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 관계의 우위에 의한 괴롭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괴롭힘이라 하면 위에서 직급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을 괴롭히는 하향적인 방식만 생각하지만 요즘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역괴롭힘도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미국의 Workplace Bullying Institute 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에서 역괴롭힘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14%에 달한다고 한다. 예전같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더이상 직급이 무소불위의 권위로 작용하는 시대가 끝났고, 개개인의 목소리가 충분히 힘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인권이 힘을 갖게 된 이런 바람직한 시대에 도대체 어떤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일까?
과거와 달리 요즘은 개인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평등한 세상이 펼쳐졌다. 하지만 모든 긍정적인 면에는 명암이 같이 따라오는 법, 이제는 윗 사람이 오히려 아랫사람의 눈치를 보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더이상 직장 상사는 무조건 가해자, 팀원은 피해자가 되는 시대는 끝났다. 요즘은 직급이 아니라 관계의 우위에서 오는 괴롭힘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관계우위란 여러 경우로 해석될 수 있는데, 여러명이 무리지어 한명을 괴롭히는 경우, 내부정보에 더 빠삭한 경우, 업무역량에 있어 우위인 경우, 직장 내 영향력이 높은 경우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 경우 직급이나 나이와 무관하게 괴롭힘이 일어날 수 있고, 산업에 따라서는 오히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약자로서 괴롭힘의 타겟이 되기도 한다.
젊음이 권력이 되고 있는 세상
2021년 노동부가 국내 유망 IT 기업의 직원 1982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비개발자들의 약 70%가량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고 응답하였다. 이것은 40%가 그렇다 라고 대답한 개발자의 2배 가까운 수준이다. 또한 연령에 따라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한 비율에서도 50대 이상은 61% 에 달하는 반면 20,30대는 50%에 그쳤다. 이는 IT 기업 특성상 나이나 직위에 관계없이 업무역량에 있어 우위에 있는 ‘젊은 개발자’들이 회사 내에서의 더 높은 영향력을 가지며, ‘나이가 많은 비개발자’들이 역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사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회사 내에서 젊은 직원들의 영향력이 더 커지면서 오히려 젊음이 권력이 되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비단 IT 기업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을 살펴 보아야 한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트렌드가 급변하자, 각 기업들은 시장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기호를 파악하여 제품 출시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오랜 경험으로 많은 내공을 쌓은 상사나 연장자가 옳은 결정을 내린다고 믿었다면 이제는 경력이 길지 않아도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젊은 세대가 시장을 보는 정확한 눈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 회사 내에서도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에 더 많은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목소리가 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MZ 세대들이 주축이 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30 을 중심으로 사내벤처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인재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고, 조직문화 전체의 방향성을 20대가 주축이 되어 새롭게 만드는 혁신 프로그램들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낡고 오래된 방식에서 벗어나 변화를 추구하는 이런 과감한 도전은 정체된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런 변화는 기업 내에서 젊은 세대들의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은 것에 대한 비 선호 현상을 낳기도 했다. 나이가 많은 것이 더이상 지혜나 노하우를 옳은 방향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고 믿기에 연차가 많고 직급이 높은 것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을 자아내고 사내에서 오히려 불리한 위치에 몰리게 되었다.
C씨가 털어놓은 직장 내 역 괴롭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이가 많고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몇몇 사람들은 기세등등한 젊은 세대들에게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역괴롭힘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나 적지 않은 나이에 완전히 새로운 직종으로 이직하게 되는 경우 약자의 위치에 몰릴 수 밖에 없게 된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화려한 경력들을 뒤로하고 완전히 새로운 필드에서 일을 시작해야만 했던 C씨는 본인이 새로운 곳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견뎌야 했던 갖은 수모를 내게 털어 놓았다.
50에 가까운 나이에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옆자리에 앉은 10살 어린 여직원은 새로 온 C씨가 처음부터 매우 못마땅한 눈치였다. 그녀는 업무중에 수시로 C씨 자리 뒤를 어슬렁 거리며 컴퓨터 화면을 감시하고, 마치 자신이 팀장인냥 업무적인 지적을 하며 망신을 주기 일쑤였다. 업무적으로 도움을 주는 척 하며 가해지는 지적은 곧이어 나이 지적으로 번졌고, 그녀의 입에서 툭하면 나오는 것은 ‘갱년기세요?’ 라는 단어였다.
C씨가 50대 부장님들과 친분을 쌓는 모습을 보고서는 ‘회사가 점점 노인정 처럼 되가네’ 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녀는 A씨가 하는 말에 뭐든 “예민하다” “말이 많다” “나이가 많다”로 엎어대서 업무적인 능력을 입증하기도 전에 말 많고 예민하고 나이 많아서 대화가 안되는 꽉막힌 이미지로 완전히 프레임을 씌워버렸다. C씨가 불쾌함을 표시하면 표시할 수록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갔고, 무슨 말을 하건 간에 대꾸할 가치도 없는 사람으로 격하시켜버렸다. 그런 식으로 6개월이 지나자 회사 내에서 A씨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졌다. 팀원의 주도하에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그런식으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역괴롭힘도 약자를 향한다.
학교 폭력이나 직장 내 괴롭힘이 다 그렇듯 역괴롭힘도 조직 내에서 힘이 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해진다. 한 IT 기업 인사담당자는 팀장을 대상으로 접수되는 괴롭힘 신고 중에는 망신 주기를 목적으로 한 악의성 신고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해당 기업에서는 괴롭힘 신고로 접수가 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신고자는 휴가를 받게 되고 이로서 일차적으로 수혜를 받았다. 그리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진상 조사를 위해 인사팀과 여러차례 면담을 해야 하는데 인사문제로 인해 회사에서 조사를 받게 된다는 것 자체가 당사자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일 뿐더러 추후에 지속적으로 감시를 받게 되므로 행동에 굉장히 조심성을 더하게 된다. 이로서 팀원은 팀장을 겁주고 자신에게 함부로 할 수 없게끔 거리를 두는 이차적 수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더 복잡해지게 된다. 신고자는 피해자, 신고를 당하는 자는 가해자라는 일차방정식에서 신고하는 사람이 가해자가, 그리고 신고를 당하는 사람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2차, 3차 방정식이 되어 버렸다.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의 말을 순수하게 공감해 주지 못하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단순하게 상황을 바라보다가는 애꿎은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건에 대해서도 좀 더 차원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