금을 준비해야 한다며 주주에게는 이익에 대한 배당을 전혀 하지 않았다. 시중은행은 한화생명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이익을 내면서도 매년 배당을 한다. 한화생명은 시중은행보다도 이익률이 높은 금융회사임에도 오너십이 존재하는 사기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오너십으로 충만한 회장님은 배당되지 않은 막대한 규모의 자본으로 여러 계열사를 분할해서 승계를 시키는 중이다. 자질이 충분한 이들의 승계는 좋은 일이다. 그런데 자질이 있나?






결국 주총에 참석하지 못하고 작은 회의실에 입장하도록 안내받은 주주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상황을 화면을 통해 지켜보는 게 전부였다. 화면에 비친 주총에는 빈 좌석이 꽤 있었음에도 지켜보는 자신이 ‘왜 저곳에 못 들어갔을까?’라는 생각의 답은 20분간 진행된 회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자본주의의 꽃인 주식회사에서 벌어지는 이런 억지스러운 상황이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현주소가 대변(大便)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대변(代辯)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反)자본적 일을 벌어졌음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당연히 형벌을 받는 이도 없다. 겨우 받는 피해도 민사소송 정도다. 그나마도 겨우 주는 시늉을 하며 내놓은 돈이다. 정부를 대표해 금융회사를 관리하는 금융위원회와 시장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원은 이를 모를까?






우연의 일치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인 회장님이 경호원을 비롯한 여타의 무리를 거느리고 청계산과 북창동 일대로 직접 출정에 나섰던 ‘2007년 한화 사태’를 유발한 인물은 술집에서 직원의 뺨을 때리던 둘째 왕자(?)다. 이번에 경호원이 동원되어 문제를 일으킨 주총은 한화생명의 주총이다. 한화생명은 ‘2007년 한화 사태’에 등장한 둘째의 몫이다. 우연히도 그가 하는 일에는 항상 경호원이 붙는다. 둘째가 경호원의 도움과 핑계, 꼼수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당하게 홀로 서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그런 나약한 존재가 거친 드라이브를 주고받는 국제금융에서 우리나라 금융을 이끌어가야 한다니 애석하다.






테슬라 주식 9주를 가진 소액주주 리처드 토네타는 테슬라가 CEO인 일론 머스크에게 지급한 성과급이 과도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었다. 그리고 소송에서 승리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의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적이거나 파쇼적인 부분이 가미된 자본주의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 행정, 검찰 모두 임기가 있음에도 개혁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에 비해 썩을대로 썩은 언론과 자본은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나라 경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 아마존이 나오고 메타가 나오며 테슬라가 나온다. 언제까지 LG와 한화, 롯데, 신세계, SK같은 기업이 top10에 들도록 방치할 것인가? 자본도 법의 테두리에서 통제하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재용은 하이닉스를 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